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양희의 수다 in Jeju] – 꿩대신 닭 ③_꿩·닭 샤부샤부
[류양희의 수다 in Jeju] – 꿩대신 닭 ③_꿩·닭 샤부샤부
  • 제주=류양희 통신원
  • 승인 2019.05.08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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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훠궈'와 일본 '샤부샤부' 요리는 서로 영향을 미친 듯
제주 해산물 토렴 식문화가 일본 샤부샤부의 기원이라는 추정도
현대 제주 꿩샤부샤부는 과거 꿩토렴의 업그레이드 버전
꿩 대신 닭 사용한 닭샤부샤부는 토종닭 특구 교래리가 유명

난생 처음 샤부샤부 류(類) 의 요리를 맛본 것은 20여년전 중국 장춘(長春)에서의 훠궈(火鍋)였다. 당시 국내에서도 샤부샤부 요리가 있긴했지만 고기요리라고는 돼지갈비 아니면 삼겹살 구이 외에는 색다른 요리를 경험해본 적이 없었던 나로서는 국물에 휘휘 저어 먹는 요리가 마냥 신기했던데다 구이 요리는 고기를 익히기까지 일정 시간이 지나야 하는데 비해 이 요리는 고기를 담근지 얼마 안돼 바로 건져먹을 수 있어서 고기 앞에 늘 마음이 조급한 나로서는 속도면에서 우선 마음에 들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약간 깊이 있는 둥그런 냄비, 절반이 물결모양으로 나뉘어져 꼭 태극무늬 모양을 띤 그릇에 한쪽은 매콤한 붉은 국물이, 다른 한쪽은 맑고 감칠맛 나는 국물이 담겨 있었다. 그러니 취향에 따라 고기를 담가 익혀먹으면 되는 것이었다. 그 때는 국내에 샤부샤부도 지금처럼 흔하지 않았으니 이런 훠궈요리는 더더욱 생소했던 시절이라 모두들 신기해했다. 당시 중국 유학중이던 선배가 먹는 방식과 용어들을 일일이 설명해주었지만 그 이름들까지는 기억나지 않다가 훠궈요리가 대중화된 요즘 자료들을 살펴보면서 그때 추억을 새록새록 떠올리는 것이다.

세계음식명백과(마로니에북스)의 샤부샤부 설명에 따르면, 1952년 오사카(大阪) 에이라쿠쵸(永楽町, えいらくちょう)의 서양식 쇠고기 요리 전문점 스에히로(スエヒロ)에서 가게를 운영하던 미야케 츄이치(三宅 忠一)가 당시 종업원이 큰 양동이에 물수건을 헹구는 모습을 보고 다시 국물에 고기를 적셔 먹는 요리를 떠올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물수건을 헹굴 때 나는 ‘샤부샤부(しゃぶしゃぶ)’라는 소리를 따 요리의 이름을 붙였던 것.

그런데 같은 책에서 샤부샤부의 기원에 대한 설명을 살펴보면, 원래 중국의 슈왕양로우(涮羊肉, シュワンヤンロウ)라는 히나베 요리(火鍋料理)에서 발전했다는 설이 있다고 언급돼 있다. 슈왕양로우는 신선로처럼 생긴 나베(鍋)에 양고기를 익혀 진한 소스에 찍어 먹는 것으로 지금의 샤부샤부와는 다른 형태의 요리였지만 일본에서 쇠고기를 사용하고 소스도 쇼유(しょう油, 간장)를 기본으로 하는 요리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중국 훠궈요리는 또다시 일본 샤부샤부의 영향을 받았다고하니 두 요리 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굳이 순서를 따져본다면 일본에서는 불교 교리를 따라 1868년 이전에는 약 1200년간 육식이 금지돼왔으니 샤부샤부 류의 요리는 중국이 먼저 였음이 어느정도 사실이겠다.

그런데 또 여기서 식생활문화연구가 김영복 씨는 아주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그는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blisskim47)에서 제주의 ‘꿩토렴’을 설명하며 제주의 토렴식문화가 일본 샤부샤부의 원조가 아니었을까 추정했다.

[필자는 1999년 오사카에서 샤부샤부(しやぶしやぶ)를 먹으러 갔다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일본 오사카 대부분 식당에 종사하는 요리사나 찬모(饌母)들 중 제주도 출신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한 아줌마를 불러 제주도 출신들이 오사카에 많이 정착하여 살게 된 동기를 듣게 되었는데, 4·3 제주사태 때 제주에서 일본 오사카로 많이 와 정착해 살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우리와 음식문화가 비슷한 오사카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직장으로 식당이 제일 적합했던 것이다.

여기서 필자는 샤부샤부(しやぶしやぶ) 유래에 대해 갑자기 의문을 갖게 되었다. '제주의 토렴에서 유래한 것이 아닐까?' 필자는 귀국하자마자 제주도를 찾아갔다. 제주도의 해녀들은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오래전부터 물질을 한 후 시장기를 없애고자 자신들이 잡아 올린 해산물을 먹게 되는데, 특히 여름에는 해산물을 날것으로 먹게 되면 탈이 나는 경우가 많아 물을 팔팔 끓여 해산물이 익으면 익을수록 질겨지므로 살짝 데쳐 먹는데, 이를 '토렴(退染)'이라고 한다.

