세계를 울린 '신라면'의 신화, 농심 신춘호 회장 세상과 작별하다
세계를 울린 '신라면'의 신화, 농심 신춘호 회장 세상과 작별하다
  • 김현옥 기자
  • 승인 2021.03.27 13: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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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신춘호 농심그룹 초대회장

한국의 매운 맛, '신라면'으로 세계를 울린 '라면 대부' 농심의 신춘호 회장이 27일 새벽 92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이로써 국내 식품업계의 1세대 별이 또하나 졌다.

농심 창업주 율촌 신춘호회장은 1930년 12월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동면에서 태어났다. 부친 신진수 공과 모친 김필순 여사의 5남 5녀중 셋째 아들이다. 1954년 김낙양 여사와 결혼해 신현주(농심기획 부회장), 신동원(㈜농심 부회장), 신동윤(율촌화학 부회장), 신동익(메가마트 부회장), 신윤경(아모레퍼시픽 서경배회장 부인) 3남 2녀를 두었다.

롯데그룹 창업주 고 신격호 회장의 둘째 동생인 신춘호 회장은 1958년 동아대학교 졸업 후, 일본에서 성공한 형을 도와 제과사업을 시작했으나 둘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서 1965년 롯데그룹에서 떠나 롯데공업을 설립했다. 그러나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신격호 회장이 회사 이름에 롯데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자 신춘호 회장은 농심으로 바꾸고 독자적인 행보를 시작했다.

당시 신춘호 회장은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전되던 일본에서 쉽고 빠르게 조리할 수 있는 라면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한국에서의 라면은 간편식인 일본과는 다른 주식이어야 하며 따라서 값이 싸면서 우리 입맛에 맞고 영양도 충분한 대용식이어야 먹는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신춘호 회장의 이러한 경영관은 오늘날 라면왕이라는 별명을 낳으며 우리나라 라면산업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

신춘호 회장의 브랜드 철학은 확고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반드시 우리 손으로 직접 개발해야 하며, 제품의 이름은 특성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명쾌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한국적인 맛이어야 한다는 것. 스스로를 라면쟁이, 스낵쟁이라 부르며 직원들에게도 장인정신을 주문하곤 했다.

신춘호 회장은 회사 설립부터 연구개발 부서를 따로 두었다. 당시 라면산업이 궤도에 오르기 시작한 일본의 기술을 도입하면 제품 개발이 수월했겠지만, 농심만의 특징을 담아낼 수도, 나아가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제품을 만들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안성공장 설립 때도 신춘호 회장의 고집은 여실히 드러난다. 국물맛에 혁신적인 변화를 이루기 위해 선진국의 관련 제조설비를 검토하되, 한국적인 맛을 구현할 수 있도록 턴키방식의 일괄 도입을 반대했다. 선진 설비지만 서양인에게 적합하도록 개발된 것이기 때문에 농심이 축적해 온 노하우가 잘 구현될 수 있는 최적의 조합을 주문한 것이다.

출처_농심 홈페이지
출처_농심 홈페이지

신춘호 회장은 브랜드 전문가로도 이름높다. 특이하게도 농심에서 판매하는 유명 제품 중에는 신춘호 회장이 제품명이나 제품 광고 카피를 직접 지은 사례가 많다. 유기그릇으로 유명한 지역명에 제사상에 오르는 ‘탕‘을 합성한 안성탕면이나 짜장면과 스파게티를 조합한 짜파게티, 어린 막내 딸이 아리랑 민요를 아리깡으로 불렀던 데서 착안한 '새우깡' 등의 히트작품에는 그의 천재성이 녹아 있다.

새우깡의 대히트는 '손이가요 손이가 새우깡에 손이 가요 아이손 어른손 자꾸만 손이가....'란 가사의 단순한 음과 리듬이 반복되는 광고 CM송이 한 몫 거들었는데, 그 인기가 후속 스낵 제품에 영향을 미쳐 양파깡, 고구마깡, 감자깡 등 '깡시리즈'를 낳았다.

출처_농심홈페이지
출처_농심홈페이지

그 중에서도 대표작은 뭐니뭐니해도 대한민국 부동의 원톱 라면인 '신라면'이다. 지금은 우리 귀에 익숙하지만, 출시 당시에는 파격적인 이름이었다. 당시 브랜드는 대부분 회사명이 중심으로 되어 있었고, 한자를 상품명으로 쓴 전례도 없었다. 하지만 신춘호 회장이 발음이 편하고 소비자가 쉽게 주목할 수 있으면서 제품 속성을 명확히 전달할 수 있는 네이밍이 중요하다며 임원들을 설득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한국인 입맛에 맞는 얼큰한 라면'이라는 이미지와 농심 오너로서의 자존심을 걸었다는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본인의 성씨인 매울 신(辛) 자를 제품명에 사용한 신라면은 그렇게 탄생했다. 특히 신라면 광고 카피인 '사나이 울리는 신라면'부터 시작해 제품 포장 디자인까지 신춘호 회장이 일일이 챙길 정도로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고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신라면은 1991년부터 국내시장을 석권하는 국민라면으로 등극했고, 세계시장을 공략하는 첨병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이보다 앞서 '안성탕면', '농심너구리'를 내놓고 당시 국내 라면시장을 주름잡던 삼양식품을 바짝 뒤쫒다가 마침내 거둔 승리였다. 

