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양희의 좌충우돌 제주정착기-수다 in Jeju] 살 집 찾아 삼만리(1)
[류양희의 좌충우돌 제주정착기-수다 in Jeju] 살 집 찾아 삼만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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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4.09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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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적인 폭염의 시작을 알리던 2016년 여름. 편도(!)로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휴가 시즌 정점이라 비행기 안은 여행객들로 한층 들 떠 있었지만 난 어디까지나 그들 가운데서조차 이방인이었다. 바다를 건너 제주에 가까워지자 하늘에서 한라산이 내려다보였지만 그것이 눈에 잘 들어올 리 없었다. 하루빨리 이곳에서 일자리와 살 집을 구해야 했고, 그보다도 더 시급한 건, 휴가 피크에 당장 하룻밤 묵을 숙소나 제대로 구할 수 있을지 예측 불허의 초조하고 심란한 시간이 재깍재깍 흘러가고 있었다.

일자리와 살 집, 이것은 따로 떨어진 문제가 아니었다. 일자리를 어디로 구하느냐에 따라 살 집을 구하는 위치도 달라진다. 그런데 제주는 살 집이 정해져야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외지인- 보통 제주 사람들에겐 ‘육지 것’이라 불린다. 제주에 40년 넘게 살아도 ‘육지 것’은 ‘육지 것’일 뿐. 웬만해선 제주사람 축에 끼기 쉽지 않다-에 대한 불신이 크기에 아무리 육지에서 이력서를 넣어봤자 채용되는 경우가 많지 않은 까닭이다.

결국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인데, 제일 답 없는 건 닭도 달걀도, 아무것도 없는 무모한 이방인들이었다. 남들은 제주로 이주하기 위해 몇 년동안 스케줄을 계획하기도 하고 예행 연습삼아 한달살이나 일년살이, 아니면 기러기 아빠를 육지에 둔 채 일단 내려와 살아보는 걸로 시작을 한다는데, 난 고작 제주행을 결정한 지 단 일주일만에 그 흔한 제주 이주 관련 다큐멘타리 한편 보지도 못한 채 비행기를 타버렸다.

극한 상황에 몰리면 극적인 상황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삼십 여 통도 넘게 급히 넣은 제주의 이력서들 중에서 그나마 실낱 같은 희망을 보여준 곳이 있어 그것만 믿고 내려온 길이다.- 그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또 하기로 한다- 다행히 내려온 당일, 비싼 돈 들여 비행기 타고 내려온 ‘육지 것’에 대한 업체 측의 배려로 1차 면접부터 심층 면접까지 일사천리로 보고나서야 문제가 잘 풀릴 것이란 싸인을 받았다. 이젠 살 집만 잘 구하면 됐다. 일터와 집 문제만 해결돼도 제주에 충분히 연착륙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제주에서 살 집을 구한다는 건 무연고 타지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것만큼이나 막막한 일이었다. 우선 시기가 맞지 않았다. 제주도는 신구간(新舊間)에 이사를 집중적으로 한다. 신구간이란 대한(大寒)후 5일에서 입춘(立春)전 3일 사이를 말하니 대략 음력 정월 초순경이다. 이 기간엔 그동안 지상의 일들을 관장했던 신(神) 들이 모두 하늘로 올라가 옥황상제에게 결산 보고를 올리고 옥황상제의 결재를 기다리는 시기다.

그러면 옥황상제께선 보고 내용을 꼼꼼이 살피시고 실적에 따라 신들에 대한 인사 발령을 단행하신다. 인사 발령이 난 신들은 새로운 임지에 부임하게 되는데 그 신들이 아직 부임하기 전, 그 기간동안 제주사람들은 평소 꺼리던 일을 빨리 해치워야 한다. 이사나 집수리 같은 것들은 감히 신들의 기존 질서를 흐트러뜨리는 일로 얼른 이 기간에 신들 몰래 해버려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신구간이 아니면 웬만해선 이사들을 잘 안한다.

버스 정류장에서 집찾기란 정말이지 이방인에겐 너무나 막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급하니까 버스 정류장마다 훑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상상해보시라, 낯선 이방인이 정류장마다 돌아다니면서 정류장 유리벽을 더듬거리는 모습을...

이사를 잘 안한다는 건 거래되는 매물 자체가 거의 없다는 말과 같다. 신구간에는 보통 버스정류장에 손글씨로 ‘방 있음’같은 종이가 나붙기도 한다. 하지만 신구간이 아니면 이런 글도 보기가 힘들다. -‘버스 정류장에서 집 찾기’란 정말이지 이방인에겐 너무나 막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급하니까 버스 정류장마다 훑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상상해보시라, 낯선 이방인이 정류장마다 돌아다니면서 정류장 유리벽을 더듬거리는 모습을...- 제주의 웬만한 정보가 다 있다는 생활정보지 ‘오일장신문’도 제주시에서는 어느 정도 유용할지 모르나 제주시가 아닌 시외 지역에선 광고가 뜸해 별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듯 싶었다. 그리고 내가 집을 구해야 하는 곳은 바로 그 시외 지역이었다.

위 아래보다 양 옆으로 긴 타원형 제주도는 2006년 특별자치도로 출범하면서 가로로 절반 잘라 위쪽은 제주시, 아래쪽은 서귀포시로 나눴다. 제주도 인구는 2017년 11월 현재 내국인 기준 65만6013명이고 이중 47만8161명이 제주시에, 17만7852명이 서귀포시에 산다.

비율로 따지면 대략 73%가 제주시에 나머지 27%가 서귀포시에 사는 것이다. 압도적으로 제주시 인구가 많다. 그래서 제주도는 제주시를 중심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내가 일하게 될 곳은 서귀포시에서도 동쪽으로 치우쳐있는 표선이라는 곳에 있다. 막상 가보니 면 소재지 부근에는 시골이라 하기엔 비교적 번화한 곳이었지만 제주시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부동산 정보로는 집을 구할 수 없는 곳이었다.

당연히 인터넷을 통한 매물도 한계가 있다. 시골 어른들이 자기 집 세놓는데 인터넷에 올릴 리 없질 않은가.

그래서 마지막으로 들어가 본 곳이 부동산중개사무소였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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