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양희의 수다 in Jeju] - 제주 물고기이야기 _ 고등어
[류양희의 수다 in Jeju] - 제주 물고기이야기 _ 고등어
  • 제주=류양희 통신원
  • 승인 2019.11.07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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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흔했던 추억의 고등어...9~1월이 제주참고등어 맛 최고조인 제철
수면 가까이 살아 육질 연하고 부패 빠른 편...고등어회 제주도서 즐겨야
내장 빼고 3~4토막 내어 배추 넣고 청장과 소금 간한 고등어국이 진수
오메가-3 일종 DHA·EPA 풍부...혈관성 치매예방 위한 효도상품으로 딱

어릴적에는 손목시계가 그렇게 갖고 싶었다. 지금이야 길거리에서 만원도 안 되는 가격으로 팔릴 정도로 흔하지만 그때는 손목시계가 꽤나 비싸서 아무나 차고 다닐 수 없었다. 너무나 손목시계가 갖고 싶은 날에, 가난한 엄마는 아들의 손목에 볼펜으로 시계를 정성껏 그려주었다. 그러면 아들은 그게 너무 멋져서 늦은 밤까지 이리저리 손목을 돌려보며 행여 시계가 지워질까봐 세수할 때조차 조심스러웠다. 

토끼풀꽃이 하얗게 피는 날에는 한참을 꽃시계가 볼펜그림시계를 대신하기도 했다. 지금은 곳곳에 시계가 흔해졌음에도 너무 바쁘게 살아 정작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 줄도 모르고 살지만, 그때는 시계가 드물어 정확한 시간은 알 수 없었어도 자연의 흐름만으로 하루의 여정을 가늠하며 살던 시절이었다.

저녁밥 때가 가까워오는 늦은 해가 기울 무렵이면 틀림없이 동네를 울리는 소리가 있었다. 리어카에 생선궤짝을 싣고 “어! 동태나 임연수 사려, 어! 고등어나 갈치 사려~”하는 생선장사 아저씨 목소리다.

꼭 “어!”자를 넣어 박자와 운율을 맞추던 그 목소리로 동네사람들은 저녁 때가 가까웠음을 알았다.

그때도 확성기는 있었지만 그 생선장사 아저씨는 무거운 리어카를 두 손으로 잡고 끌어야 했기에 확성기를 들 손이 모자라 그렇게 목청껏 동네의 알람시계가 되어주었다.

지금도 자주 먹는 고등어를 대하면 꼭 그 시절부터 생각이 난다. 그 시절 생선장사 아저씨는 동네 집집마다 모르는 사람이 없어서 어쩌다 오랫동안 생선 안사는 집이 있으면 일부러 불러서라도 안부를 묻고는 고등어 한 토막을 안겼다.

받는이가 수중에 돈이 없어도 나중에 달라며 그렇게 인심좋게 생선을 건네주고는 다음 동네로 향했다. 그래서 저녁나절 동네 한바퀴를 거닐면 이집 저집에서 생선 굽는 소리와 냄새가 귀와 코로 전해졌다. 고등어는 그렇게 지난날의 추억이 됐다.

다른 생선도 많았는데 예전에는 왜 그렇게 고등어를 자주 먹었을까? 아무래도 값이 싸고 흔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값싼 생선이야 꽁치나 갈치도 있었지만 한 번의 젓가락질로 듬뿍 살코기를 발라낼 수 있는 것에 있어서는 고등어가 한수 위였다.

그래서 그 두툼한 살코기 맛에 구이로도 조림으로도 손색이 없었다. 냉장고도 흔치 않았던 시절, 고등어에 소금을 잔뜩 뿌린 자반고등어는 보관에도 유리해 더 선호했던 것 아닐까 생각해본다. 특히 자반고등어는 2마리가 ‘한 손’으로 불려서 꼭 고등어 한 손을 사면 요즘 개념으로 1+1의 느낌도 있었다.

오세득 셰프가 추천한 곳으로 유명한
‘그리운바다성산포’ 식당의 고등어회
(출처_VISIT JEJU)

그런 고등어를 회로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안 것은 불과 몇 년 전이었다. 대안학교 교사 시절 아이들과 경남 통영의 욕지도로 여행을 갔는데 거기서 처음으로 고등어회를 먹어보았다.

살아있는 고등어를 그 곳에서 처음 봤고 바로 눈 앞에서 그 고등어를 회로 떠주는데, 처음 먹어봤음에도 고소한 맛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두툼한 살에서 느껴지는 식감이 일품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욕지도는 우리나라 고등어 가두리 양식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개인적으로 추억 가득한 고등어였기에 역설적으로 제주에 살면서는 정작 제주 고등어를 등한시한 경향이 있었다. 예전에 충분히 많이, 또 맛있게 먹어본 고등어였기에 다른 생선들이 주변에 널려있는 제주에서까지 고등어를 굳이 찾을 필요를 느끼지는 못했던 것.

그래서 고등어구이보다는 옥돔구이를 찾고, 인상적인 욕지도 고등어회를 맛보았기에 제주에서 굳이 고등어회를 찾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간과한 것은, 제주는 우리나라 고등어에 있어서 기준선이나 다름없는 곳으로 고등어를 제대로 맛보려면 정말 제주 고등어를 맛보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따뜻한 물에서 사는 난류성 어종인 고등어는 수온을 따라 여름철에는 북쪽으로, 겨울철에는 남쪽으로 이동한다. 쿠로시오 해류를 타고 우리나라 바다까지 헤쳐 온 고등어는 2~3월에 제주에서 크게 두 갈래로 나뉘는데 한 무리는 서해로, 다른 한 무리는 동해로 간다.