신춘호 회장은 해외진출 초기부터 신라면의 세계화를 꿈꿨다. '한국시장에서 파는 신라면을 그대로 해외에 가져간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한국의 맛으로 세계인의 입맛을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본 것이다. 여기에 고급 이미지도 필요하다고 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제품인데, 나라의 이미지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품질에 대한 자신감도 만만치 않았다. 신라면은 미국시장에서 일본라면보다 대부분 3~4배 비싸다. 월마트 등 미국 주요 유통채널에서는 물론이고, 주요 정부시설에 라면 최초로 입점 판매되고 있다. 중국에서도 한국 특유의 얼큰한 맛으로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신춘호 회장은 2018년 중국의 인민일보가 신라면을 ‘중국인이 사랑하는 한국 명품’으로 선정했을 때, 그리고 지난해 미국 뉴욕타임즈(The New York Times)가 신라면블랙을 세계 최고의 라면 1위에 선정했을 때 누구보다 환하게 웃었다는 후문이다.

이러한 성공에 힘입어 신춘호 회장은 국물 라면에 이어 한국 최초의 짜장 라면인 짜파게티와 각종 스낵으로 사업을 넓혔다. 굵은 면발의 고급 짜장라면 '짜왕'은 출시한 지 한 달 만에 국내 라면 시장 부동의 1위인 신라면에 이어 2위에 오를 만큼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우리 국민에 익숙한 맛을 제품화하는 전략이 그대로 맞아 떨어진 결과다.

신춘호 회장의 라면은 배고픔을 덜어주는 음식에서 개인의 기호가 반영된 간편식으로 진화했다. 국민들의 삶과 깊숙하게 연결되며 희로애락을 함께 했다. 신춘호 회장의 농심은 끊임없는 도전의 역사로 한국을 넘어 세계시장에서 그 활약을 이어가는 중이다.

농심 신라면 신화를 생수제품인 '백산수'로 이어가기 위해 지금도 국내 먹는샘물 브랜드 1위인 삼다수와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사실 삼다수의 명성도 농심이 국내 먹는샘물 시장 초창기 제조원인 제주도개발공사와 손잡고 막대한 마케팅력과 영업력을 쏟아부어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나 다름 없다. 그런 의미에서 맨땅에서 어렵사리 일궈 놓은 삼다수 사업의 영업권을 갑작스럽게 빼앗긴 것에 분통이 터질만 했지만, 농심은 거기에 함몰되지 않고 재빠르게 백두산의 정기를 담은 백산수 개발로 정면 돌파에 나서는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한편, 신춘호 회장은 형인 신격호 회장과의 사이가 나쁘기도 했지만 롯데그룹 가족 중에서도 유독 언론에 얼굴을 내비치지 않은 심한 은둔형 스타일로 꼽힌다. 그동안 농심그룹 신년사를 직접 연설한 적이 없었고, 창립 50주년에야 직접 소감을 밝혔지만 그의 사진은 배포되지 않았다. 

2021년 2월 사내이사에서 재선임을 안하게 되면서 56년만에 농심그룹의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이미 농심그룹의 대표이사는 장남 신동원이 맡고 있었고, 본인은 회장직만 갖고 있었지만 사내이사에서도 물러나면서 신동원 부회장이 회장직을 승계했다.

형인 신격호 회장이 세상을 떠난 바로 다음해에 별세한 신춘호 회장은 선친에 대한 제사도 따로 지낼 정도로 형과는 의절한 상태로 지냈고, 결국 두 형제는 이승에서 끝내 화해하지 못했다. 2020년 1월 신격호 회장 사망 당시 빈소를 찾은 다른 동생들과 달리 신춘호 회장은 영결식까지도 찾지 않았다고 한다. 아들인 신동원, 신동윤 형제가 아버지를 대신해 큰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이번 신춘호 회장 빈소에는 현재 일본에 머물고 있는 신동주 신동빈 회장이 조화를 보내 작은 아버지를 애도했다. [도움말-농심 홍보실, 참조-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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