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양희의 수다 in Jeju]-제주 해산물 이야기_보말
[류양희의 수다 in Jeju]-제주 해산물 이야기_보말
  • 제주=류양희 통신원
  • 승인 2020.04.13 06: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골뱅이·달팽이·다슬기 등으로 불리는 '바다 고둥'의 제주도식 표현
바닷가 돌틈에 서식...세계에 6만5천여종·우리나라엔 360여종 분포
4.3사건때 8년간 어업금지령으로 굶주리던 시절 대표적 구황식량
표선 해비치해변 '당케올레국수'집 보말칼국수 현지인 맛집으로 유명

더 이상 전략이 아닌 보통의 상식이 된 지 오래된 마케팅 전략 중 하나가 바로 '어린이 고객에 주목하라'는 것이다. 어린이들의 입맛과 시선을 사로잡아야 어릴 때 각인된 기억이 어른이 돼서까지 이어져 제품에 대한 충성도가 지속된다는 데서 비롯됐다. 어른이 된 그들의 아이들까지 대를 이어 상품 취향이 이어질 것이라는 점에서도 이 전략은 주효하다. 그걸 잘 알기에, 정작 어른들은 자신의 아이들에게 어릴 때부터 식습관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바른 먹거리를 먹이기 위해 이래저래 안간힘을 쓴다.

지금이야 어린이식품안전관리보호구역으로 설정돼 초등학교 앞에서 불량식품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80~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지금의 식품 위생 안전 기준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먹거리들이 어린 고객들을 상대로 판매됐다.

그 중에서는 요새 다 큰 어른이 돼서 레트로식품으로 찾기까지 하는 불량식품류들도 있었고 포장마차에서 파는 김밥, 순대, 떡볶이, 튀김 같은 것들도 많았다. 그 중 번데기 같은 것은 정말 어릴 때 먹어봤기에 지금도 아무렇지 않게 먹을 수 있지, 만일 어릴 때 먹어보지 않고 어른이 돼서 처음 접했더라면 혐오감에 인상부터 찌푸렸을지도 모른다.

학교 앞에서 팔던 것 중에는 번데기 옆에, 혹은 번데기를 대신해 종이 고깔에 100~200원어치 담아 팔던 다슬기도 있었다. 그 때 우리들은 그것을 ‘소라’라고 했다. 실제로 종이 박스를 오려 적어놓은 가격표에도 다슬기라기보다는 ‘소라’라고 대부분 적어 놓던 기억이 있다. 어쨌든 아이들은 입으로 기가 막히게 소라 알맹이를 쪽쪽 잘도 빨아 먹었고, 필자는 아무리 알맹이를 먹으려해도 흡입이 되지 않아 그저 짭쪼롬한 국물만 빨아먹다가 결국엔 집까지 와서 바늘로 소라 속에 찔러넣어 겨우겨우 꺼내 먹었던 기억이 난다.

제주에 처음 내려왔을 때 아이들과 바닷가 돌 틈에서 채취한 보말들의 이름을 다 몰라 일일이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며 식용 여부를 알아보았다.

어릴 때 안 되던 것은 희한하게 어른이 돼서도 잘 안된다는 걸 제주에 내려와 알았다. 수많은 보말들을 바늘로 힘겹게 꺼내먹으며 말이다. 다슬기는 보통 민물에서 사는 나선형 패류를 지칭한다. 그런데 이것이 민물에서만 사느냐하면 그렇지가 않다.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곳에서 사는 것도 있다. 그런데 더 나아가보니 아예 바다에서도 산다.

그래서 이것을 통틀어 ‘고둥’이라고 한다. 실제로 웬만한 물에서는 다 살기에 지방마다 이것을 부르는 이름도 제각각이다. 올뱅이, 올갱이, 고동, 고디, 대사리, 대수리, 꼴팽이, 골부리, 배틀이... 그리고 제주에서는 바다 고둥을 ‘보말’이라고 하는 것이다.

