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양희의 수다 in Jeju] - 제주 흑우 이야기②
[류양희의 수다 in Jeju] - 제주 흑우 이야기②
  • 제주=류양희 통신원
  • 승인 2019.07.17 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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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흑우의 쇠퇴는 일제강점기 수탈과 책략의 결과
일본 천연기념물 '미시마소'는 가장 오래된 와규로
일본문화재청 '조선반도서 도래해 혼혈 없이 사육' 기록
일본 모색일체화 정책으로 한국산 흑우·칡소 말살시켜
한우심사표준에 한우 털색 황갈색으로 규정...농가 흑우 사육 꺼려

역사적으로 제주 흑우는 국가적인 큰 행사에 주요하게 쓰이는 등 꽤나 유명했다. 물론 흑우가 꼭 제주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전국 곳곳에 꽤나 많이 존재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는 ‘검은소’라는 것 자체가 매우 낯설기만 하다. 왜 그렇게 됐을까?

사진가 김민수 씨가 쓴 ‘제주의 검은 보물, 흑우를 담다’라는 글을 인용해보면 이렇다.

[언제부터 흑우는 우리 곁에서 멀어졌을까?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여기저기 문헌을 찾아보니 흑우의 쇠퇴는 자연소멸이 아니라 일제강점기 일제의 수탈과 책략의 결과라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였다.(중략)

제주흑우는 1924년 암소 125두, 수소 50두, 1925년 암소 25두, 수소 1두가 일본으로 수탈되어 간 기록이 있다. 그리고 1928년 일본은 자국의 '미시마소(見島牛)'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였다. 미시마소는 바로 일본 흑우인 '와규'의 원조이다.

오늘날 일본 문화재청에서는 '미시마소는 무로마치 시대(1336-1573)에 조선반도에서 도래하여 현재까지 혼혈(교잡) 없이 사육되어 왔으며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와규(和牛)로 일컬어지고 있다'라고 밝히고 있다. 1924년 일본으로 '수탈된 제주흑우'와 1928년 일본의 '미시마소 천연기념물 지정'은 공교로운 일로서 '혼혈(교잡) 없이'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한다. (중략)

급기야 일본은 1938년 한우에 대한 새로운 표준법을 제정하기에 이른다. '일본 흑일매(黑一枚), 한국 적일매(赤一枚)' 즉, 일본의 소는 흑색을 표준으로 하고, 한국의 소는 적갈색을 표준으로 한다는 모색통일 심사표준법을 발표한다(동아일보 1938년 12월 21일). 다시 말하자면 '적갈색 소'만을 조선우(朝鮮牛)로 인정하기로 하는 한편 일본은 '흑색'을 기본으로 '와규(和牛)'를 장려한다는 모색 일체화 정책을 편 것이다.

알고 보면 이 법은 우리 소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파괴하는 무서운 법이었다.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던 흑우와 칡소를 말살시키는 법이었다. 자연히 국내에서 평가절하된 흑우와 칡소는 잡종으로 분류되어 농가에서 사육을 기피하는 현상까지 발생하였다.

왜 일본은 자국 소의 표준을 흑색으로 정했을까? 그들은 이미 흑우의 우수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 아닐까? 사라진 흑우의 비밀은 여기에 있었다.]

흑한우명품관의 흑한우고기(사진=VISIT JEJU)

제주 흑우는 제주 4.3사건을 겪으면서 더욱 극감됐다. 그리고 이후 생산성이 취약한 흑우는 농가의 외면을 받았다.

[1970년대 즈음 제주흑우는 멸종의 위기로 가고 있었다. 당시 '한우심사표준'에서는 한우의 표준 털색을 황갈색으로 규정하였고, 이에 농가에서는 흑우, 칡소 등의 사육을 더욱 꺼리게 되었다. 제주흑우는 제주도의 거친 땅을 일구어 내는 일소로 겨우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일 잘하는 소로만 남은 흑우는 이른바 기계화 농업의 시작과 더불어 일소로서의 존재가치도 위협받게 된다. 결정적인 것은 바로 경운기의 등장이었다. (중략)

누렁소에 비해 다소 발육이 더딘 검은 소 '제주흑우'는 농가의 소득원으로서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고, 이로부터 빠르게 소멸의 운명을 맞게 된다. 1981년 당시 제주농업시험장에서 근무하던 문성호 교수가 멸종되어 가는 제주흑우의 마지막 남은 씨수소를 제주 애월읍에서 발견하게 된다. 제주농업시험장에서는 이 씨수소를 구매하여 관리한다. 1986년 문성호 교수는 정액을 채취하여 2백여 개의 스트로에 담아 영하 196C로 동결 보존한다. 마지막 씨수소는 그의 검은 유전자를 남기고 이후 명을 달리한다. "겨우 찾은 암소들이 나이가 20~데살이나 된 할머니 소였네요." "임신이 힘든 소였죠. 그래서 불임치료를 시작했어요!"

