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양희의 수다 in Jeju]-제주 물고기 이야기_"조미료만큼 감칠맛 강한 매운탕의 제왕 우럭"
[류양희의 수다 in Jeju]-제주 물고기 이야기_"조미료만큼 감칠맛 강한 매운탕의 제왕 우럭"
  • 제주=류양희 통신원
  • 승인 2020.03.12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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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럭의 정식명칭은 '조피볼락'...실제론 '쏨뱅이'가 정확한 이름
우럭매운탕의 주인공은 조피볼락이 아닌 붉은 빛도는 쏨뱅이
현지인 사이 입소문난 표선의 '정미네식당' "국물맛 끝내줘요~"
인공조미료 맛으로 오해하기 쉬운 중독성 강한 감칠맛이 일품

제주 물고기 이야기는 광어로 시작해서 우럭으로 마무리하려한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국민 횟감의 대표적인 두 어종으로 시작과 끝을 맺는 셈이 됐다. 가장 흔하디 흔한 물고기를 제주이야기에서 소개한다는 것은 그만큼 주목도나 흥미를 떨어뜨릴 위험성이 클 수 있다. 하지만 아주 익숙한 것들에서 결정적인 차별점을 한방 끄집어낼 수만 있다면 그것만큼 짜릿한 반전은 없을 것이다. 어쩌면 질질 끌어왔는지도 모를 제주 물고기 이야기에서 제주의 우럭은 그럴만한 충분한 조건을 갖추었는지도 모르겠다.

광어가 정식 명칭이 아니듯이 우럭 역시 정식 명칭이 아니다. 보통은 조피볼락을 우럭이라 칭하는데, 조피볼락이라하면 오히려 잘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조피볼락은 쏨뱅이목 양볼락과 볼락속에 속한 고기다. 우리나라 동・서・남해안 어디서든 잘 잡히는데다가 대량 양식에 성공하면서 광어와 더불어 대표적인 횟감이 됐다.

통상 우럭으로 불리는 조피볼락. 광어와 함께 대표적인 횟감이다. (출처_국립수산과학원)

하지만 광어는 회를 먼저 떠올리는 반면 우럭은 회 뿐만 아니라 매운탕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민물고기에 쏘가리매운탕이 있다면, 바닷고기에는 우럭매운탕이 대표로 손꼽힌다. 우럭매운탕은 국물을 한 숟가락 입에 떠 넣는 순간 제일먼저 강한 조미료 맛부터 느끼게 된다. 그래서 조미료가 너무 많이 들어간 것 아닌가 의심부터 한다. 물론 어느 식당에서는 실제 조미료로 맛을 더하는 집도 있다.

하지만 우럭 본연의 맛이 조미료를 넣은 것과 같은 바로 그 감칠맛이다. 조미료가 천연 재료의 맛을 흉내낸 것인데 워낙 일상적이 되다보니 오히려 천연의 맛을 두고 조미료 맛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본말 전도가 일어난다. 진짜 맛있는 게살을 먹으면서 조미 게맛살 맛이 난다고 하는 그런 경우다. 어쨌든 우럭매운탕은 역시 중독적인 감칠맛이 일품이다.

표선에 직장이 있을 때 하루 일과 중 점심시간은 늘 큰 즐거움이었다. 제주 먹거리 이야기를 써가는 지금의 ‘수다 in Jeju'는 바로 그 때의 경험이 가장 큰 밑바탕이 됐다. 그 때 표선에서 차로 10분 내외 거리가 성산과 경계였는데 그곳 바닷가에 우럭매운탕을 기가 막히게 잘하는 식당 한 곳이 있었다. 바로 ‘정미네식당’이다. 이 식당이 거래처였기에 잘 가기도 했지만, 이 곳은 여행객들이 이야기하는 맛집이 아니라 제주도민 사이에서 입소문난 맛집이다.

제주도 현지인들 사이에 '국물이 끝내주는 우럭매운탕'으로 소문난 표선의 '정미네식당' 전경

그래서 정작 가보면 가게 인테리어가 세련됐다거나 친절한 서비스가 훌륭하다거나 하는 것들과는 거리가 좀 멀다. 우선 식당 이름부터 들어보면 대충 어떤 분위기인지 감이 딱 온다. 하지만 그 어떤 훌륭한 인테리어도 식당 밖으로 내다보이는 푸르른 바다 풍경을 대신할 수 없고 그 어떤 서비스도 맛으로 입을 즐겁게 해주는 서비스를 대신할 순 없다.

이 곳에서 우럭 매운탕을 맛보는데 정말 “국물이 끝내줘요!”다. 처음엔 숟가락으로 홀짝홀짝 떠먹다가 나중엔 밥을 통째로 말아 같이 끓여먹다가 결국엔 국물을 그릇째 들고 싹 다 마셔버리고야 말았다. 누누이 고백했지만 매운맛을 극히 싫어하는 초딩 입맛으로 말이다. 그것도 매운탕을...

