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양희의 수다 in Jeju]-제주 해산물 이야기_전복 그리고 오분자기
[류양희의 수다 in Jeju]-제주 해산물 이야기_전복 그리고 오분자기
  • 제주=류양희 통신원
  • 승인 2020.03.24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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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맛 있으나 채취 어려워 귀한 궁중 식재료 진상품
아미노산·인·철·요오드·칼슘·비타민류 풍부한 자양강장식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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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분자기'는 새끼 전복 아닌 전복과에 속하는 작은 전복
양식 불가능해 자연산뿐... 전복보다 탄력 식감 한 수 위
껍질 구멍수로 구분 가능하고 서식하는 바다 위치 달라
서귀포 남원의 해녀할망

제주로 식구들이 완전히 이주한 그 해, 아이들은 따로 학교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홈스쿨링으로 교육했다. 말이 좋아 홈스쿨링이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저 홈스테이에 가까웠다는 생각이다. 맞벌이 부모를 둬 어릴 때 온전히 엄마 아빠와 함께한 시간들이 부족했던 아이들에게 모처럼 이런 시간들이 필요했다. 아빠는 대안학교 교사였고 엄마는 공동육아어린이집 교사였으니 처음엔 홈스쿨링에 대한 심적 부담감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일자리를 얻어 매일 출퇴근을 하는 아빠와는 달리 낯선 주변 환경에서 막상 24시간을 아이들과 함께 해야만하는 아이들 엄마로서는 생각만큼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을 집안에만 가둬 놓을 수는 없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운전을 못했던 아내는 결국 매일같이 도시락을 싸들고 아이들과 집 앞 바닷가로 나갔다. 아이들은 11월 초까지도 바닷물에 들어가 물놀이를 했고 심심해지면 큼직큼직한 검은 현무암 갯바위 틈 여기저기를 날아(?)다니며 이것저것 눈길 가는 대로 들여다보고 만져보고 잡아왔다.

꼭 이런 타이밍에서 ‘바다는 아이들에게 훌륭한 학교였다’는 낭만적인 표현을 써 볼만도 하겠다. 하지만 현실이 과연 그러했을까? 당최 어디로 튈 지 모를 녀석들 때문에 가슴만 자꾸 철렁거리고 바다에 시선 돌릴 틈도 없이 아이들에게서 쉽게 눈을 뗄 수가 없었다는 절규만이 전해질 뿐이다.

한동안 우리 가족의 놀이터가 되어주었던 서귀포 남원의 바닷가는 사실 해녀 할망들의 일터였다. 할머니들이 잠수복으로 옷을 갈아입거나 하는 등의 편의를 위해 지원금을 받아 마을 어촌계에서 건물을 지어놓았고 그 건물 아래나 부속 창고들에는 각종 어구들도 모아두어 공동작업장 역할을 했다.

그리고 주변 바다에는 전복이나 소라 같은 수산 종묘들을 뿌려놓았다. 해녀 할망들은 우리 아이들이 들어가 노는 것까지 뭐라 하진 않았다. 하지만 이듬해 새롭게 수산종묘들을 입식해놓으면서 안내판을 설치해 외부인들의 출입을 제한하면서 우리도 더 이상 그 곳에 들어가 놀지 않았다. 그 곳 아니더라도 아이들이 놀 수 있는 바닷가는 많았지만, 해녀 할망들에겐 생업의 현장이기에 그 분들을 우선 존중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에서였다.

# 해녀 할망들의 일터 서귀포 남원엔 자연상태 전복양식장 수두룩

아이들이 남원 바닷가에서 채취해 온 것들 중에는 전복 비슷하게 생긴 것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도시에서만 살아온 필자로서는 전복이 귀한 식재료인줄만 알았지 어떤 환경에서 사는지, 또 어떻게 생겼는지는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아이들이 가져온 것이 전복 비슷한 줄로만 알았지 설마 그 귀한 식재료가 이렇게 우리 가까운 바다에 널렸을 것이란 생각은 해보질 않았다. 아내가 진짜 전복같이 생겼다고 해도 그 귀한 전복이 여기 이렇게 널렸으면 마을 사람들이나 해녀 할망들이 벌써 채취해서 팔았지 여기 이렇게 널려있을 리가 없다며 애써 믿질 않았다. 하지만 이듬해 알게 되고 만 것이다. 우리가 보았던 것 중 상당수가 전복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전복(출처_국립수산과학원)

그렇다. 제주에는 전복이 많다. 배를 타고 한참을 가는, 인적 없는 청정한 바다에만 있는 것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육지에선 아주 멀리 떨어진 외딴 섬의 청정바다였던 것이다. 그래서 웬만한 마을 바닷가에는 자연 상태의 전복양식장이 꼭 있다. 제주에 전복양식장이 많아서 전복이 많다는 게 아니다. 원래부터 제주에는 전복이 많았기에 전복양식장도 많게 된 것이다.

