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양희의 수다 in jeju] - 제주 해산물 이야기_성게
[류양희의 수다 in jeju] - 제주 해산물 이야기_성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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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4.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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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당 성게알은 10g 남짓...'알'이 아닌 '생식소'가 정확
제주 해녀들 일제시대 역사적 아픔으로 머구리 채취 기피
조업 힘든 만큼 귀한 '구살(성게)국은 제주도 인심의 척도'
초밥 칼국수 술안주 등 요리법 다양...남성에 좋은 음식

‘이 음식이 내 앞에 이르기까지 수고하신 모든 분들의 정성을 생각하며 감사히 먹겠습니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감사한 마음으로 몸과 마음을 치료하는 약으로 알아 함께 사는 세상을 이루고자 이 음식을 받습니다’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은 혼자 못가지듯이 밥은 서로서로 나눠먹는 것입니다’

우리집 아이들이 다니고 있거나 거쳐 온 어린이집과 학교에서 점심을 먹기 전 암송하는 ‘밥가’이다.

제주에서 살면서, 또 제주의 먹거리들을 소개하면서 아이들이 무심코 읊조리는 이 가사를 다시한번 되새겨 보게 된다.

제주에서 성게를 한참 들여다보면서도 그랬다. 과연 누가 처음 이것을 보고 먹을 생각을 했을까. 밤송이는 익으면 벌어지기라도 해서 그 안에 먹을만한게 있다는 걸 알 수 있지만 성게는 그렇지도 않다. 성게에 대한 자료를 이곳저곳 찾다가 우연하게 본 어느 블로그에서는 이런 의미심장한 글귀도 있었다. ‘성게를 누가 처음 먹었을까? 그는 가장 강한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가장 약한 사람이었을까?’

성게는 야행성이다. 낮에는 바위틈에 숨어 있다. 해녀할망들은 1~2분 정도를 숨을 꾹 참고 들어가 가뜩이나 새까만 제주의 바닷속 바위틈을 더듬더듬해 뾰족뾰족한 성게를 잡아 오는 것이다. 아주 가끔씩 성게를 잘못 잡아 가시에 찔리기라도 하는 날에는 그 통증이 몇 시간은 이어진다.

제주산 성게가 비싼 이유는 해녀들이 자맥질로 채취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힘들여 잡고나서도 성게를 처리하는 일 역시 만만치가 않다. 일단 칼로 반을 잘라 내장을 버리고 일일이 티스푼으로 성게알을 떠낸다. 그렇게 성게 한 마리에서 얻어지는 성게알이 얼마나 될까? 겨우 10g 안팎이다. 보통 상품화되어 판매하는게 100g 또는 200g 이니, 그럼 그런 상품 하나 만드는데 몇 번의 자맥질을 거쳐야 하는 것일까? 보통 해녀들은 하루 2~3kg정도 성게알을 얻는다고 하니 그럼 또 대체 얼마나 많은 성게를 잡아야 하는가. 해녀 할망들이 바다에 들어가 성게만 잡아오는게 아니니 바다에서 고령의 할망들 노동력은 우리의 상상범위를 훨씬 뛰어넘는다.

“제주도 인심은 구살국에서 난다”는 말이 있다. 구살은 성게를 이르는 제주말이다. 제주 해녀들이 바다에서 성게를 잡아와도 그것이 그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었다. 제주 안에서 물고기들은 흔했지만 성게처럼 바닷속에 들어가 잡아와야만 먹을 수 있는 것은 제주 안에서도 내다 팔면 돈이 되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성게는 대부분 일본으로 수출됐다.-가족의 생계와 직접 연결돼있으니 성게가 얼마나 귀한 것일까. 그래서 귀한 손님이 오면 구살국을 끓여 대접을 하는 것인데, 그 국 안에 성게알이 얼마나 들어갔느냐에 따라 집주인의 손님에 대한 마음 씀씀이를 알 수 있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성게미역국
성게미역국_“제주도 인심은 구살국에서 난다”는 말이 있다. 구살은 성게를 이르는 제주말이다.

구살국은 성게알에 미역을 함께 넣어 끓인다. 성게와 미역은 궁합이 아주 잘 맞는다. 그런데 시각적으로 성게알보다는 우선 미역이 눈에 띄게 마련이다. 그래서 점차 성게국이 성게미역국이 됐다.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그러나 이름은 바뀔 수 있지만 맛은 그대로다. 미역이 들어갔으니 임산부에게 좋은 것은 당연지사며, 해장에도 좋고 무엇보다도 성게는 남성들에게 좋은 음식 중 하나다.

