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양희의 수다 in Jeju] 제주 해산물이야기_미역
[류양희의 수다 in Jeju] 제주 해산물이야기_미역
  • 제주=류양희 통신원
  • 승인 2020.06.08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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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역귀 달린 추자도 자연산 돌미역은 미식가들에 강추하는 맛
더운 날 제주서 즐기는 미역된장냉국은 여행의 한페이지 장식
기미 주근깨 등 피부미용·변비예방·항암·탈모방지제로도 쓰여
산모젖부터 학비·건강·혼백까지 챙겨주는 우리네 어머니 닮아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밥 먹을 때 국물이 없으면 퍽퍽해 제대로 식사를 못 한다. 그러나 반찬은 평소 먹는 밑반찬 그대로일 지라도 국물이 무엇인가에 따라 한 끼 식사를 제대로 두둑이 한 느낌을 받곤 한다. 그래서 아주 야박한 분식집이라도 김밥을 주문하면 어묵국물이나 계란국물이라도 꼭 함께 나온다.

국물의 대표적인 것이 찌개와 국인데, 찌개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김치찌개와 된장찌개이고, ‘국’하면 미역국, 콩나물국 등을 생각한다. 아마도 이 대목에서 쇠고기무국을 떠올렸다면 경제적으로 다소 넉넉한 환경에서 성장기를 지낸 사람으로 생각해도 무방하다. 아무래도 생활습관과 경제적인 수준이 다 다를 것이니 말이다. 아예 국물음식까지 따질 여유조차 없이 여건이 더 팍팍했던 성장기를 거친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 여건과는 별개로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미역국에 대한 경험은 충분하다.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몇 나라를 빼고는 전 세계적으로 섭취하는 일이 드문 미역을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먹게 된다. 물론 모유를 통해서 간접적이긴 하지만 말이다. 특히 생일에는 꼬박꼬박 미역국을 챙겨 먹는 풍습이 있기에 미역은 우리와는 아주 친근하다.

우리가 보통 먹는 미역에는 완도 미역과 기장 미역이 유명하다. 두 미역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기장 미역은 잎이 좁고 두꺼운 북방산 미역에 속하고 완도 미역은 기장 미역에 비해 잎이 넓고 얇은 남방산 미역에 속한다. 기장 미역은 옛날 임금님 수라상에까지 올랐다고 해서 유명하지만 우리나라 미역 총 생산량의 5% 정도 밖에 안되고 나머지 95%가 완도를 중심으로 한 남해에서 생산되니 아마 보통 우리가 쉽게 맛본 미역일 것이다.

미역에도 맛 차이가 있을까? 당연히 있다. 남방산 미역은 잎이 넓고 얇으니 부드러운 식감이 두드러진다. 반대로 북방산 미역은 탄력있는 맛이 입맛을 돋군다. 하지만, 우리가 보통 마트에서 구입하는, 손질이 어느 정도 되어 있어서 쉽게 조리해 먹을 수 있도록 한 가공미역으로는 이러한 맛의 차이를 느끼기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미역의 미세한 맛 차이마저 꼼꼼히 따지는 미식가들은 그래서 더 좋은 미역을 찾게 되는데, 그런 이들이 선호할 만한 미역으로 강력히 추천할 만한 것이 바로 제주산 돌미역이다.

완도에서 제주로 내려오는 중간에 추자도에는 자연산 돌미역이 많다.(출처_세계자연유산제주)

지리적으로 완도에서 조금만 아래쪽으로 내려오면 제주로 내려오는 중간에 추자도가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잠시 전라남도에 속한 적이 있을 뿐 아주 오래전부터 제주에 속해있는 섬이다. 그래도 실제로는 제주 부속섬이라기보다는 육지에 딸린 섬 같은 느낌이 더 든다고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추자도는 지리적으로만 제주에 속할 뿐 화산섬이 아니다.

추자도는 상추자도와 하추자도가 중심이지만 그 밖에 여러 무인도들이 딸려있어 다도해를 이룬다. 날이 맑은 날에는 제주에서 추자도 인근 섬들이 신기루처럼 어렴풋이 보일 정도인데 이 추자도에 미역이 얼마나 많은지 추자도에 딸린 섬 중에 아예 ‘미역섬’이라 이름 붙은 곳이 있을 정도다. 그것도 한 곳이 아니다. ‘큰 미역섬’ ‘작은 미역섬’ ‘밖 미역섬’이다.

추자도 돌미역은 완전히 자연산 그대로이기에 미역의 윗부분에 ‘미역귀’까지 달렸다.(출처_추자도수협)

추자도에서 자라는 미역은 다 자연산 돌미역이다. 바위에 붙어살아 돌미역이라 이름이 붙었다. 추자에선 돌미역을 채취해 그대로 햇볕과 해풍으로 말린다. 완전히 자연산 그대로이기에 미역의 윗부분에 ‘미역귀’까지 달렸다. 그래서 추자도 돌미역은 ‘산모미역’으로 인기다.

