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양희의 수다 in Jeju]-제주 물고기 이야기_“벤자리 먹어봔?”
[류양희의 수다 in Jeju]-제주 물고기 이야기_“벤자리 먹어봔?”
  • 제주=류양희 통신원
  • 승인 2020.02.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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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장마철 제철 기간 짧고 산란 전후 맛 차이 극명...30cm이상 '돗벤자리회'가 최고
제주시쪽선 잘 모르는 서귀포 '로컬음식'으로 유명...'사돈에게 대접하는 회' 특별 대우
수조적응력 낮아 활어 유통 어려워...장마철 발견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맛볼 것

제주 물고기 이야기가 한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까지 길게 끌어갈 줄은 몰랐는데 제주는 역시 섬이었다. 바다에서 얻어지는 먹을거리들이 그만큼 많은 것이다.

제주는 변방중의 변방으로 고립된 섬으로서의 척박한 환경에 놓여있다. 또 육지로부터 여러 핍박의 역사가 이어지면서 늘 가난했으며 항상 생존의 위협 속에 살아왔다. 그나마 천만다행인 것은 바다가 있다는 사실이다. 바다가 있어서 배를 곯아도 겨우겨우 연명은 해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농사가 삶의 주축인 육지에서는 흉년이 들면 굶는 일이 다반사였다. 하지만 섬은 흉년이 들어도 바다에서 살길을 도모할 수 있었다. 제주는 섬이었고 그래서 본업은 바다에 있었다. 그러니 제주의 먹을거리는 바다를 중심에 놓고 이야기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제주의 물고기들을 하나하나 열거해가며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지만 오래 전 제주에서의 물고기 구분이란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으로 나누는 게 가장 현실적인 방법 아니었을까. 실제로 먹을 수 있는 생선들의 조리법이라는 것도 종류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날 것으로 먹기로는 회나 물회로 먹는게 다였고, 조리라고 해봤자 구워먹거나 국을 끓이는 게 전부였다.

한양으로 물고기를 올리기엔 제주는 너무 멀었다. 제주 사람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제대로 된 배조차 만들지 못하도록 법으로 금하여 겨우 뗏목이나 다름없는 ‘테우’만을 이용해서는 먼 바다에 나가 조업을 할 수도, 물고기를 유통시킬 수도 없었다. -논점을 이탈하는 여담이긴 하지만, 그래서 제주에선 불가능해보이기만 하던 육지와의 유통에 눈을 돌려 크게 성공한 이가 바로 조선 후기의 거상 김만덕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진상품으로나 올릴 만한 아주 귀한 몇몇의 해산물을 빼고는 제주 안에서 유통이 대부분이었으니 그야말로 잡아서 팔기 위한 어업보다는 먹을거리 마련을 위한 물고기 잡이가 더 중심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물고기를 팔아 돈을 벌기엔 제주안에선 물고기들이 너무 흔했다. 그런데 그렇게 제주에서 별 어려움없이 먹었던 각종 물고기들 중에는 육지 사람들로서는 생판 모르는 물고기들이 꽤 있다.

제주에 생선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에 들어가면 메뉴판에 생소한 이름들부터 맞닥뜨리게 된다. 이미 물고기 이야기를 통해 언급한 ‘객주리’나 ‘각재(제)기’ 등등이 그 예다. 친절한 주인을 만난다면 육지 사람들이 이해하기 좋게 설명해 주지만, 아직까지도 제주는 도회적인 친절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데다가 요새는 외국인 종업원이 많아 기본적인 의사소통마저 녹록지 않은 형편이다.

그러면 여행객들은 얼른 스마트폰에 검색부터 해보게 된다. 그 낯선 이름들 중에 아주 드물기는 하지만 ‘벤자리’라는 이름도 눈에 띈다. 그저 제주 사투리이겠거니 싶지만 엄연한 표준 학명이다.

벤자리
벤자리 (출처_채널A 도시어부 방송화면 캡쳐)

제주 사람이라해도 젊은층에게는 벤자리가 그리 낯익은 이름은 아니다. 중년층 이상에서도 서귀포 쪽에서는 잘 알지만 제주시 쪽에는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이렇게 드문 고기이기에 ‘로컬 음식’으로서는 더 구미가 당기기 마련이다.

