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양희의 수다 in Jeju] - 제주 물고기이야기_무태장어
[류양희의 수다 in Jeju] - 제주 물고기이야기_무태장어
  • 제주=류양희 통신원
  • 승인 2019.09.30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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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년 민물서 살다가 바다에 알 낳아
천지연폭포가 서식지...천연기념물 제27호 지정
중국에서는 '화만'으로 불리는 고급어종
살 두껍고 육질 탱글 지방의 고소한 맛 일품
양식 까다롭고 노력 비해 소득 적어 기피...고가 이유
제주도 무태장어는 살이 두툼해 쫄깃한 식감과 지방의 고소한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일품 요리다.
제주도 천지연 무태장어는 살이 두툼해 쫄깃한 식감과 지방의 고소한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일품 요리다.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 일컫는 존재가 실은 일체의 인공적인 요소를 배제한 상태에선 얼마나 취약한가. 자동차없이 하루 몇 십리 걷기도 어려울뿐더러 약간의 환경 변화에도 잠자리를 뒤척이는 게 사람이다. 외부의 위험 앞에서는 또 어떠한가. 눈으로 보기조차 어려운 진드기나 그보다 훨씬 더 작은 아메바, 아니 그보다도 더 작은 박테리아 같은 미물에게도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연약한 존재가 바로 사람이다. 제주에 살면서 아무래도 대자연과 함께 호흡할 일이 많아지다보니 훨씬 더 생태감수성은 높아지게 되고 자연의 섭리 앞에서 조금은 더 겸손하게 되는 것 같다.

육지에 살 때도 대안학교 교사를 하면서 생태에 대해 늘 관심을 가졌었다. 고양시 쪽 한강변 장항습지를 몇차례 들어가 본 적이 있는데 이곳이 임진강 지류와 만나 북한과 가깝다보니 경계 철조망이 지금껏 쳐져있고 민간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돼왔다. 장항습지는 그래서 생태가 잘 복원돼있고 야생습지의 모습을 잘 갖추고 있다. 그런데 이곳의 또다른 중요성은 바로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기수역(汽水域)’이기 때문이다.

기수역에는 바닷물과 민물에서 사는 다양한 생물들이 사는 것과 동시에 두 곳 다 적응이 된 생물들도 살아 생태 연구에 있어서 아주 귀한 학술적 가치가 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실감한 것은 제주에 내려와서였다. 염분을 포함하고 있는 바닷물에서는 그곳에서만 살 수 있는 생물들이 있다. 민물에서 사는 생명이 바다로 가면 염분에 죽고 만다. 그게 상식이다. 사람도 바닷물을 옆에 두고도 표류하는 배안에서 목이 말라 목숨을 잃는다. 그런데 민물에서도 살고 바닷물에서도 살 수 있다니... 대단히 신비로운 일이다.

연어의 회귀는 알면서도 그 회귀성이 신기했지 이 부분은 간과하고 있었다. 그런데 제주의 무태장어를 보면서 이 부분이 크게 다가왔다. 무태장어는 뱀장어에 속하지만 보통의 뱀장어보다 길고 가늘며 둥근 것이 특징이다. 보통 2m가 넘는 것도 있다하니 무태장어의 ‘무태’란 ‘이보다 더 큰 것이 없다(無泰, 無太)’는 뜻이라 한다. 연어는 바다에서 살다가 민물에 와서 알을 낳는다. 무태장어는 5~7년을 민물에서 살다가 바다로 가서 알을 낳는다. 민물에서 살던 장어가 바닷물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2~3개월 정도의 적응기를 갖는다. 알에서 깨어난 실뱀장어들이 바다를 둥둥 떠다니다가 민물로 왔을 때 적응기간을 갖듯이 말이다. 보통 이렇기에 뱀장어들은 하구에서 많이 발견된다.

무태장어는 그래서 서귀포 천지연폭포 근처에서 많이 발견됐던 것이다. 대략 이쯤이 열대성 어류인 무태장어의 북방한계선이 되기도 한다. 물론 무태장어가 여기에서만 사는 것은 아니다. 동양에서 유일한 해안폭포라는 정방폭포에서도 발견이 된 적이 있다. 그리고 위로는 남해안과 서해안 부근에서도 발견이 됐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도 있다. 아마도 비슷한 환경에는 더러 있겠다. 하지만 천지연폭포만큼 예로부터 많이 발견되는 곳은 흔치 않다. 그래서 아예 이곳을 무태장어 서식지로 천연기념물 제27호로 지정했다.

