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양희의 수다 in Jeju]-제주나물이야기_그밥에그나물?-감져(고구마)편
[류양희의 수다 in Jeju]-제주나물이야기_그밥에그나물?-감져(고구마)편
  • 제주=류양희 통신원
  • 승인 2021.01.1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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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선 고구마를 '감져', 감자는 '지슬'로 불러
일본서 가져온 씨고구마 구황작물로 널리 재배
김동인 소설 '감자'...가난의 굴레로 인한 인간 타락 그려
부산물 고구마순은 김치·줄기볶음 등 각종 요리에 활용

제주에 내려와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에피소드가 참 여럿이었다. 그중에는 언어와 관련된 것도 많다. 독특한 제주의 언어에 대해서만 얘기해도 책 한 권 뚝딱 만들어질 정도로 재밌는 일들이 많다. 

제주의 첫 직장에선 늘 앞쪽 화단이 골칫거리였다. 풀들이 금방금방 무성하게 자라기 때문에 그때그때 손을 보지 않으면 아주 지저분하게 된다. 하루는 바로 위 상사가 손수 화단을 청소하다가 창고에서 호미 좀 가져다 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래서 창고를 뒤졌는데 아무리 찾아도 ‘호미’가 없었다. 기껏해야 ‘낫’밖에 보이질 않았다. 할 수 없이 낫을 들고가서 호미는 없다고 내밀었더니 순간 멈칫하면서 “아, 그래 낫이라도 줘”하는 거였다.

그 때 그 상사는 서울 사람이 민망하지 않도록 나름 배려한 것이었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았다. 제주에서는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낫’을 ‘호미’라고 부른다. 그럼 ‘호미’는 뭐라고 부를까. ‘호미’는 ‘골갱이’라고 부른다. 이 사실을 제주민속촌에 가서 제주의 농기구를 관람하다가 뒤늦게 알았다. 그러니 제주에선 ‘낫 놓고 기역자 모른다’가 아니라 ‘호미 놓고 기역자 모른다’고... 굳이 따지고 들면 그래야 하는 것이었다.

이 해프닝과 비슷한 사례가 또 있다. 점심식사를 하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감자’ 얘기가 나왔다. 군감자가 참 맛있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군감자’가 어찌나 달고 맛있었는 지에 대한 대화가 막 오고가던 중이었다. 아무리 군감자가 맛있다한들 군고구마 만큼이야 할까. 강원도 사람들도 아니고 무슨 저렇게 감자 타령일까 싶었다. 그래서 얼른 “감자도 맛있지만 달기로 따지면야 고구마만 하려고요!”하며 끼어들었다. 순간 일동침묵. 그리곤 얼른 “맞아요. 고구마가 감자보다 훨씬 맛있지요.”하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들을 이어갔다. 그 역시 서울 사람을 한참 배려한 것이었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흘러야 했다.

그렇다. 제주에선 고구마를 감자라 부른다. 네이티브 스피커(? native speaker)의 발음은 ‘감져’라고 한다. 그럼 감자는 뭐라 부를까. 감자는 ‘지슬’이라 부른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감져’가 사투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국어사전에도 엄연히 ‘고구마의 옛말’이라고 분명하게 뜻풀이가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제주에선 오늘날의 감자보단 고구마가 훨씬 더 대세였다. 그리고 용케도 옛 이름이 그대로 살아남아 아직도 제주에선 고구마를 ‘감져’라고 부르는 것이다.(출처_올레바당 모살밭 고구마 홍보사진)

[‘감자’란 말은 한자어 ‘감저(甘藷,근대국어한자음표기로는‘감져’)’에서 온 것입니다.(중략) 그런데 조선시대의 ‘감저(甘藷)’는 처음에 지금의 ‘감자’가 아니라 ‘고구마’를 가리키는 말이었으므로, 지금의 ‘감자’는 표준어에서 의미변화를 겪은 것입니다. 지금의 감자는 한자어로는 ‘마령서(馬鈴薯)’입니다. 19세기에 ‘마령서(馬鈴薯)’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후 일반적인 통칭으로서는 ‘감저(甘藷)’에 속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통칭으로서의 ‘감저(甘藷)’는 ‘고구마와 감자’를 모두 아우르는 말이었으며, 그 품종의 다름에 따라서, 또는 지역에 따라서 다양하게 접두어를 붙여 호칭하게 됩니다.](김무림, ‘감자와 고구마’의 어원)

제주에서 감자를 ‘지슬’이라 부르는 것에는 또 이런 까닭이 있다.