이렇게 북상했던 고등어가 다시 찬물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오기 시작하는 때가 9월에서 1월까지다. 이 무렵 고등어는 찬물에 적응하기 위해 몸에 지방을 축적하는데 그래서 이맘때 고등어가 가장 맛이 좋은 제철이 된다. 그 시기가 바로 제주 바다로 고등어가 다시 내려올 때란 점에서 제주 고등어가 유명한 까닭이 되겠다.

우리나라에서 잡히는 고등어는 참고등어와 망치고등어 두 종류가 있다. 보통 일반적으로 먹는 고등어는 참고등어다. 망치고등어의 경우 미끼나 사료로 보통 쓰인다. 더 따듯한 물을 좋아해 제주와 남해에 머무는 망치고등어의 경우 북상한 참고등어와 달리 몸 속에 지방이 적어 맛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망치고등어는 몸속의 지방이 늘 일정한 편이기에 여름철의 경우 맛이 떨어지는 참고등어보다 오히려 맛있게 느껴진다. 이로 인해 결과적으로 제주는 사시사철 고등어 제철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제철 고등어의 맛을 직접 느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제주에서는 고등어회를 꼭 한번 추천하고 싶다. 고등어는 비교적 수면 가까이 살기에 강한 수압을 겪지 않아 육질이 연하다. 이로 인해 부패가 빠른 편. 혹자는 말하기를, 고등어는 살았어도 썩기 시작한다고 할 정도다.

그래서 고등어회는 욕지도가 속해있는 통영 말고는 제주도에서나 겨우 제 맛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고등어조림이나 고등어구이 역시 산지에서 맛본다는 면에서 추천할 수 있겠으나 이는 다른 곳에서도 충분히 맛볼 수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가 쉽지 않은 반면, 고등어회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차별화된 것이겠다.

고등어국
(출처_제주인의 지혜와 맛-전통향토음식)

제주에서는 모든 생선을 국으로 끓여먹는 것이 가능하다. 당연히 고등어국(고등에국)도 있다. 제주에서 다른 생선을 국으로 끓일 때와 크게 다를 바는 없다. 내장을 빼 낸 다음 듬성듬성 3~4토막을 내서 물에 푹 끓이고는 배추를 손으로 뚝뚝 잘라 넣는다.

거기다가 맑은 청장과 소금으로 간을 하면 끝이다. 물론 다진 마늘과 매운 고추를 넣어 비린내를 잡아준다. 그러니 순전히 국의 맛은 생선 자체가 무엇이냐에 따라 좌우된다. 고등어국을 통해 고등어 맛의 진수를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2013년~2015년 기준, 1인당 연간 수산물 소비량이 58.4kg으로 주요국 1위를 차지했다. 이는 2017년 해양수산부가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수산양식현황(SOFIA) 통계를 인용해 밝힌 바다. 이 수치는 중국(39.5㎏), 미국(23.7㎏), EU(22㎏)는 물론 전통적인 수산물 소비대국인 일본(50.2㎏)마저도 따돌린 수치여서 우리가 얼마나 많은 수산물을 소비하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잘 나타내준다.

그러한 수산물 소비대국인 우리나라에서 가장 선호하는 수산물은 또 무엇일까? 한국해양수산개발원 KMI가 올해 3월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고등어가 12.3%로 1위를 차지했고 오징어(11.3%)와 갈치(9.9%)가 그 뒤를 이었다. 명태가 우리 곁을 떠난 후 고등어가 그 자리를 굳건히 하고 있으며 특히 2017년부터는 연속 3년째 1위다.

하지만 고등어가 어획량에 있어서는 감소세다. 특히 올해 태풍이 잦았던 제주에서는 어로에 나선 날이 줄어들면서 감소세가 더 두드러졌다. 올해 8월 제주에서 고등어 위판량은 206t으로 작년 8월(1795t) 대비 89%나 급감했다. 이러한 현상이 제주만의 사정은 아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수산업관측센터가 지난 9월초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8월 연근해산 고등어 생산량은 7499t으로, 지난해 8월 1만 7158t보다 무려 56.3%나 급감했다. 최근 5년 간 8월 평균 어획량 1만5940t과 비교해 봤을때도 절반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아마도 이 틈을 노르웨이산 고등어가 파고드는 모양이다. 8월 고등어 수입량은 3709t으로, 이중 노르웨이산은 3308t에 달했다. 이는 작년 8월보다 3배 이상 급증한 양이다.

점점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우리 식탁에 우리 고등어가 오르는 횟수가 점점 줄어든다. 그러나 세계 최대의 수산물 소비대국의 대표 소비 생선인 고등어를 노르웨이 산으로 내세울 수는 없는 일. 우리 고등어의 제 맛을 보여주는 데 있어서는 제주 고등어의 역할이 크다 하겠다.

‘그리운바다성산포’ 식당의 고등어구이
(출처_VISIT JEJU)

어린 시절 추억 속의 고등어는 늘 엄마가 구워주셨다. 더 늦기 전에 이젠 엄마에게 제주여행과 더불어 제주 고등어로 갚아 드릴 때도 됐다.

우리가 잘 아는대로 등푸른 생선에 많다는 오메가-3의 일종인 DHA와 EPA는 뇌세포 사이의 상호 작용을 원활하게 하고 혈관성 치매를 예방한다고 하니 이래저래 효도상품으로 딱이다.

안타깝게도 그 기회를 영영 놓쳤다면 엄마가 구워주셨던 고등어의 추억을 제주에서 다시 떠올려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그렇게 고등어에 대한 추억을 오늘 제주에서 또 하나 만들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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