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양희의 수다 in Jeju] - 말고기 이야기
[류양희의 수다 in Jeju] - 말고기 이야기
  • 제주=류양희 통신원
  • 승인 2019.07.30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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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고기 식용문화는 몽골 유목문화서 유래...13C말 몽골목장 신설로 말 증산따라
자연재해 많은 제주, 생명 유지 위한 단백질 섭취 수단으로 말고기 추렴 불가피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빼고 어떤 고기가 있을까? 많이 있다. 닭고기 말고 오리고기도 있고, 돼지고기 말고 양고기도 있다. 심지어 개고기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주로 먹어왔던 고기라서 육고기 중에서는 주로 이 세 고기를 제일 먼저 떠올린다. 그리고 여러 음식들이 이 세 종류의 육고기 중심으로 만들어졌으니 이 셋 빼놓고는 일상적으로 먹기보단 일종의 별미로 드물게 먹게된다.

제주도 하면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외에 말고기가 있다. 그럼 제주 사람은 말고기를 많이 먹을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지금 제주 사람들은 육지 사람들과 크게 다를바없이 말고기를 그리 자주 먹는 편은 아니다. 다만 육지 사람보다 먹어볼 기회가 조금더 많을 뿐이다.

원래부터 그랬을까? 아니다. 제주 사람들은 원래 말고기를 아주 좋아했다. 제주에코푸드 황인주 대표의 ‘유럽의 말고기 문화 발상지 프랑스와 제주’라는 글에 보면 제주 사람들이 말고기를 얼마나 좋아했는지가 잘 드러난다.

[조선왕조실록지에 제주인이 말 때문에 겪은 고난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세종임금은 재임 시 제주도에는 약 천 여명의 우마적(牛馬賊)이 있다는 정보를 갖고 있었다. 말추렴 관습이 널리 퍼져 있던 중산간마을 서민들은 도적으로 몰려 조정으로부터 심한 고초를 겪었다. 말을 잡은 자와 먹은 자를 포함해서 650명이 평안도로 강제 이주 당한 것이다.]

그럼 제주 사람이 언제부터 말고기를 즐겼을까?

황 대표의 다른 글 ‘고난과 시련의 극복, 말고기 식용문화’를 보면 그 시기를 고려시대 제주에 탐라총관부가 설치돼 몽골의 직접 통치영역으로 떨어졌던 때부터로 추정했다.

[말고기 식용문화는 대부분 몽골의 유목문화에서 유래하였다고 해도 크게 무리가 따르지 않는다. 13세기 말 몽골목장이 신설되어 말의 생산이 크게 증산됨에 따라 신체적으로 이용가치가 적은 말들을 식용하면서부터 말고기 식용문화가 퍼져나갔을 것이다. (중략)

원래 몽골인들은 말고기를 제사 희생물로 잡아 의례를 마치고 함께 음복하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제주에는 자연재해가 빈번하여 기근이 많이 들었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 영양소인 단백질이 절대 부족했다.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단백질을 섭취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말고기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토풍에 젖은 도민들은 민가에서 여럿이 모여 말고기를 아름아름 추렴하여 나누어 먹었다.]

​그런데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했던 자원인 말의 공급이 달리기 시작하자 말의 식용이 엄금되었다. 하지만 이미 말고기의 맛을 알아버린 제주 사람들을 통제하기가 쉽지 않았을 터. 그래서 '말고기 삶는 곳엔 가지 말아라' '말고기를 먹으면 재수 없다' '말고기를 먹으면 3년간 부정 탄다'‘말고기 먹으면 애 떨어진다’등등의 온갖 흉흉한 헛소문을 통해 오랜기간 동안 여론 조작을 했던 것이다.

물론 이런 현상은 우리만의 일은 아니다. 황 대표의 글을 이어서 보면 말고기의 원조인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에도 말고기를 금하기는 마찬가지였음을 알수 있다.

[원시사회에서부터 인간들이 마음 편하고 안전하게 먹어왔던 말고기 식용관습(hippophage)은 중세에 이르러 배척받기 시작했다. 로마교황 그레고리오 3세가 전 기독교인에게 말고기 식용금지령(732년)을 내린 것이다. 유럽에서 말고기 식용관습이 된서리를 맞게 된 정치적 사건이다. 말고기는 부정하고 구역질이 날 뿐만 아니라, 혈액에 독이 쌓여서 문둥병의 원인이 된다고 날조하였다. 성직자의 판결은 정치적으로 의도된 것이었다. 같은 해 남부 뚜르즈의 프랑크족 군대가 군마와 갑옷으로 무장하여 스페인으로부터 들어온 무슬림을 정복하는데 성공하였다. 하여, 말은 유럽에서 프로 기사로서 그리고 고가의 전쟁병기로 그 지위가 승격되었다. 또한 종교적인 이유도 바탕에 깔려 있었다. 신에게 말을 희생으로 바치고 말고기를 음복하는 북유럽인의 이단종교를 기독교화라는 이름으로 제압하는데 효과를 보았다.]