벤자리는 아열대 어류이다. 남해안에서도 더 남쪽에서 잡히고 제주에서도 제주시 쪽 보다는 서귀포 바다에서 잡힌다. 다만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바다에서는 점점 영역을 넓혀가는 중이다. 벤자리의 제철은 그래서 여름 장마철을 기준으로 한다. 다만 장마철이라 날씨가 좋지 않아 낚시인들이 벤자리를 구경하기란 여러 어려움이 따른다. 게다가 제철 기간은 짧은데 이때를 기준으로 산란을 하기 때문에 산란 전후의 맛이 또 극명한 차이가 나 정말 맛좋은 벤자리를 먹어보기란 쉽지가 않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무리를 지어다니기에 운이 좋다면 한 번에 여러 마리를 잡을 수가 있다. 맛좋은 벤자리를 구하는게 쉽지가 않아 일반 식당에서 벤자리 회를 구경하기란 특히나 어렵고 파는 곳이 있더라도 실제로 맛볼 수 있는 기간은 여름철로 한정돼 있다.-제철에 서귀포올레시장에서의 목격담이 그런대로 가장 많다-그래서 제주에선 벤자리를 ‘사돈에게 대접하는 회’라고 특별 대우를 했다.

벤자리는 농어목 하스돔과에 속한다. 그래서 벤자리돔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살에 탄력이 좋은데 특히 열을 가하면 가할수록 탄력이 더 좋아지고 찰져 씹는 맛을 즐기는 이들에게 인기가 좋다. 벤자리는 30cm보다 작은 것을 ‘아롱이’라고 부르고 그보다 큰 것을 ‘돗벤자리’라 부르는데 벤자리의 회 맛을 제대로 보려면 ‘돗벤자리’를 맛봐야 한다.

‘돗벤자리’는 암적색 근육인 혈합육과 흰 살이 어우러져 가장 좋은 맛을 낸다. 이 때 모든 회가 다 그렇듯이 가장 중요한 것은 지방층인데 산란이전에는 지방층이 발달해 고소함을 더하나 산란이후에는 지방층이 없어 회로는 맛이 급격히 떨어진다.

벤자리는 수조 적응력이 떨어져 활어로 유통하기가 쉽지 않은데다가 일단 활어가 아닌 상태에서는 금방 살이 물러져 횟집 수조에서 살아있는 벤자리를 장마철에 발견했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한 벗 맛보기를 권한다.

이렇게 워낙 까다롭기에 횟집에서도 꺼려하는게 보통이어서 벤자리는 희소성만으로도 고급 횟감으로 주목받고 있다. 회가 아니라면 벤자리 조림이나 벤자리 구이는 회보다는 접하기가 상대적으로 쉽다. 제주에선 ‘벤자리 지짐’이라 부르는 벤자리 조림을 먹어왔다.

벤자리지짐(조림) (출처_제주인의지혜와맛-전통향토음식)

조림 양념이야 원래가 간장에 고춧가루 조금, 다진마늘과 생강 정도가 들어가는게 전부였으나 요즘은 워낙 양념이 발달해 요즘 입맛에 맞게 지속적으로 개량 중이니 맛없기가 오히려 더 힘들다.

벤자리국 역시 다른 생선국들과 마찬가지로 크게 다르지 않으나 이제는 아예 ‘벤자리 지리탕’으로 파는 곳이 있어서 관광객 입맛에 최적화 되고 있는 중이다.

벤자리국(출처_제주인의지혜와맛-전통향토음식)

육지사람 중에 이제 제주도 구경 못해본 사람은 드물게 됐다. 그러다보니 제주 여행 경험담을 서로 나누면서 서로 남들이 안해본 것, 남들이 안 먹어본 것에 대한 자랑이 경쟁이 된다. 그럴 때 딱 주위를 평정할 만한 물고기가 여기 있다. “벤자리 먹어봔(먹어봤니?의 제주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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