물론 그만큼 제주에는 역사적으로 전복에 얽힌 한(恨)도 많다. 조선 세종 때 제주목사로 부임한 기건(奇虔, 재임기간1443~1445)은 겨울에도 알몸으로 바다에 들어가 전복을 따오는 해녀들의 모습을 보고는 충격을 받아 일평생 전복을 입에 대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조선시대에는 토지에 부과하는 전세(田稅)와 노동력을 나라에 제공하는 역(役) 외에도 지역 특산물을 올리는 공납(貢納)과 진상(進上)이 있었다. 나라가 혼란스러우면 중간 관리들의 비리까지 더해져 백성들을 수탈하기 바빴다. 이러한 부정을 막고자 광해군 때는 공물을 쌀로 바꾸어 내게 하는 ‘대동법’을 실시하였으나 제주는 쌀이 없기도 하거니와 대동법 적용의 예외지역으로 그 혜택을 볼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말았다.

이미 그 이전에 제주를 다녀간 김상헌은 ‘남사록’에서 당시의 폐단을 이렇게 언급했다. ‘제주에서 진상하는 전복의 수량이 많은 데다, 관리들이 사리사욕을 채우는 것이 또한 몇 배가 된다. 포작들은 그 일을 견디다 못해 도망가고, 익사하는 자가 열에 일곱, 여덟이다(나무위키)’

조선왕조 궁중음식 기능 보유자 한복려 씨는 월간 문화재사랑에 기고한 ‘궁중의 먹거리 진상품과 전복’이라는 글에서 전복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전복은 바다를 접한 지방인 제주를 비롯하여 전라도와 경상도, 충청도와 황해도에서는 자주 진상해야 하는 품목이었다. 제주도의 전복 진상은 매월 잡히는 대로 지속적으로 수군통제사들을 통해 운송해야하니 진상품 중 가장 어려웠던 식품이었을 것이다. 『공선정례』에 기록된 월별 진상 품목을 보면 제주도에서는 2~9월까지 각 전(殿)에 보내진 것을 볼 수 있다. 대부분 말린 전복으로 진상되나 생복은 추운 계절, 충청·황해 등 궁과 가까운 지역에서 봉송되었다. 궁중과 관련된 기록을 보면 전복이 자주 등장하니 가장 귀한 재료며 최고의 식재료로 쓰였던 것임을 알 수 있다.

# 궁중음식 중 추복탕·전복초·전복느림적·생복찜 등 탕·찜의 단골 소재

『조선왕조실록』에는 전복에 대한 언급이 많은데, 그 이유는 궁중 진상품으로는 해물 중 가장 맛있으면서도 채취하기 어려운 품목으로 정해진 수량을 보내는 것도 백성들에겐 매우 부담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중략...) 성종, 중종, 선조, 광해군, 숙종 때는 전복은 바다 깊이 들어가 채취하기가 너무 힘들었기에 물량을 대기가 힘들어 전복 진상에 무리가 있으니 감해달라는 청원이 계속 올라오며 토산물의 진상폐단을 거론하고 있다. (...중략...)

『진찬의궤』에 나타난 궁중음식 중 대부분의 탕, 찜에는 다른 고기류와 함께 전복이 꼭 들어가며 전복을 주재료로 하는 음식에는 추복탕, 전복초, 전복느름적, 생복화양적, 생복찜, 전복숙, 생복회, 전복쌈 등이 있다. (...중략...)

물론 전복이 맛있고 귀해서만 궁중에 애용하는 식품으로 쓰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조개류는 피로해진 신경을 회복시키는 작용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전복은 눈의 피로 회복에 매우 좋다. 아르기닌이라는 아미노산이 타 식품에 비해 월등히 많이 함유되어 있고 인, 철, 요오드, 칼슘 등의 미네랄과 비타민 A, B1, B2 등도 풍부하여 자양강장식품으로 여긴다. 햇볕에 말린 전복포는 강장식품이었다니, 궁궐에서 당연히 왕족들의 건강을 위한 일급 식품으로 여겼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전복을 채취해야했던 제주에선 정작 얼마만큼이나 전복을 먹어볼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보면 갑작스레 숙연해진다. 시대는 흘러 이젠 진상과 공납은 사라졌고 전복은 온전히 제주 사람들의 소득원으로 남았다. 궁중 진상품이었다는 귀한 식재료라는 이미지와 더불어 말이다.

