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양희의 수다 in Jeju] - 제주 물고기 이야기_각제기
[류양희의 수다 in Jeju] - 제주 물고기 이야기_각제기
  • 제주=류양희 통신원
  • 승인 2020.01.02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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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푸른생선 '전갱이'의 제주도 방언...고등어보다 감칠맛 좋아
오세득 셰프는 단백한 각제기국을 소울 푸드로 소개할 정도

제주의 다양한 먹거리를 소개하는 글을 쓰면서 무엇보다도 가장 큰 장애물은 필자의 ‘초딩’ 입맛이다. 단짠(달고 짠)중독에다가 탄수화물 중독이다. 각종 요리들은 그저 밥을 먹는데 적절히 혀를 즐겁게 해주는 부식(副食)일 뿐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강하다. 그러니 허영만 화백같은 식객이 되기에는 애초부터 글러먹었다. 게다가 요리에 대한 선입견도 강해 기존 관념을 벗어나는 음식에 도전해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각제기 양념구이(출처_제주인의 지혜와 맛-전통향토음식)

각제기가 딱 그랬다. 우선 이름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모름지기 맛이란 입안에서 부드러워야 하는데 각제기는 발음부터가 입안을 불편하게 한다. 각제기는 ‘전갱이’를 부르는 제주말이다. 제주어 사전에 표준등록 되기로는 ‘각제기’로 되어 있다. 하지만 다들 ‘각재기’인줄 알고 그렇게들 쓴다. ‘전갱이’가 육지 사람에게 그리 친숙한 생선은 아니다.

외양은 고등어나 삼치처럼 등푸른 생선인데 크기는 작은게 값은 고등어나 삼치보다 비싸니 당연히 늘 선택의 우선 순위에서 밀렸다. 그러다보니 먹어볼 기회가 없었던 것이고 맛있게 먹어본 다른 생선들이 많은데 굳이 새로운 생선에 도전해 볼 필요가 없었기에 전갱이는 쭉 낯선 생선이었다. 게다가 생선 맛이라는게 소금뿌려 구워놓으면 다 거기서 거기이니 크고 살점 두둑한게 최선이라는 문외한으로서의 인식도 한 몫했을 것이다.

하지만 바다 가까이 살았던 이들에게 전갱이는 고등어보다도 더 친숙하다. 전갱이도 고등어처럼 물속에서 떼를 지어 다니다보니 전갱이떼가 몰려들면 한 번에 다량으로 얻을 수 있었다. 다만 부패 속도가 빠른데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맛도 급격히 떨어져 고등어보다 가격은 더 저렴했다. 그러니 바닷가 지역의 서민들에겐 아주 흔히 쉽게 접할 수 있었던 생선이었던 것이다.

반면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맛과 선도를 유지하기가 어려워 예전에는 내륙이나 서울로의 유통이 쉽지 않았고, 그래서 내륙지역 사람들에게 전갱이는 그리 익숙한 생선은 아니었던 것이다.

육지와는 멀리 떨어져있는 제주에서 각제기는 많이 잡히는데 육지로 재빨리 보낼 방법은 없고, 그래서 각제기는 순전히 제주 사람들의 몫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렇다면 제주 사람들은 각제기를 어떻게 활용했을까? 날로 먹어보기도 했고, 소금이나 양념을 더해 구워도 먹었다. 그리고 고등어나 갈치 같은 생선들처럼 국을 끓여보기도 했다.

앞뱅디식당의 각제기국(출처_VISIT JEJU)

생선으로 국으로 끓여먹는다니... 생선국에 대한 고정관념을 없애려 나름 이렇게 애써보았다. 머릿속으로 ‘국’대신 ‘탕’이라는 이름을 붙여보는 거다. 그렇다. 사실 우리에게 물고기로 국물 요리하는 것은 아주 익숙한 일이다. 가장 흔한 매운탕이나 지리탕이 그렇다. 그걸 ‘매운국’ ‘지리국’이라고 부른들 그 맛이 변하는 건 아니다. 따지고 보면 ‘국’과 ‘탕’의 구분이 그렇게 명확한 것도 아니다.

이재운 작가가 쓴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우리말 백과사전’(책이있는마을)에 따르면 ‘국은 조리할 때 양념을 하고 별도의 조미료를 넣지 않지만, 탕은 먹는 사람이 취향에 따라 소금, 파 등의 부수적인 양념을 가미한다. 또한, 탕은 국보다 비교적 조리 시간이 길다’ 하지만 국은 탕이라고도 하며 탕은 국의 높임말로 쓰인다는 점에서 서로 혼용되고 있는게 현실이다.

그러니 제주에서 그 많은 생선국을 보며 그리 이상하게 볼 일이 결코 아니다. 제주특별자치도에서 펴낸 ‘제주인의 지혜와 맛-전통향토음식’에서 소개된 각제기국 끓이는 방법을 살펴보면, 미리 내장을 꺼내고 깨끗이 손질한 각제기를 끓는 물에 넣고 한소끔 더 끓여 배추와 다진 마늘을 넣은 후, 청장과 소금으로 간을 하면 된다. 물론 비린내를 없애기 위해 매운 고추 한 조각이나 된장을 풀기도 하는데, 어떤 생선국이든 오래 끓이면 맛이 없으므로 너무 오래 끓이지 말아야 한다는 설명이 덧붙여있다. 또한 ‘생선국은 싱싱한 재료로 끓이며, 뜨거울 때 먹어야 비린내가 덜 나고 제 맛을 느낄 수 있다’고 부연했다.

제주의 생선국들은 보통 특별한 양념이 가미되지 않고 생선 본연의 맛에 충실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척박한 환경에서 식재료로 얻을 곳이란 푸성귀 얼마를 빼고는 전부 바다에서 얻는 것이 전부였다. 몇 차례 언급한 바 있지만 일조량이 많아 당도가 높았던 제주 고추는 병충해로 인해 고춧가루를 얻기까지가 쉽지 않아서 거의 모든 음식에 고춧가루를 넣는 일은 최소화되거나 아예 시도조차 되지 않았다.

그러니 각제기국은 각제기의 온전한 맛을 느끼기에 딱 좋다. 보통 각제기를 좋아하는 이들은 각제기가 고등어보다 감칠맛이 더 앞선다고 말한다. 유명 요리사인 오세득 셰프는 한 방송에서 각제기국을 소울 푸드로 소개한 바도 있다. 섬나라 일본에서는 고등어보다도 전갱이를 더 선호하고 특히 초밥재료로 전갱이를 애용하고 있다. 각제기국을 실제 먹어보면 이러한 감칠맛이 배추의 시원함과 어우러져 개운하면서도 맛있다. 그러니 한 번 먹어본 여행자들이 그 맛을 잊지 못해 입소문으로 퍼뜨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음식문화를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국’문화다. 소량의 재료에 물만 붓고 끓여 어느 정도 간만 맞추면 많은 이들의 배를 채울 수 있었기에 가난했던 우리 역사에서 ‘국’은 발달해왔다. 그래서 ‘탕’보다 ‘국’이 훨씬 서민적이고 대중적이어서 친근하다. 제주라는 척박한 섬에서 생선국은 필연적으로 발전한 수 밖에 없었다. 그 중에서도 흔하디흔한 각제기가 국으로 활용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래서 각제기국 안에는 각제기 뿐만 아니라 제주 삶의 애환이 함께 우려져있는 것이다.

단짠에 길들여진 초딩 입맛으로는 감히 그 맛을 온전히 알 수 없는 참 진하고 깊은 맛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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