매운맛을 싫어하는 초딩 입맛으로도 국물까지 마시게 하는 정미네식당 우럭매운탕(출처_제주오름마마 블로그)

그런데 이 집의 우럭 색깔은 그동안 알아왔던 우럭과는 다른 붉은색이다. 처음엔 어느 정도 끓여 나와서 그런가 생각했다. 하지만 몇 번을 가보아도 그 붉은 빛이 영 수상(?)하기만 했다. 그런데 함께 자리했던 사람 그 어느 누구도 이것을 이상하게 여기질 않았다. 그냥 다들 당연스럽게 그걸 보고 ‘우럭’으로 여기며 맛있게 먹는 것이다.

그 이유를 한참 뒤 나중에서야 알았다. 제주 사람들은 그 붉은색 물고기를 ‘우럭’이라고 부른다는 사실 말이다. 그 물고기는 육지에서 우럭이라 불리는 ‘조피볼락’이 아닌 ‘쏨뱅이’였다. 쏨뱅이도 조피볼락과 같은 쏨뱅이목 ㅁ양볼락과이다. 쏨뱅이라고 다 붉은색을 띠는 게 아니니 색깔만 붉지 않다면 조피볼락과 쏨뱅이의 구분은 큰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쏨뱅이 중에서도 아주 붉은색을 띠는 ‘붉은쏨뱅이’가 있는데, 붉은쏨뱅이는 쏨뱅이에 비해서 맛이 떨어지는 반면 크기는 쏨뱅이보다 커 매운탕 냄비 안에 통으로 몇 마리 들어가기엔 무리가 있다. ‘쏨뱅이’는 얕은 바다에서는 짙은 갈색 계통의 붉은빛을 띠고 수심이 깊으면 깊을수록 더욱 붉은빛을 띠는 경향이 있어 ‘붉은쏨뱅이’가 아닌 ‘쏨뱅이’도 붉은빛을 띠고 있다. 그러니 바로 이것이 제주 우럭매운탕의 주인공이자 매운탕의 제왕이라 불리는 ‘쏨뱅이매운탕’의 정체다. 예전부터 사람들은 쏨뱅이 매운탕의 맛을 한번 보고는 ‘죽어도 쏨뱅이’라 했다고 한다. 정미네식당서 맛본 우럭매운탕이 바로 딱 그랬다.

기막힌 맛으로 '죽어도 쏨뱅이'라고 불리는 제주 우럭매운탕의 제왕 쏨뱅이(출처_국립수산과학원)

여기서 잠깐 정리를 해보자면 이렇다. 제주에서 우럭회를 시키면 쏨뱅이회가 나오는가 묻는다면, 그건 그렇지 않다. 아마도 우리가 알고 있는 조피볼락으로 회를 떠주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그럼 제주에서 우럭매운탕을 주문하면 쏨뱅이 매운탕이 나오는가 또 묻는다면, 그런 곳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한산한 바닷가 근처 후미진 식당에선 조피볼락 매운탕보다는 갓 잡아온 자연산 쏨뱅이 매운탕을 맛볼 수 있는 기회가 더 많다고 답한다.

그럼 쏨뱅이 매운탕을 한번 먹어보고 싶어 한산한 바닷가 식당에 들어가 “여기서 파는 우럭매운탕에는 조피볼락이 들어가는가, 쏨뱅이가 들어가는가?”하고 묻는다면 될까? 아마도 보나마나 “조피볼락은 뭐고 쏨뱅이는 무엇이냐, 우럭이면 우럭이지!”라고 핀잔을 들을 수도 있다. 하하하! 어렵다!

제주에선 예전부터 쏨뱅이를 우럭이라 부르며 먹었다. 그런데 실제 바다에서 조피볼락과 쏨뱅이의 구분이 크게 다르지 않은데다가 조피볼락 우럭이 가격도 싸지고 흔해지면서 조피볼락도 우럭이고 쏨뱅이도 우럭이고... 뭐 그렇게 혼재된 상황이 돼버린 것이다.

이것을 굳이 교통정리, 아니 정확한 개념정리를 할 필요는 없다. 그것이 누가 규정한다고 그대로 따라지는 것도 아니겠고. 이런 것이 바로 로컬의 강한 특성이 아닐까? 결코 표준화되지 않는 그 무엇! 어찌보면 가장 표준화되고 대중화된 그 어떤 것도 제주에선 당최 표준화되지 않는 자기만의 고집이 있다. 바로 그것이 제주의 진정한 맛과 멋 아닐까하고 우럭을 보면서 잠시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제주엔 많은 물고기들이 있다. 그리고 흔하디흔한 물고기들도 많다. 하지만 그런 물고기들도 제주에선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그 덕에 아직도 제주 이야기를 더 써볼 거리가 남아 있는 것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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