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양희의 수다 in Jeju] -제주나물이야기_콩과 콩나물
[류양희의 수다 in Jeju] -제주나물이야기_콩과 콩나물
  • 제주=류양희 통신원
  • 승인 2020.07.2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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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물용 콩생산량 중 제주가 80% 차지... 90년대 수입산 대두에 밀려 생산 시작
콩나무 뿌리혹박테리아가 질소비료 만들어 화산섬 토질에서도 농사 가능케 해
부산물 콩잎도 찜·장아찌·나물로 활용...돼지고기 구이엔 콩잎쌈이 필수일 정도
순대-간장·회-된장 소스 외에도 물회 냉국 등에 날된장 풀어 먹는 문화로 발전

아침에 눈을 떠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우리가 먹는 음식에 콩과 관련한 것들은 얼마나 많을까? 단순히 콩을 섞은 밥을 먹는 것 외에도 두부나 간장 고추장 된장 같은 콩을 이용한 여러 식품이나 양념들도 있을뿐더러 콩과 전혀 연관성이 없을 것 같은 음식들도 상당수는 콩기름으로 볶거나 부쳐 먹으니 콩은 주식인 쌀보다도 우리의 식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우리가 콩을 이렇게 다양하게 활용한 그 근원을 찾아가다 보면 콩의 원산지가 바로 우리나라라는 사실까지 알게 된다. 식품전문지 기자 시절 콩과 관련한 세미나를 취재한 적이 있는데 그 때 이런 사실을 처음 알았다. 지금은 우리나라가 콩 수입국이 되어 콩의 원산지였다는 사실을 무색케하지만 알고 보면 전 세계에 퍼진 콩들의 원산지는 지금의 중국 만주 남부 일대와 한반도 북부이고 그곳이 고조선과 고구려의 땅이었으니 우리나라가 원산지인 것이 맞다. 오죽하면 그 쪽 강 이름이 두만강(豆滿江)일까. 콩이 가득찬 강이란 뜻인데 지금도 그 쪽에는 콩을 많이 재배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여전히 곳곳에서 콩을 많이 재배한다. 제주라고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속속들이 살펴보면 제주와 콩은 남다른 인연이 많다. 아주 단편적인 통계부터 언급해보자면 현재 나물용 콩 생산에 있어서는 제주가 국내 전체생산량의 80%를 차지한다. 제주는 원래 대두를 많이 심었다. 그런데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값싼 수입콩이 늘어나 위기를 맞았다. 이때 나물용 콩의 생산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당시에 재래종 나물콩인 ‘준저리콩’을 대량으로 심기 시작했고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풍산나물콩’을, 지금은 ‘신화콩’ ‘해품콩’등으로 나물콩에 있어서는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제주콩 콩나물(출처_풀무원)
콩나물콩밭(출처_제주로의농부여행 블로그)

주변에 생업으로 농사를 짓는 이들이 꽤있다. 서울이 아닌 지방이기에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지극히 도시의 소비문화적인 관점에서 볼 때 요즘 세상에 농사를 지어 생계를 이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짐작조차 쉽지 않다. 하지만 콩 농사에서 보듯 제주사람들의 이러한 선구안은 때때로 적시타를 칠 수 있었다. 그래서 제주는 아직도 농업에 희망을 놓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제주가 농사짓기 좋은 땅은 아니다. 화산섬에서 무슨 토질을 기대할 수 있었을까. 역설적으로 그래서 제주에서는 더더욱 콩을 심었다. 콩의 뿌리에는 뿌리혹박테리아가 산다. 이것이 공기 중의 질소를 고정시켜 스스로 질소비료를 만들어준다. 그러니 밭에다가 비료대신 콩을 심고 그것을 거둔 후에는 보리를 심든지 다른 이모작 작물들을 심는 것이다. 잘 생각해보니 예전 논두렁에 콩을 심어놓은 풍경이 떠올랐다. 같은 원리였던 것이다.

콩이 많이 재배되면서 제주사람들은 이것을 어떻게 활용했을까. 도시 사람의 눈으로는 그저 들판의 풀처럼 보이는 것들도 다 나물로 만들었던 우리나라 사람들이다. 그 너른 콩밭에 콩잎들을 그냥 둘리 없다. 그래서 제주 사람들은 콩잎을 먹는다. 깻잎은 먹어봤어도 콩잎은 들어본적이 없던 서울 사람으로서는 매우 생소했지만, 제주 사람들은 꼭 깻잎처럼 콩잎을 먹는다. 

