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우유 '소비기한' 도입하면 국내 낙농산업 붕괴"
[단독] "우유 '소비기한' 도입하면 국내 낙농산업 붕괴"
  • 김현옥 기자
  • 승인 2021.03.11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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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한 냉장 유통 시스템 인한 변질사고 우려 크고
멸균유 외 시유도 수입 유통 가능해져 마당 내주는 꼴
2026년 20% 관세 폐지되면 국산제품 가격경쟁력 상실
낙농·우유생산자단체, "식약처, 식량 걱정하느라 안전 뒷전" 비판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식량낭비를 줄이기 위해 식품의 ‘유통기한’ 표시를 ‘소비기한’으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과 관련, 낙농 및 우유 생산자단체들의 반발이 거세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낙농업계와 서울우유, 부산우유 등 협동조합 형태의 우유생산자단체들은 안전을 책임져야 할 국가기관이 이에 역행하는 소비기한 제도 도입으로 수입우유에 날개를 달아줘 국내 낙농산업을 말살시키려 한다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앞서 작년 11월 24일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제2법안심사소위원회는 소비기한 표시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식품 등의 표시 광고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강병원의원 대표발의)에 대해 식약처가 경제적 편익만 분석하고 가장 중요한 소비자 안전은 고려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안건 심의를 유보(계속심사)한 바 있다. 

이와 관련, 낙농 및 우유생산자단체들은 소비기한 제도를 도입할 경우 현재의 불완전한 냉장 유통시스템으로는 우유 변질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할 공산이 클뿐아니라 멸균유는 물론 일반 시유의 수입 가능성마저 커진다는 점을 들어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으로 촉구하고 있다.

식품 유통기한이 소비기한으로 변경되면 우유제품의 순환주기가 늘어나 기업 측면에서는 이득이 되겠지만, 소비자 안전이나 낙농 및 우유생산자 입장에서는 큰 위협 요소로 작용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우유제품의 유통기한은 업체 자율적으로 11~15일 설정하고 있으나 20일의 소비기한이 적용될 경우 실질적으로 유통과정에서 머무는 기간이 지금보다 1.5~2배 정도 늘어나게 돼 수입우유로서는 호기를 맞게 된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국내 우유제품의 유통기한이 짧기 때문에 유통기한이 1년인 멸균유만 수입이 가능했지만, 현재의 유통기한보다 5~9일 정도 긴 소비기한이 적용되면 일반시유도 충분히 수입 유통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현재 중국 시장에는 호주산 시유제품이 항공 수송을 통해 공급되고 있다. 이에 국산 우유를 취급하는 중국 대리점 측에서 한국산 우유제품의 유통기한을 늘려 줄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신선함이 생명인 우유의 특성을 고려해 응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5년 후인 2026년부터 국내에 수입되는 우유제품에 대한 20% 관세가 폐지되면 수입우유 제품 가격이 그만큼 낮아지기 때문에 국산우유는 경쟁력을 완전 상실하게 될 처지에 놓여 있다.

이에 따라 우유생산자단체들은 굳이 우유제품의 유통기한을 소비기한으로 변경하고자 한다면 제조일자와 병기하는 방안도 고려해볼만 하다고 입을 모은다. 소비자들이 신선한 제품을 선택할 수 있는 정확한 기준과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알권리를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최대 우유생산자조합이면서 유가공업체인 서울우유는 식품 중에서도 특히 우유는 신선도가 중요하기 때문에 유통기한보다 언제 만들어졌는 지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아래 10여년 전인 2009년 7월부터 독자적으로 유통기한과 함께 제조일자를 병행 표기함으로써 소비자들로부터 높은 신뢰도를 얻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도 마트나 편의점 등 유통매장에서는 우유의 유통기한이 일주일이나 남았는데도 소비자들이 구매하지 않아 제품을 반품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소비기한을 적용하면 반품으로 인한 우유 폐기량은 오히려 더 많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현행법상 우유제품의 유통기한은 업체별로 자율적으로 설정하도록 되어 있어 서울우유의 경우 11일인데 비해 남양우유는 14일, 매일우유는 15일로 각기 다르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2002년도 이전에 법적으로 일률 적용했던 ‘우유 유통기한 5일’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대다수 소비자들은 무조건 제조일자와 가까운 우유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한데, 이는 곧 역으로, 유통기한이 길게 남아 있는 우유가 제조일로부터 얼마되지 않은 신선한 제품으로 오인한다는 것이다.

낙농업계 관계자들은 “식품은 멸균하지 않는 한 제조된 이후부터 품질이 변화하기 시작하기 때문에 유통기한이 길수록 신선하지 않다는 것은 일반적인 상식이다.”며 “무엇보다 식품의 안전을 확보해 국민 건강을 책임져야할 식약처가 농식품부에서 걱정해야할 식량 문제에 에너지를 쏟으며 소비기한제도를 도입하려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시장개방에 맞서 국내 낙농산업의 살길은 우유의 핵심 가치인 신선도와 품질로 승부해야 하는데, 소비기한으로 바뀔 경우 이러한 무기를 잃어버리는 꼴이 된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낙농육우협회는 최근 성명서를 통해 "식약처는 소비기한에 대한 사회적 우려에 대해 유예기간을 통해 소비자안전을 담보하는 장치들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지금껏 제시하지 않았다."고 비판하고, "소비기한 표시제 도입 이전에 법적 냉장온도를 현행 10℃ 이하에서 선진국 수준인 5℃ 이하로 조정하고, 유통매장 실태조사를 통해 냉장관리 체계 및 점검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소비자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식품별 냉장온도, 제품 보관방법 등 철저한 소비자 교육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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