불임치료에 효과를 보인 암소에 인공수정을 시도하여 13마리 중 4마리가 임신에 성공했고, 드디어 1994년 제주흑우는 기적적으로 부활하게 된다. "과학적 쾌거였다."]

이후 제주흑우는 2004년 국제식량농업기구(FAO)에 우리나라 한우품종 4종(한우, 칡소, 흑우, 제주흑우)중 한 계통으로 등록 신청되었고, 천연기념물(제546호)로 지정되던 2013년을 전후해서는 한때 89개 농가 등에서 1292마리를 사육하기에 이를 정도로 증식에 성과를 올렸다.

그렇게 지속적으로 상승곡선만 그려나가면 좋았으련만 안타깝게도 현재는 그때의 절반수준에도 못미쳐 FAO에 의해 멸종위험 군으로 분류되고 있다. 2018년 말 기준, 도내 흑우 사육두수는 41개 농가 355마리, 축산진흥원 179마리, 국립난지축산시험장 35마리, 서귀포시축협 생축사업장 83마리 등 632마리가 고작이다.

이러한 결과에 대한 가장 큰 원인은 역시나 채산성에 있었다. 다른 한우나 수입쇠고기에 비해 훨씬 채산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제주흑우는 생육 기간부터가 한우보다 6개월이나 더 길다. 다 자란 제주 흑우의 무게도 일반 한우에 비해 100여 킬로그램이나 차이가 난다. 당연히 고기의 양도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가뜩이나 근근히 버텨나가고 있는 농가로서는 제주 흑우를 사육한다는게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다.

증식이 뒷걸음질 치고 숫자가 줄어들면서 근친교배가 잦다보니 열성 유전자를 가진 송아지도 늘어나 우량 흑우의 숫자는 더 줄어드는 추세다. 관련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제주흑우가 최소 5000마리 이상은 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632마리의 흑우가 5000마리로 늘어나게 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열심히 흑우를 먹어주는데 있지 않을까?

서귀포시 토평동의 흑한우명품관 1층 실내전경림과 한상차림(사진=VISIT JEJU)

서귀포시 토평동에는 ‘흑한우명품관’이 있다. 여기서는 정말 속지 않고 흑한우를 맛볼 수가 있다. 서귀포축협에서 운영하는 곳인데 제주 흑우 상시판매장은 여기가 사실상 유일하다. 더 늘리고 싶어도 흑우자체가 얼마 없으니 일 년 통틀어 도축물량 자체가 얼마 안 돼 더 늘릴수도 없는 실정이다. 그런 귀한 고기를 맛보는 것이니만큼 가격면에선 각오를 단단히 해야한다.

 ‘검은쇠몰고오는’ 외부전경(왼쪽=검은쇠몰고오는 홍보 사진)과 ‘흑소랑’의 한상차림(사진=VISIT JEJU)

제주시에도 흑우전문점이 있다. ‘흑소랑’이나 ‘검은쇠몰고오는’이 대표적이라 미디어에도 노출이 많이 됐다. 제주사람이 아니면 지역 구분에 큰 의미는 없겠으나 굳이 따지자면 ‘흑소랑’은 구도심인 구제주 쪽에, ‘검은쇠몰고오는’은 신도심인 신제주쪽에 있다.

이쯤되면 흑우가 정말 그렇게 특별하게 맛있냐고 되묻는 이들이 있을 것도 같다. 굳이 비유하자면 맛있는 제주 돼지고기와 맛있는 제주 흑돼지고기 정도의 차이 만큼이라고나 할까? 그 차이는 개인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일상을 벗어나 뭔가 색다른 경험을 해보는게 여행의 목적이라고 한다면 제주의 흑한우 정도는 한번쯤 먹어보는게 제주 여행의 또다른 즐거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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