당연히 콩잎쌈도 먹고 깻잎찜처럼 콩잎찜도 있을뿐더러 콩잎 장아찌도 있다. 그리고 콩잎 나물도 있다. 특히나 돼지고기를 먹을 땐 꼭 콩잎쌈을 찾는다. 제주에서 실컷 콩잎 반찬들을 경험하고 나서야 꼭 콩잎을 제주에서만 먹는건 아니란 걸 알았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콩잎을 다양하게 활용하는 곳이 또 있을까 싶은 문화 충격은 여전하다.

된장콩잎장아찌(출처_남일푸드)

콩잎이 깻잎보다 질길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지만 콩잎도 막 돋은 여린 잎을 활용하기에 깻잎과 큰 차이를 못느꼈다. 깻잎의 매력은 콧속을 감도는 진한 향인데 오히려 그것 때문에 깻잎을 멀리하는 이도 있다. 콩잎에는 그런 강한 향이 없으니 깻잎에 거부감이 있는 이들에게는 오히려 추천할 만하다.

‘팥죽을 먹인 원아들은 빈뎅이 일고, 콩죽 멕인 다슴아들은 솔친다’는 제주속담이 있다. 팥죽을 먹인 친아들은 비듬이 일고 콩죽을 먹인 의붓아들은 살이 찐다는 말이다. 몇 차례 언급한 바 있지만 제주는 논이 드물어 주식에 있어서는 쌀 문화가 아니었다. 보리밭이나 메밀밭이 그래서 육지의 논만큼이나 많다. 하물며 단백질이 풍부한 콩은 어땠을까? 제주속담이 그 답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제주에서 콩의 위치를 생각할 때 여름에 먹는 제주의 콩국수도 다르게 다가왔고 그 흔한 인절미도 제주에선 다르게 다가온다. 그러니 제주에서의 된장 고추장 간장은 또 어떨까. 생각보다 역사가 길지 않은 고추장은 빼놓고라도 제주에서는 거의 모든 음식의 소스가 된장과 간장이다. 순대를 간장에 찍어먹고 회를 된장에 찍어먹는 모습을 목격했을 땐 다시한번 문화충격을 느꼈다.

제주 된장(출처_제주 오라향)

그런데 이보다 더 놀란 것은 제주에선 된장을 날로 물에 풀어서 먹는 모습이었다. 육지에선 그렇게 하질 않는다. 된장에 군내가 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주 전통된장에선 군내가 나지 않는다. 이에 대해 제주향토음식보존연구원 양용진 원장의 설명은 이렇다. 육지에서는 부패균이 남아서 겨울철에 발효균이 죽는 경우가 나타나는데 혹독한 추위가 없는 제주에서의 된장은 그렇지 않아 군내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발효 음식은 생으로 먹어야 제격인데 생된장을 먹는 제주 사람들은 발효균을 그대로 섭취하는 것이란 설명도 덧붙였다.(미디어제주, 20.06.18)

이런 까닭으로 제주에선 물회와 냉국에 날된장이 들어가고, 이러저러한 제주의 음식에 된장을 많이 쓰니 또 콩 농사는 더 많이 짓게 되는 것이었다. 더불어 콩잎은 또 더 활용할 방법을 찾게된 것이고, 게다가 요즘엔 콩나물 콩까지...

어릴적 읽었던 ‘잭과 콩나무’란 동화가 생각난다. 가난한 잭의 집에선 젖소가 유일한 수입원이었는데, 젖소가 늙어서 우유가 더 이상 나오지 않자 잭의 어머니는 소를 시장에 내다 팔라고 한다. 하지만 잭은 소를 장에 끌고 가다가 길에서 만난 사람에게 콩알 몇 개와 소를 교환해 버리고는 집으로 돌아온다. 화가 난 어머니는 콩을 집 밖에 던져버리고 만다. 그러나 다음 날부터 놀라운 일은 벌어지기 시작했고 결론적으로는 큰 부자가 돼 행복하게 살았다는 얘기다.

이 이야기를 어른이 된 지금 제주에서 다시 떠올려보니 아주 색다르게, 지극히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지금의 제주 농업 현실과 접목시켜보면 이해가 쏙쏙 잘 된다.-실제로 제주에서는 목장을 소유한 농민들이 목장용지에 콩 등 작물을 재배하는 것을 놓고 지자체와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어쩌면 예나 지금이나 잭은 미래를 내다본 현자(賢者)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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