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양희의 수다 in Jeju]-제주나물이야기_그 밥에 그 나물?-미나리·부추·비듬나물편
[류양희의 수다 in Jeju]-제주나물이야기_그 밥에 그 나물?-미나리·부추·비듬나물편
  • 제주=류양희 통신원
  • 승인 2020.12.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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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엔 풀이 많은 만큼 삶의 지혜가 켜켜이 쌓인 나물도 많아
생선 요리 비린내 잡는 돌미나리 '미내기'는 야생도 존재
'세우리'로 불리는 부추는 쪽파에 가깝고 '비늠'나물도 인기

제주엔 생선으로 국을 끓이고 생으로 물회를 먹기에 비린내를 잡기 위해서 향이 강한 채소들을 많이 사용하는 편이다. 이미 언급한 바 있는 제피도 대표적이었지만 미나리도 빠질 리 없다. 제주에서는 미나리를 ‘미내기’라 부른다. 제주의 ‘미내기무침’은 물가에서 뽑아와서는 살짝 데쳐서 청장과 마늘 정도만 넣어 간을 맞추기 때문에 특히 습지가 있었던 바닷가 부근 서귀포 내창(하천) 마을들 중심으로는 간단한 반찬으로 애용해왔다.

미내기 무침
미내기무침(출처_제주인의지혜와맛)

육지에서는 아예 ‘미나리꽝’이라고 미나리 재배를 위한 별도의 무논이 있거나 벼 베기를 끝낸 논에다 키우는 게 보통이지만 제주에서는 논이 드물기 때문에 하천 변이나 습지에서 자생했다. 그런 미나리를 보통 논미나리와 구분해서 돌미나리라고 부른다. 

‘원래 미나리는 논에서 수확하는 논미나리와 밭이나 계곡 등에서 자라는 밭미나리로 분류되는데 우리는 밭미나리를 돌미나리라 부른다. (중략) 돌미나리는 길이가 짧은데 다소 질기고 억세며 향이 강해서 생채로 먹거나 샐러리에 넣어서 또는 녹즙으로도 맛있게 즐길 수 있다. 또 살짝 데쳐서 제육이나 편육에 감아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미나리강회, 상추나 쑥갓에 곁들여 쌈으로 먹는 미나리잎쌈도 별미다. (중략) ‘미내기’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제주의 돌미나리는 아직도 더러 야생이 발견되며 오일장 등 재래시장에서 간혹 할머니들의 좌판에서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서귀포시 일부 지역에선 미나리 생육 조건이 알맞은 곳이 많고 한겨울에도 전국에서 가장 좋은 미나리를 생산할 수 있는 자연 조건을 갖추고 있으나 다른 채소에 비해 많이 재배되지 않고 있다.’ (양용진의 로컬푸드 이야기, 제주일보. 2015.04.19)

세우리무침(출처_제주인의지혜와맛)

미나리 못지않게 제주에선 부추도 잘 활용했는데 부추를 ‘세(새)우리’라고 불렀다. 왜 ‘세우리’냐고 물으면 다들 알듯 모를듯한 미소를 띤 채 그저 “남자한테 좋다고...”라며 말끝을 흐린다. 정말 그래서 ‘세우리’인지 서울 ‘수유리’에서 살다 온 이방인으로선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일일이 그 뜻이 정말 맞냐고 물어보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고...

다만 부추의 방언으로 ‘정구지’라는 이름이 알려진 편인데 이것은 방언이라기보다는 한자 ‘정구지(精久持)’에서 온 말로 역시 직역하면 ‘정을 오래 유지시킨다’는 성(性)적인 관용표현이어서 아주 근거 없는 말은 아닌 것 같다. 실제 효능을 보면 그렇기도 하다. 게다가 부추는 사찰에서 금하는 오신채(五辛菜) 중 하나이지 않은가.