성게는 극피동물 중 하나로 세계적으로는 약 900여종이 있다. 그중 우리나라에는 약 30종이 있는데 보통은 보라성게와 말똥성게, 분홍성게 등을 식용하며 이것들은 제주에서 역시 대표적으로 잘 잡힌다. 우리가 식용하는 성게알은 정확히는 성게의 생식소(정소, 난소)이다. 성게는 암수가 따로 있는데 정말 성게알이라면 수컷 성게에서는 알을 구할 수가 없어야 한다. 그러나 알이 아니라 생식소이기에 암수에는 각각 생식소가 있어서, 보통 암컷은 황갈색을 수컷은 황백색을 띤다.

성게와 성게알(출처_전복마을 업체 홍보사진)

해녀들이 바다에서 3~4시간을 작업하고 나와서는 성게 뒤처리 작업에 또 2~3시간을 보낸다. 그럼 끼니를 또 대충 때워야 하는데 손에 든 것이 성게알이면 얼른 밥에다가 성게알을 넣고는 간장으로 간을 맞춰 비벼서 먹는다. 거기에다가 참기름 살짝 더하면 그 이상 더할 무엇이 있을까. 그것에서 상업적으로 발전시킨 것이 지금의 성게비빔밥이다. 비빔밥에 뭘 넣느냐에 따라 당연히 맛이야 천차만별이겠지만 신선한 성게가 아니고서는 쓴맛이 강하게 나기 때문에 정말 성게 비빔밥은 산지가 아니면 제 맛을 보기가 쉽지 않다.

물론 그렇다고 제주의 모든 식당들이 제주산 성게를 다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제주에선 성게 잡이에 해녀 할망들의 수작업이 절대적이어서 가격이 비쌀 수 밖에 없다. 그에 비해 통영산 성게는 값이 좀 싼 편이라 알게 모르게 통영산을 많이 쓰기도 한다. 그것은 통영산의 가치가 떨어져서가 아니다. 조업 방식의 차이가 있어서 그렇다.

제주 바다에선 해녀가 성게를 잡는다면 통영에서 머구리가 작업을 한다. “머구리란 다이버나 잠수부를 일컫는 옛말이다. 실제 제주에서는 잠수를 전문으로 물질하는 남자를 ‘머구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중략) 머구리는 우주복 같은 잠수복을 입고 수면 위와 연결된 호스를 통해 공기를 공급받는다. 마치 우주인이 유영하는 모습과 같이 물속에서도 이동을 하며 작업을 한다(대단한 바다여행-머구리 이야기, 윤경철)” 해녀들이 숨을 참고 한번 바다 물속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시간이 1~2분 내외라면 머구리는 보통 1시간까지도 작업이 가능하다. 작업량에서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제주에도 머구리가 있었다. 하지만 제주 해녀들은 근본적으로 머구리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인식이 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의 머구리들이 제주 바다에 몰려들어와 해산물들을 싹쓸이해가면서 해녀들의 생존권이 크게 위협을 받았기 때문이다. 결국 이것은 제주 해녀 항일운동으로 이어졌다. 게다가 역사적으로 물질은 여성 몫으로 인식돼오던 제주에서 머구리 작업이 활성화될 수는 없었다. 이러한 인식은 오늘에도 이어져 가끔씩 해녀 할망들과 레저를 즐기러 온 스킨스쿠버들 간에 긴장감이 조성되기도 한다.

성게비빔밥(출처_비짓제주, 성산 바다의집 홍보사진)
성게칼국수

제주에서 성게를 활용한 음식들은 아주 많다. 초밥에도 성게알이 들어가고 성게국수나 성게칼국수도 있으며 술안주로도 활용된다. 이 식재료를 다 감당하려면 성게를 엄청나게 잡아들여야 한다. 당연히 생물자원 보존 부분에서 걱정이 되는 대목일 수 있다. 하지만 실상은 또 그렇지가 않다. 성게는 보통 미역이나 다시마같은 해조류들을 먹어치운다.

성게가 많아지면 바다가 사막화되는 백화현상이 그만큼 빨라진다. 그래서 성게를 그때그때 잡아내야 하지만 앞에서 언급했듯 값싼 성게가 등장하면서 수익성이 떨어져 제주에선 성게가 있더라도 전복 등 좀 더 값을 받는 것 위주로 잡다보니 바다에 성게가 그만큼 더 늘어나는 추세다.

그러니 필자라도 나서서 제주산 성게를 홍보해 소비 촉진에 나서야겠다. 효과적인 홍보문구로 어떤 문구가 있을까 하다가 과거에 유행했던 광고 문구 하나가 떠올랐다. “남자한테 참 좋은데, 정말 좋은데, 뭐라고 설명할 방법이 없네. 직접 말하기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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