해산물 즉 조개류 등을 데쳐 먹는 것은 제주도뿐만 아니라 서산 등 서해안 지방에서도 즐긴다. 제주도의 해산물 토렴법이 오사카에 건너간 제주도 여인들에 의해 새로운 요리로 등장하게 되고 이 새로운 요리를 일본 사람들은 의태어인 '샤부샤부(しやぶしやぶ)'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하게 된다.]

두산백과에서 ‘토렴’은 ‘밥이나 국수 등에 더운 국물을 여러 번 부었다가 따라내어 덥히는 일을 말하는 것으로 퇴염(退染)이라고도 한다.’고 나와있다. 이 설명대로라면 지금의 샤부샤부와는 전혀 달라 이것을 우리나라 샤부샤부의 기원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보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제주의 ‘토렴’은 김영복 씨가 언급한 바와 같이 샤부샤부와 매우 흡사하다.

꿩토렴 (출처_농촌진흥청)

제주특별자치도에서 펴낸 ‘전통향토음식-제주인의 지혜와 맛’에서 ‘꿩토렴’ 만드는 법을 살펴보면 이렇다. ‘1)꿩은 깨끗이 씻어 가슴살을 발라내어 길게 포를 떠서 준비한다. 2)꿩 뼈는 칼등으로 두드려서 냄비에 넣고 물을 넣어 생강 한 쪽과 함께 푹 고아 체로 밭쳐 육수를 걸러낸다. 3)무, 당근, 배추는 길이 6cm, 폭 2cm, 두께 0.3cm 로 썬다. 4)미나리는 길이 6cm로 썰고 생표고는 편으로 썰어 준비한다. 5)접시에 야채들은 가지런히 담고 포를 뜬 꿩 살을 담아낸다. 6)전골냄비에 육수를 넣고 육수가 끓으면 야채부터 익혀가다 꿩을 넣어 살짝 익힌 후 양념장에 찍어 먹는다.’

제주엔 ‘꿩샤부샤부’가 유명하다. 물론 근래의 제주 ‘꿩샤부샤부’는 꿩이 많았던 지역적 특색에다가 샤부샤부라는 외래음식이 결합된 형태다. 하지만 이것이 제주에 별 거부감없이 자연스레 받아들여져 제주의 대표음식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그 연원을 하나하나 따져보면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던 ‘꿩토렴’에서 찾을 수 있겠다. 그러니 당연히 현재 제주 ‘꿩샤부샤부’는 과거 ‘꿩토렴’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원래 우리나라 ‘꿩샤부샤부’가 유명하기로는 충북 충주 쪽이다. 70년대를 전후해 수안보를 중심으로 온천관광객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퍼져나가 원조격으로 여겨지는데 충주의 꿩샤부샤부와 제주의 꿩샤부샤부는 맥락이 전혀 다르다 할 것이다.

그럼 ‘꿩샤부샤부’역시 꿩대신 닭을 쓰면 어떻게 될까? 그게 바로 제주의 ‘닭샤부샤부’다. 제주의 ‘닭샤부샤부’ 원조는 보통 교래리의 ‘성미가든’을 지목한다. 개인적으로 ‘성미가든’ 닭샤부샤부와는 인연이 아직 안닿았지만 교래리 다른 식당에서 ‘닭샤부샤부’ 코스요리를 먹어본 적이 있다. 함께한 일행들이 성미가든과 똑같이 나온다면서 품평하는 걸 봐서는 교래리 닭샤부샤부는 다들 대동소이한 모양이다.

제주 교래리 성미가든 닭코스요리 (출처_VISIT JEJU)

교래리는 토종닭유통특구로 직접 도계(屠鷄)가 가능해 각 식당들마다 신선한 닭을 내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닭육회도 먹을수 있는 곳이 있다. 보통 코스요리를 시키면 처음엔 샤부샤부용 닭가슴살과 닭모래집, 껍데기가 접시에 담겨나온다. 그것을 각종 채소와 함께 육수에 담가 먹는다. 그러고 나면 닭백숙이 나오는데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삼계탕같은 국물 많은 백숙이 아니다.

접시에 국물없는 닭고기가 담겨나오는데 그 닭고기 뱃속엔 녹두와 통감자, 대추가 보통 들어있다. 찹쌀을 넣는 육지와는 좀 다른 모습의 통감자가 인상적인데, 몇차례 언급했듯 제주는 쌀문화권이 아니었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이해가 쉽게 간다. 녹두와 닭은 원래 음식궁합이 잘맞아 어느 지방에서든 잘 사용하는데 여기서는 닭백숙을 먹고나면 마무리로 녹두죽이 나와 마지막까지 속을 든든하게 해주고 닭요리의 여운을 잘 갈무리해준다.

식당에 따라 샤부샤부 국물에 면사리를 넣기도 하는데 최근에는 라면을 넣는 경우도 있으나 여기에 칼국수를 넣으면 닭칼국수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닭샤부샤부에서 닭칼국수가 비롯됐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같다.

이제는 꿩샤부샤부보다 닭샤부샤부가 더 유명해지고 꿩메밀칼국수보다 닭칼국수가 더 소문이 났다. 꿩대신 닭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제주의 ‘꿩대신 닭’스토리는 여기에 만족하지를 않는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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