그러니 이젠 이런 말들을 믿지는 않는다. 하지만 공백이 너무 길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찾지 않는 고기를 일부러 생산할 사람은 없었고, 그래서 찾아보기도 어려운 고기를 일부러 찾아 먹을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 그게 지금 우리의 말고기 문화 현실이다.

말고기를 먹어보기 전에 아무 근거없이 가진 선입관이 있었다. 그것은 우선 고기가 질길 것이라는 거였다. 공장식 축산으로 큰 움직임 없이 도축된 닭고기와는 달리 넓은 마당을 뛰어다니거나 날아다니며 벌레를 잡아먹은 토종닭은 근육이 발달해 고기가 질기다는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일평생 뛰어다는게 일상화된 말이니 그 고기는 얼마나 질길까? 그런데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엄청 부드럽다. 소고기보다도 훨씬 부드럽다. 보통 말고기를 제대로 먹으려면 육회를 먹어보라 한다. 먹어봤는데, 정말 부드러웠다.

말고기 육회, 구이, 말고기 갈비탕, 말고기 스테이크, 말고기 갈비찜, 말고기 너비아니 등등. 말고기는 소고기로 하는 모든 요리에 적용이 가능하다는게 신기했다.
말고기 육회, 구이, 말고기 갈비탕, 말고기 스테이크, 말고기 갈비찜, 말고기 너비아니 등등. 말고기는 소고기로 하는 모든 요리에 적용이 가능하다는게 신기했다.

원래 말고기는 비육용(고기용)만 써야한다. 그래서 일시적이나마 말고기 이력제가 시범 운영되기도 했다. 하지만 비육용 말은 적고 경주용 말로 준비되다가 탈락한 말들은 많은데 현실적 활용방법이 부족하다보니 일부 비육용으로 전환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말고기는 그 특성상 부드럽다. 그러니 말고기가 질길 것이란 것은 정말 근거없는 억측이다.

원래 제주의 말은 남방계의 말이었다 한다. 하지만 몽골의 침입 이후 북방계 말이 대거 들어오면서 바뀌게 된다. 북방계 말은 추위를 견딜수 있게 체내 지방을 축적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마블링이 좋은 것이다. 그래서 부드러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설명이다.

말고기에 대한 아무 근거없는 두 번째 선입관, 그것은 고기에서 냄새가 날 것이라는 거였다. 냄새? 난다. 그런데 모든 고기에서는 각 고기의 특성상 비릿한 냄새나 누린내가 난다. 문제는 그걸 조리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처리하느냐이다. 말고기를 처음 먹었을 때 이 선입관 때문에 온 미각에 신경이 곤두선 채 먹었다. 그런데 특별히 역한 냄새를 느끼지 않았다. 당연하다. 오히려 돼지고기가 더 냄새가 나면 났지 말고기는 그렇지 않았다.

대안학교 교사시절 아이들과 제주여행을 왔을 때 여행비용을 최대한 아껴서 여행 후반에 말고기를 세트메뉴로 시켜 이것저것 다 먹어본 적이 있다. 말고기 육회, 구이, 말고기 갈비탕, 말고기 스테이크, 말고기 갈비찜, 말고기 너비아니 등등. 말고기는 소고기로 하는 모든 요리에 적용이 가능하다는게 신기했다. 육지에선 보통 소로 밭을 가는데, 제주에선 말이 밭을 갈고 있던 사진을 보고왔던 직후여서 비슷한 문화충격이었다고나 할까.

제주에 말고기로 유명한 곳은 많다. 사실상 제주를 제외하고는 전국에 말고기를 먹을수 있는 식당 자체가 몇 군데 되질 않으니 그럴 수밖에. 교사시절 아이들과 말고기를 먹었던 식당은 유홍준의 ‘나의문화유산답사기’ 7권에 소개된 집이었다. 그런데 그 식당이 훨씬 나중에 제주로 이주해 나의 첫 근거지가 되었던 표선에 있는 식당이었으니 보통 인연이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얼마 전 문을 닫았다. 하긴 그때도 그리 손님이 많지 않아보였고, 책에서 보고 찾아왔다고 말하니 정말이냐고 되묻기까지 할 정도로 그리 유명한 곳은 아니었다.

유명하기로는 귀에 쏙 들어오는, 재미있는 이름으로 효과를 톡톡히 보는 식당 두 곳을 많이들 꼽는다. 제주시의 ‘마진가’와 서귀포 대평 쪽의 ‘마돈가’. 말고기가 맛있기로야 다른 곳도 더 있겠으나 사람들은 이 두 곳 이름을 웬만해선 잊지않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역시 이런 것도 마케팅에 있어선 배울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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