바로 이 각인된 고급 이미지 때문에 필자는 육지에서 전복을 단 한 번도 먹어보지를 못했다. 우선 죽을 좋아하지 않아 전복죽을 먹어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어쩌다 전복을 먹을 기회가 생기면 값비싸고 귀한 것이니 다른이에게 양보하기 바빠 더더욱 그랬다. 그런데 이제는 제주에서 살면서 그 보상을 다 받은 듯 싶다. 정말 평생 못 먹어본 전복을 여기선 수시로 또 시시때때로 먹으니 말이다. 제주에선 일반 음식점에서 웬만한 해물 들어가는 요리에 전복이 한 두개씩은 꼭 들어간다. 심지어 제주에선 어린이집 간식으로 전복죽이 때때로 나오고 전복 껍데기로는 아이들 놀이 재료로 사용될 정도다.

오분자기(출처_국립수산과학원)

그런데 제주에는 또 ‘오분자기’라는 게 있다. 처음에 식당 메뉴판에 ‘오분자기 뚝배기’라는걸 보고는 음식이 담겨나오는 그릇 이름인줄 알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오분자기라는 것이 무슨 도자기이름 같기도 한데다 뒤에 뚝배기라는 그릇 이름까지 붙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 오분자기는 8cm 이하의 작은 전복... '떡조개'란 별명도

반면 오분자기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이들은 오분자기를 새끼 전복이라고 알고 있는 이가 있다. 아니다. 오분자기는 같은 전복과에 속하지만 새끼 전복이 아니라 좀 작은 전복이다. 전복과에 속하는 것이 세계적으로는 100여종이 있는데 오분자기는 작은 전복에 속하여 보통 8cm를 넘지 않는다. 제주에서는 이를 ‘오분재기’라고 하거나 ‘떡조개’라고 부르기도 한다.

전복은 깊은 바다에서 잡히는 반면 오분자기는 주로 얕은 바다에서 산다. 둘을 구분하려고 전복과 오분자기를 갖다 비교해보면 그 차이를 확연히 알 수는 있지만 따로 떨어져 해물뚝배기 요리에 들어간 것을 전복인지 오분자기인지 구분하는건 쉽지 않다.

다만 껍질에 구멍이 오분자기는 7~8개인 반면 전복은 4~5개 정도다. 그 구멍도 전복은 거칠게 돌출되어 있는 반면 오분자기는 돌출정도가 그렇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전복은 양식이 가능한 반면 오분자기는 오직 자연산 뿐이다. 그래서 귀하기도 하지만 식감이 전복보다 한 수 위라는 평가다.

전복도 회를 먹어보면 오도독 씹히는데 오분자기를 한 번 먹어보면 오히려 전복은 물컹하다 느껴질만큼 탄력이 다르다고들 한다. 실제로 오분자기 뚝배기를 몇 번이나 먹어봤는데 무딘 미각으로는 그 차이를 확연히 느끼진 못했으나 전복이든 오분자기든 찰진 식감하나는 분명하다.

오분자기(출처_국립수산과학원)

전복도 귀한 재료인데 워낙 오분자기가 귀해지다보니 적지않은 식당에서 전복을 오분자기 뚝배기에 넣어판다. 그야말로 전복의 굴욕이자 의문의 1패인 것이다. 하긴 전복양식이 늘어나면서 전복 가격이 많이 떨어지긴 했다. 전복양식은 전남 완도에서 가두리 양식을 많이 하는 반면 제주에선 실내 양식장과 바닷가에 전복종묘를 입식해 자연 양식을 하는 경우가 많다. 바닷가에서 전복을 양식하는 경우는 사실상 자연산이나 다름이 없기도 하거니와 실제로도 양식 전복과 자연산 전복의 차이가 크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전복죽(왼쪽, 출처_비짓제주-종달해녀의집)과 전복물회(출처_비짓제주-순옥이네명가)

그러니 제주에선 마음껏 전복을 즐겨보기를 권해본다. 전복회와 전복물회도 있고 전복찜도 있고 전복버터구이도 있고 전복 삼계탕도 있다. 짬뽕과 해물라면에도 당연히 있고 각종 해물요리에는 기본으로 다 들어간다. 그리고 오분자기 해물뚝배기도 있고 전복돌솥밥도 있다. 여행으로 지친 아침의 속을 달래줄 전복죽도 물론 있다. 왕의 식탁이 별게 아니다. 제주에선 왕보다 더 많은 전복요리를 먹어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제주의 전복요리들을 실컷 배부르게 먹고나서 이렇게 (속으로) 외쳐보자. “나는 왕이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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