고둥은 이름도 여러 가지지만 종류도 여러 가지다. 흔히 먹게되는 골뱅이부터 풀숲에 사는 달팽이들까지 다양한 형태가 있다. -골뱅이의 ‘뱅이’와 달팽이의 ‘팽이’는 어원이 같다는 이야기가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의 고둥에 대한 설명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약 65,000여 종이 기록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약360종이 알려져 있다’

제주에서 잡히는 보말에도 갯고둥, 매웅이, 수두리보말, 먹보말, 갈고둥, 촘고메기, 문다대기, 니치름보말, 배말 등 여러 가지다. 제주에 처음 내려왔을 때 아이들과 바닷가 돌 틈에서 채취한 보말들의 이름을 다 몰라 그때그때 스마트폰으로 검색해보며 먹어도 되는 것인지 먹을 수 없는 것인지를 알아봤다. 보통 대부분은 먹을 수 있어 집에 가져와 라면에도 넣어 끓여보고 그냥 삶아서 먹어보기도 했다. 역시 예전 학교 앞에서 100원어치, 200원어치 사먹었던 바로 그 맛이 난다.

제주에서 이러한 먹을거리를 그저 심심풀이 군것질로만 놔둘 리 없다. 제주에선 이 보말들을 각종 요리에 활용한다. 

표선 당케올레국수 집의 보말칼국수

1947년 3월 1일을 시작으로 1954년 9월 21일까지 무려 7년 7개월간 지속된 제주 4.3사건 때 해안선으로부터 5km 이상 한라산쪽으로는 올라가지 못하도록 금족령이 내려지고 바다 쪽으로도 탈출을 막기 위해 어업이 전면 금지됐다.

보통 중산간에서 살던 주민들은 식량도 챙기지 못한 채 집에서 쫓겨 내려와 어린아이나 노인들은 상당수가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고 그 중 태반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니 그 때는 필사적으로라도 식량을 구해야했고, 사람들은 썰물이 되면 바닷가에 몰려나가 보말들이라도 부지런히 주워담아 돌아와서 죽을 끓여야 했다. 비극의 역사 현장에서 살아남은, 이제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 그 때 아이들의 입맛에는 그래서 보말을 결코 잊을 수가 없는 것이다.

표선 해비치 해변에 가면 ‘당케올레국수’집이 있다. 표선항의 원래 이름이 ‘당케포구’다. 이 집의 대표 메뉴는 보말칼국수다. 그런데 보말칼국수를 시키면 칼국수 안에 밥알이 들어있다. 보말죽과 보말칼국수의 콜라보인 것이다. 이 집은 현지인 맛집 중 하나다. 그래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주 낡은 건물이라 출입문조차 쉽사리 찾지 못할 정도의 식당이었다. -최근엔 바로 옆 번듯한 건물로 이사를 해서 식당이 아주 깔끔해졌다.-하지만 사람만큼은 늘 꽉 차서 주문을 하면 한참 기다려야 할 정도로 꽤나 유명한 집이다.

맛을 보면 일단 국물이 진하다. 얼핏 눈으로 보기에도 살짝 걸쭉한 느낌마저 들 정도다. 실제 맛을 보면 참기름의 고소한 향내와 더불어 보말의 구수한 맛과 쫄깃한 식감이 면발과 잘 어울린다. 그렇게 칼국수 면을 다 먹고나면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드는데 그때부터는 숟가락으로 보말죽을 떠먹는 것이다. 그럼 속이 아주 따뜻하면서 든든해진다. 육지에서 ‘올갱이해장국’이 그렇듯 보말은 해장에는 그만이다.

편식대마왕 우리집 큰 아이도 아무런 거부감 없이 즐기는 보말칼국수. 이쯤되면 우리 집 보말 입맛은 대물림이 충분히 된 것 같다

최근에 이 글을 쓰기 위해 아이들과 당케올레국수집을 다시 찾았다. 누차 밝혔듯 편식 대마왕인 큰 아이의 반응이 궁금했다.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제주에 내려와 바다에서 직접 채취한 보말을 수차례 먹어보아서였는지 아이는 전혀 거부감 없이 한그릇을 싹 비웠다. 큰 아이에 비해서 음식을 가리지 않는 편인 작은 아이는 아예 국물까지 다 마시고 엄마 아빠의 보말까지 더 내놓으란다.

이쯤되면 우리 집 보말 입맛은 대물림이 충분히 된 것 같다. 반응들을 보아하니 아마 그 다음대까지도 대물림이 가능하지 않을까 미루어 짐작해보게 된다. 이 가설이 맞을지 안 맞을지는 오래 살아 직접 확인해보면 될텐데, 이 글 쓴다는 명분으로 여기저기 먹으러만 돌아다녀서 하루하루 뱃살만 자꾸 늘어나니 그게 걱정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