[감자는 제주에서는 ‘지슬’ 혹은 ‘지실’로 불린다. 제주4·3의 역사를 그려낸 영화 <지슬> 덕분에 감자를 일컫는 제주만의 그 단어가 세상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게 됐다. (중략)

왜 감자를 지실이라고 불리게 됐는지는 알쏭달쏭하다. 일부에서는 지실(地實)이라는 한자를 써서 ‘땅에서 나는 열매’라는 한자어가 나중에 제주에서 부르는 감자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사실일까? 답을 하자면 잘 모르겠다.] (김형훈 기자, 땅과 건축<2> 격납고. 미디어제주(2018.06.07)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해보면, 감자와 고구마 중 우리나라에선 고구마의 도입이 더 빨랐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고구마를 감져라고 불렀으며 나중에 마령서라고 불렸던 오늘날의 감자가 들어왔을 때는 그저 ‘감져’의 다른 종류로 생각해 통칭 ‘감져’라고 불렀던 것이다. 이를 구분하기 위해 따뜻한 남쪽에서 잘 자랐던 감져를 ‘남져’라고 부르고 북쪽에서 잘 자랐던 감져를 ‘북져’라고 부르다가 ‘남져’에 ‘고구마’라는 일본에서 유래된 이름이 덧붙여지면서 북져는 그대로 ‘감자’라는 이름으로 남아 오늘날까지 ‘감자’라고 불리는 것이다.

재배에 있어서 따뜻한 날씨가 더 적합했던 남부지역과 제주에선 오늘날의 감자보단 고구마가 훨씬 더 대세였던 것이다. 그리고 용케도 옛 이름이 그대로 살아남아 아직도 제주에선 고구마를 ‘감져’라고 부르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고구마가 처음 들어온 것은 조선시대인 영조39년(1763년) 10월로 그 당시 일본에 통신정사로 갔던 조엄이 쓰시마섬에서 고구마를 보고 이것이 구황작물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씨고구마를 구하여 부산진으로 보내온 것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이듬해 조엄은 귀국 길에 다시 씨고구마를 구해서 동래지방 및 제주도에 심도록 하였다.(중략) 1960년대까지만 해도 고구마(감져)는 제주인들의 주식이었으며 생활경제의 밑천이었다. (중략)

제주도의 고구마 재배는 공업용, 식용, 사료용 등 그 이용도가 광범위 하였다. 고구마 재배는 보리 뒷그루에 고구마를 심으면 10월에 수확을 하게 되는데 집 옆에 1.5m정도 구덩이를 파서 짚을 깔고 ‘감져눌’을 만들어 고구마를 보관하였다.(중략) ‘감져눌’에 보관한 고구마는 쌀이 없는 제주민들의 겨울 식량이 되었던 것이다.

제주에서 고구마가 본격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일제시대 이후이다. 구황작물은 물론 전분의 원료로서 술과 알코올 제조에 이용되기 시작하면서 재배면적이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일본인 제주도지사는 고구마를 구황작물 또는 적지작물로 정하여 재배를 확대시켰으며 생산량이 증가하면서 육지 경인지방 및 대도시까지 공급되었다.(중략)] (이성돈, 제주감자, 고구마 재배의 역사. 헤드라인제주 2020.02.13.)

제주의 '감져'는 가난의 굴레도 결국엔 극복할 수 있다는 환경가능론의 능동성을 상징하며 오늘도 제주의 들녘을 빼곡이 채우고 있다. (출처_올레바당 모살밭 고구마 홍보사진)

고구마가 이렇게 제주에서 대세였으니 고구마줄기가 밥상에 자주 올랐던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고구마줄기볶음이 가장 흔했지만 요새는 고구마순김치나 고구마줄기를 고등어조림이나 육개장에 넣는 등의 다양한 활용도 되고 있다. 고구마 농사를 지어보면 알지만 고구마 줄기가 뻗어가면서 잎이 너무 무성하면 고구마가 크지 않고 아주 잘게 된다. 그러니 적당히 고구마 곁줄기를 따줘야 하는데 그것은 그대로 나물이 되는 것이다.

다만 고구마 줄기를 껍질을 벗겨내는 작업이 만만치가 않다. 어릴 때 이 고구마 줄기의 껍질을 벗겨내면서 질린 탓도 크지만 무엇보다도 손톱 밑이 아프기까지 했던 기억이 있어서 웬만하면 지금도 피하고픈 마음이 있다. 하지만 요새는 다 다듬어진 고구마줄기까지 쉽게 구할 수 있으니 큰 부담은 없다.

고구마줄기는 어디서든 아주 흔한 나물이지만 제주에서는 가난했던 삶을 지탱해준 주식으로써 고구마의 의미가 남달랐고 거기서 나오는 부산물로서 고구마줄기 역시 일반적인 나물의 의미와는 좀 남달랐다.

자료를 살피다가 김동인의 소설 <감자>에 등장하는 감자가 실제로는 고구마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친일작가 김동인의 감자는 가난의 굴레가 인간을 타락시킨다는 환경결정론을 상징하지만 제주의 감져는 가난의 굴레도 결국엔 극복할 수 있다는 환경가능론의 능동성을 상징하며 오늘도 제주의 들녘을 빼곡이 채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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