제주도 '무태장어'
육안으로도 구별되는 크기의 제주도 '무태장어'

그렇다고 무태장어가 천연기념물은 아니다. 물론 1978년에는 천연기념물 제258호로 지정된 적이 있다. 하지만 무태장어가 우리나라에서만 희귀할 뿐 전 세계적으로 희귀어종은 아니다. 특히 중국에서는 무태장어를 화만(花鰻)이라 부르며 고급어종으로 인기가 높아 많이들 찾는다. 제주에서도 무태장어를 찾는 이들이 많아지고 양식이 늘어나면서 중국 등지에서 치어들을 수입하는 경우가 늘면서 2009년에 천연기념물에서 해제됐다.

그만큼 희소성의 가치는 낮아졌다. 하지만 무태장어는 여전히 양식이 까다롭다. 자연 상태에서는 스스로의 힘으로 환경을 극복해가지만 인공 수조 안에서는 적응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그러니 들인 노력에 비해 소득이 적기에 무태장어 양식에 뛰어드는 이가 많지 않다. 그래서 무태장어는 여전히 고가의 음식일 수 밖에 없다.

같은 값이면 육고기를 선호하는 취향에 값비싼 장어를 먹을 기회는 많지 않았다. 어쩌다 고급요리집을 가게되면 주요리에 곁들여 나오는 장어 정도 먹어본게 전부다. 전북 고창의 풍천장어 못지않게 파주에서 살 때 임진강 장어 역시 유명했지만 한번 정도 먹어본게 기억의 전부다. 그 때도 본전 생각나서 계속 돼지고기 생각뿐이었다. 그러다가 제주에 내려와 직장 회식에서 무태장어를 제대로 먹어봤다. 소금구이를 먹으니 장어의 온전한 맛을 느낄 수 있었는데 가장 인상적인 것은 탱글탱글한 식감이다. 우선 보기에도 다른 장어보다 훨씬 살이 두껍고 구워지는 내내 모양새도 탱탱한 육질을 그대로 유지한 것이 일반 장어보다 훨씬 더 두드러졌다. 맛 역시 장어의 지방이 고소한 맛을 내 쉴 새 없이 젓가락질을 하게 만든다. 함께 한 이들은 무태장어를 처음 먹어보는 내게, 과식을 하면 기름기 때문에 설사를 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물론 전혀 그런 일은 없었다. 회식 장소가 거래처이기에 사장님이 더 좋은 장어를 신경써서 준비해 준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날 그 비싼 장어를 나는 두 번이나 더 추가 주문했으니 원없이 먹어봤다고 할 수 있겠다.

제주에는 ‘천지연 무태장어’라는 간판이 달려있는 무태장어집이 곳곳에 있다. 자연산은 우리나라에서만큼은 아주 희귀하기에 다 양식산이다. 무태장어는 흑갈색 무늬로 인해 일반 뱀장어와 구분이 쉬워 속여 팔수도 없다. 가격도 비슷하고, 소금구이는 방식도 크게 다르지 않아 아마도 비슷할 것이다. 물론 양념구이는 식당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이왕 무태장어를 맛보려면 양념구이보다는 소금구이를 추천한다.

장어는 흔히 보양식으로 알려졌다. 장어는 산란을 위해 깊고 먼 바다로 떠나기 전 온 에너지를 몸에 축적시키기 때문인데 그 에너지 덩어리를 먹는다면 당연히 보양식이 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하지만 장어를 보양식 정도로만 취급하기엔 장어의 일생이 온통 신비로움으로 가득차있다. 장어가 어디서 알을 낳는지, 어떻게 회귀와 회유를 하는지, 그리고 위와 장이 퇴화될 지경에 이르도록 어떻게 깊은 바다에 이를때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고 다다르는지... 온통 하나하나가 정확히 밝혀진 것도 없고 알려진 것도 많지 않다. 그래서 장어, 특히 제주의 무태장어를 먹으면 탱글탱글한 식감만큼이나 신비로운 자연 생태계를 자꾸자꾸 곱씹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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