제주의 돌미역은 자연산으로 채취해 해풍과 햇볕으로 말린다(출처_제주한스에코팜 홍보사진)

추자도에서 조금만 더 내려오면 제주 본섬인데 제주도 앞바다라고 추자도와 다른 바다는 아닐 것이다. 그래서 제주는 워낙 자연산 미역들이 많았기에 미역 양식까지 생각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을 정도다.

제주에는 돌미역뿐만 아니라 ‘넓미역(넙미역)’도 있다.(출처_국립수산과학원 남해수산연구소 넓미역 양식가이드)

제주에는 돌미역뿐만 아니라 ‘넓미역(넙미역)’도 있다. 넓미역은 제주와 울릉도 인근 일부에서만 자란다. 넓미역은 이름 그대로 잎이 넓다. 그래서 주로 ‘미역쌈’으로 잘 먹게 된다. 다만 워낙 서식지가 좁은데다가 수량도 적어 아예 9~11월에는 채취가 금지되고 있으며 인공종묘를 통해 양식을 시도하고 있다. 특히 넓미역은 우도가 유명하다. 우도의 산호에 미역이 자생하다가 미역과 함께 산호 부스러기가 떨어져 나와 그 산호 부스러기가 쌓여 우도의 산호백사장인 서빈백사를 이뤘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제주에는 ‘애기짐광 메역짐은 베여도 안 내분다(아기짐과 미역짐은 무거워도 안 내버린다)’는 말이 있다. ‘마른 미역 하나를 한 락이라 하고, 열락이 한 뭇이 되며, 열 뭇이 한 뭉치가 된다. 옛날에는 한 뭇의 가격이 보리쌀 몇 말을 살 정도였다고 한다(한국세시풍속사전-미역해경)’ 그러니 제주에서 미역을 얼마나 소중히 여겼을까?

제주에선 제사상에 미역국이 올라간다. 보통은 옥돔과 미역을 넣은 옥돔국을 올리나 아예 순수 미역국을 올리기도 한다. (출처_비짓제주 황금어장 식당 옥돔미역국 사진)

그래서 제주에선 제사상에 미역국이 올라간다. - 그 지역의 식(食)문화를 살피기에 제사상만큼 좋은 것이 없다. 제주 제사상에는 카스테라같은 아주 독특한 음식들이 올라가는데 그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자세히 하기로 하겠다-보통은 옥돔과 미역을 넣은 옥돔국을 올리나 아예 순수 미역국을 올리기도 한다.

그러고보면 전복미역국 성게미역국 보말미역국 등 생선이나 해물들이 보통 미역과 많이 결합하는데 눈으로 보기엔 워낙 미역들에 덮여있어 그저 다 미역국으로 보인다. 생선이 들어간 미역국의 경우 참기름으로 볶지 않아도 될 만큼 생선의 기름이 미역국의 맛을 적절히 더해준다.

제주 사람들은 점점 더워지는 날에는 미역된장냉국을 즐겨 먹는다. 제주의 냉국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한바 있지만 찬물에 날된장을 풀어 빨리 만들어 먹는 것인데 된장 냉국이 육지사람들로서는 영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여름에 제주를 여행하는 이들이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식당이 아니라 현지인 식당을 들르면 심심치 않게 맛볼 수 있으니 자꾸 먹다보면 곧 익숙해지고 그 맛을 즐길 수 있게 된다. 

제주 미역은 단순히 식재료뿐만 아니라 기미나 주근깨 개선 등 피부미용 화장품 원료로도 쓰이고 변비예방이나 항암 효과 등이 있어 기능성식품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특히 넓미역의 ‘트리메틸싸이클로 헥실 아세테이트(trimethylcyclohexyl acetate) A’물질이 탈모방지 효과가 있어 실제 탈모방지제로도 활용되고 있다.

이처럼 제주의 미역은 아기 때는 젖을 만들어주었고 클 때는 학비를 마련해주었으며 다 커서는 바쁜 일상에 놓치기 쉬운 끼니를 챙겨주었고 늙어서는 건강까지 꼼꼼히 책임져 준다. 그리고 죽어서는 혼백(魂魄)까지 함께 해준다. 항상 옆에 있으면 귀한 줄을 잘 모른다. 그러나 없으면 그 때서야 깨닫는다. 국물 없이 밥을 먹어봐야 그때서야 깨닫는 퍽퍽함처럼 말이다.

바쁜 아침이지만 따뜻한 미역국 한 그릇이 있어 든든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던 아침밥상이 생각나 잠시 가슴까지 따뜻해졌다. 불현듯 미역이 참 우리네 어머니들과 닮은 데가 많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특히 제주에서의 미역은 더더욱 그러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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