다만 원래 제주 세우리는 일반적인 부추보다는 쪽파에 가깝다는 자료가 있다. 하지만 이젠 그런 구분까지 명확히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부추는 저장성이 약한 반면 여러 차례 잘라도 계속 자라기 때문에 바로바로 밭에서 잘라와서는 여러 식재료로 활용했다. 다른 나물과 별다를 바 없이 청장과 다진 마늘 정도만 넣으면 ‘세우리 무침’이 된다.

90년대 대학가에서 떠돌던 우스개 소리 중 ‘잔디 파전’ 이야기가 있었다. 대학 축제 먹거리 장터에서 학생들이 파전 장사를 했는데 장사가 너무 잘 돼 그만 파가 다 떨어지고 말았다. 그러자 늘 기발한 발상으로 유명했던 한 학생이 얼른 캠퍼스의 잔디밭에 가서 몰래 잔디를 뽑아다가는 파전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다가 파전에 잔디밭에 있었던 ‘클로버’가 섞여 들어갔는데 이를 발견한 손님이 그 연유를 묻자 큰 몸동작으로 박수를 치고는 ‘행운의 특별 이벤트’였다며 파전 한 장을 더 갖다 주어 위기를 모면했다나 뭐라나.

비늠무침(출처_제주인의지혜와맛)

솔직히 우리나라의 이 다양한 나물들을 보면 서양인들은 뭐라 할까 궁금하긴 하다. 그들은 잡초라고 생각하는 것들도 우리는 밥상에 떡하니 한자리 차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물가에 아무렇게나 막 자라는 미나리도 반찬이 되고 미국에서는 잡초처럼 여긴다는 부추도 식탁에 올리니 도무지 이해가 안 갈 것이다. 게다가 나물 중엔 우리나라 사람들마저 잡초로 여기는 ‘비름나물’ 같은 것도 있으니 말이다.

제주에서는 육지보다 풀이 두 배 세 배 자란다. 풀의 양도 그렇거니와 풀이 자라는 속도도 마찬가지다. 아직도 전통문화가 강한 제주에서는 때마다 꼬박꼬박 가족 묘지에 벌초들을 하느라 웬만한 집들은 예초기 한 대쯤은 갖고 있다. 풀이 억세기도 어찌나 억센지 나일론 줄로 풀을 치는 예초기는 명함도 못 내민다.

아이들 학교에도-대안학교-일 년에 최소 세 번, 많게는 네 번 정도 아빠들이 모여 풀을 깎는다. 깎을 때마다 보면 풀이 무성하게 자라있는데 제때를 놓치면 금방 정글이 되고 그러면 뱀도 많아진다. 그래서 제주는 늘 풀과의 전쟁이다. 그런데 그렇게 자라는 풀들을 제주 사람들이 그저 베어 버리기만 했을까? 그중에 먹을 수 있을 만한 것들은 점점 식탁 위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비름’이다.

‘비름’을 제주는 ‘비늠’이라고 부른다. 육지에서는 ‘비듬’이라고 부르는 곳도 많다. 이 비름이 키가 금방 1m가량 크고 그러면 줄기도 굵어져 풀을 칠 때 늘 골칫거리다. 그러니 새순일 때 잡아야 한다. 그때는 잎도 줄기도 연해 나물이 되는 것이다. 그래도 질길 수 있기 때문에 살짝 데치기보다는 삶아야 한다. 질긴 풀이기에 먹기 좋게 삶기 시작했겠지만 실은 비름 잎 속에 미량의 수은이 있다. 수은은 열에 약하기 때문에 삶으면 휘발돼 버린다.

잡초처럼 보이지만 실은 나물이 되는 것들이 아주 많다. 그렇다고 질경이, 명아주 같은 것까지 다 언급하자니 제주 나물이야기가 아니라 제주 식물도감이 될 것 같다는 혼란이 생겨 슬슬 출구를 모색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제주엔 풀이 많은 만큼 나물도 많다. 아주 못 먹을 풀들이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삶의 지혜가 켜켜이 쌓여 때론 나물도 되고 약도 된다.

그래서 제주 밥상은 진정한 ‘행운의 특별 이벤트’ 같은 것 아닐까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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