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양희의 수다 in Jeju]-제주 물고기 이야기_자리돔
[류양희의 수다 in Jeju]-제주 물고기 이야기_자리돔
  • 제주=류양희 통신원
  • 승인 2019.10.21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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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성으로 제주에서 흔하지만 고급어종
배고픈 시절 구황식품으로 중요한 역할
회치고 굽고 끓이고...자리젓은 추억의 맛
머리 내장 제거한 물회도 뼈째 먹는 생선

집 근처에 제주교육박물관이 있어 산책삼아 가봤다. 큰 기대 없이, 무엇보다도 무료이니 돈 아깝다는 생각들 일은 없을 것이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가보았는데 꽤나 볼거리가 많다. 학창시절을 추억하는 이들에게는 세대별로 상관없이 모두 즐거운 관람이 가능하다. 세대에 맞게 옛날부터 근현대를 지나 최근까지의 각종 학교생활 관련 유물들이 전시돼 있으니 ‘아빠 어렸을적엔’같은 느낌이 물씬 난다.

제주교육박물관에는 가난했던 시절 도시락이 전시돼있다.
그 도시락 한 쪽을 차지하고 있던 생선, 그것은 자리돔이었다.

이 곳을 둘러보던 중 과거 가난했던 시절 제주의 도시락이 눈에 띄었다. 큰 도시락에 잡곡밥이 하나가득, 반찬은 생선과 풋김치가 전부다. 영양사들의 고심 끝에 준비되는 균형잡힌 친환경 무상급식 현실과 비교해보면 얼마나 오래 전의 이야기인지...

그래도 그 당시에 이만큼 도시락을 싸갖고 올수 있었으면 아주 못사는 집은 아니리라. 도시락 싸올 형편이 안돼 밥 굶는 이가 태반이었을 테니 말이다. 게다가 육지 사람의 눈으로 보면 도시락에 생선 반찬이라니, 꽤나 잘 사는 집 도시락이라고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곳은 섬이다. 잡곡밥의 양이야 빈부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가난한 도시락의 반찬은 가장 주변에서 흔하디흔해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로 준비됐을 것이다. 그 도시락 한쪽을 차지하고 있던 생선, 그것은 자리돔이었다.

손질을 앞두고 있는 자리돔

제주에서는 ‘자리’라고 불리는 자리돔이 육지사람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다. 열대성 어종이라 주로 남해안과 특히 제주에서 잡히는 것이어서 어류의 유통이 쉽지 않았던 과거엔 서울에서 자리돔을 맛보기가 쉽지 않았을테니 말이다. 지금도 서울에선 자리돔이 흔한건 아니다. 하지만 제주에서 자리돔은 아주 흔한 고기다.

제주에서 낚시를 해본 이들은 자리돔이 얼마나 잘 잡히는 고기인지를 안다. 낚시 방법도 어렵지 않아 밑밥을 던지고 낚시줄을 던지면 한번에 여러 마리가 걸려들기도 한다. 연중 어느 때나 잘 잡힐뿐더러 산란기인 5~8월 사이에는 한 마리가 약 2만개의 알을 낳는데 4일 정도면 다 부화가 되니 흔할 수밖에 없다. 다만 최근에는 남획으로 자리돔이 많이 줄어들고 있어 문제다.

자리돔은 커봤자 어른 손바닥만하다. 그래서 ‘자리’라는 말이 ‘잘다’라는 말에서 나왔다고 하는 이야기도 들은 적 있다-물론 유래와 관련해서는 한 자리에만 머물러 자리라 불렀다는 이야기도 있다-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 바다에 나가 그저 쉽게 잡히기에 무턱대고 많이 잡아온 자리돔들은 어떻게 쓰였을까. 우선은 날로 썰어서 먹기도 하고, 구워도 먹고, 끓여도 먹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남으면 냉장고도 없이 정말 처치곤란이다. 그래서 항아리 같은데다 자리돔을 넣고 상하지 말라고 소금을 뿌렸다. 제주 사람들이 그토록 추억의 맛으로 잊지 못하는 ‘자리젓’은 그렇게 생겨났다.

제주 토박이와 식사를 하는데 반찬으로 나온 자리젓을 한번 먹어보란다. 제주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니 한번 맛보라는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젓갈에 자리돔 한 마리가 완전한 모습을 유지한 채 놓여있는데 이것을 대가리는 떼고 먹어야 하는지, 자리돔 속에 뼈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지느러미 같은 것은 또 어째야 할지 도저히 감이 오질 않았다. 눈치껏 앞사람이 먹는 방법을 보니 그냥 다 우적우적 씹어 먹으면 되는 거였다. 그래서 열심히 따라했더니 “안 짜요? 대가리나 지느러미 같은 건 뱉어도 되는데...”한다. 아...!

다른 젓갈도 그렇듯이 자리젓도 짜다. 자리젓에 통째로 들어있는 자리돔 한 마리면 다른 반찬없이 밥 한 그릇을 몽땅 먹어야할 만큼 짜다. 그러니 가난했던 시절 반찬으론 이게 딱이었다.

자리물회...제주에서는 자리물회의 비린내를 잡기 위해 향채(香菜) 비슷한 제피(사진 왼쪽 아래)를 넣기도 한다
자리물회...제주에서는 자리물회의 비린내를 잡기 위해
향채(香菜) 비슷한 제피(사진 왼쪽 아래)를 넣기도 한다

제주에서 여름이면 물회를 자주먹는다. 물회에 대해서 짧게 소개한바 있지만 물회는 여름철 찬 물에 날된장을 풀고 양념 이것저것을 넣은 다음 한치를 넣으면 한치물회, 전복을 넣으면 전복물회가 된다. 그러니 자리물회가 없을리 없다. 갓 잡아온 자리돔을 머리와 내장만 제거하고는 숭숭 썰어서 냉국에 넣는다.

처음 물회를 먹으러 갔을 때 제주사람들은 나에게 자리물회를 권하지 않았다. 자리물회가 육지사람이 먹기엔 ‘쎄다’는 것이다. 그게 어떤 표현인지 되물었지만 그 느낌에 대해 잘 설명해주지는 않았다.

나중에 직접 먹어보면서 그 뜻을 어렴풋이 짐작하기를 자리물회에서 뼈까지 씹히는 식감에 그랬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맛 역시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데 양념맛이 강해 별다른 거부감은 없었다.

보통 비린내를 잡기 위해 제주사람은 여기에다가 향채(香菜) 비슷한 제피를 넣는데 워낙 향채를 싫어해 아직 제피까지 넣은 자리물회는 먹어보진 않았다. 다른 물회도 그렇지만, 자리물회는 조리하는 사람마다 조금씩 방법이 다르다. 그 다양성이 흔하디흔한 자리돔을 다채롭게 한다.

흔하다고 해서 천한 것은 아니다. 자리돔 자체가 고급어종이기도 하거니와 배고픈 시절부터 제주사람의 구황식품으로 자리돔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러니 자리돔은 귀중한 먹거리다. 귀한 사람만이 귀한 음식을 알아본다. 귀한 이들에게 귀한 자리돔을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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