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양희의 수다 in Jeju] 꿩대신 닭②
[류양희의 수다 in Jeju] 꿩대신 닭②
  • 제주=류양희 통신원
  • 승인 2019.04.22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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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메밀밭
제주의 메밀밭

제주도가 국내 최대 메밀 산지임은 이미 언급한 바 있다. 논농사가 어려워 쌀밥 문화보다는 조, 메밀, 콩 등 잡곡을 이용한 분식 문화가 발달했던 제주에서 메밀은 이모작(二毛作)까지 가능해 구황작물로서 역할을 톡톡히 했다.

추석을 전후해 제주를 여행해본 이들은 직접 확인했겠지만, 이즈음 제주는 메밀꽃이 절정에 달한다. 이 메밀들은 겨울을 앞두고 수확하기 때문에 집들마다 초겨울에는 메밀이 넉넉하다.

겨울에 들어서면 한라산에 눈이 쌓이는데, 그러면 꿩들이 먹이를 찾아 산에서 내려오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꿩사냥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제주향토음식보전연구원 양용진 원장의 블로그 ‘바람의 레시피(https://blog.naver.com/yyjeju)’의 ‘꿩메밀칼국수’ 관련 글을 보면 이 때의 풍경을 이렇게 그리고 있다.

꿩메밀칼국수
꿩메밀칼국수_(출처 ‘전통향토음식-제주인의 지혜와 맛’)

‘한라산에 눈이 쌓이면 그 많은 꿩들은 해안 마을로 날아든다. 먹이 활동을 위해 흙이 드러난 들이나 밭, 과수원 등지로 날아오는 이 녀셕들은 단순하게도 늘 다니는 길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제주의 아이들은 어릴때 부터 꿩을 잡는데는 선수가 된다. 그저 철사 두가닥으로 꿩코를 놓고 기다리기만 하면 꿩이 잡혀준다고 표현함이 옳겠다. 그래서, 겨울철에는 어느집에서나 꿩을 한두마리 쯤은 맛볼수 있었다. 그러나 꿩은 운동량이 많아서 보기보다 살이 많지않다. 그래서 한마리를 삶아도 닭한마리 삶느니만 못하기 때문에 국물을 우려내어 요리를 한다.

한겨울 제주에서 맛난 식재료는 무와 메밀이 있다. 메밀을 익반죽해서 도톰하게 썰고 꿩고기를 발라내어 무채와 함께 꿩육수에 끓여낸 꿩메밀칼국수...’

제주의 월동무는 8월 하순에서 9월 중순까지 파종해 11월 중순부터 이듬해 4월 상순까지 수확한다. 무에는 해독작용이 있다. 메밀은 몸 속에 열기와 습기를 빼주기는 하나 찬 음식이어서 복통이나 설사를 유발하기도 한다. 이를 해독해주는 것이 무여서 서로 음식궁합이 잘 맞는다.

‘제주의 메밀 재배 역사는 멀리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탐라를 점령한 몽골이 메밀에 사람의 피를 말리는 독성이 있음을 알고, 삼별초 항쟁을 도운 제주 사람들을 골려 주려고 메밀을 도입했는데 제주 사람들이 독성을 제거하는 무를 함께 먹음으로써 피해를 예방했다는 설이다’(강정효의 이미지 제주_한국일보 2018.10.26.)

그러니 꿩메밀칼국수는 겨울 제주에서 가장 흔한 식재료로 만든 음식이다. 하지만 꿩메밀칼국수를 먹기까지는 손이 많이간다.

‘꿩을 통째로 삶아 고기를 건져 낸 후 살은 발려 메밀국수 웃기로 사용한다. 그 뼈를 다시 고기 삶은 물에 넣고 소금, 생강, 대파를 추가한 뒤, 은근한 불로 네댓 시간 더 우려내면 비로소 시원 구수한 육수가 만들어진다.(...중략...) 꿩과 닭이 뭐 그리 다르겠는가 싶겠지만, 국물 맛을 보면 그 차이를 느낄 수가 있다. 꿩 육수는 닭국물처럼 고소함은 적지만 더 시원하다.

꿩메밀칼국수의 면발 또한 부드럽고 구수하다. 메밀은 본래 점성이 적어 면을 뽑기가 쉽지 않지만 제대로 꿩메밀칼국수를 끓이는 집들은 100% 순메밀가루만을 고집한다. 메밀면도 구수한 맛을 내는데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젓가락질에도 면이 툭툭 끊기다보니 어느 정도 먹다가는 숟가락으로 떠먹기도 한다. 하지만 메밀면을 먹을 줄 아는 사람들은 뚝뚝 끊기는 순메밀면 특유의 느낌이 왠지 제대로 된 것을 맛본다는 기분이 들어 더 좋다고 입을 모은다.

꿩메밀칼국수는 제법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반죽에서부터 면썰기 등도 신경을 써야하고, 반죽을 얇게 밀어 가지런하게 썬 다음 팔팔 끓는 육수에 메밀면, 무채, 삶아 찢어 둔 꿩고기를 넣고 끓여야 제대로 된 맛을 낼 수가 있다. 그런 후 소금과 참기름을 넣고 간을 맞춘 뒤 그릇에 담아 깻가루와 잔파를 얹어 상에 올린다. 정성이 반이 넘는 음식인 셈이다.’(‘김형우 기자의 제철미식기행 = 꿩메밀칼국수’ 스포츠조선 2017-09-25)

그래서 제주에 꿩이 아무리 많았다하더라도 꿩고기 요리는 역시나 부자들의 음식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부자가 아닌 일반 백성들은 어찌해야 할까? 게다가 꿩 사냥철이 아닌 여름에 꿩메밀칼국수가 먹고 싶으면 또 어찌해야 할까? 그래서 역시 선택은 ‘꿩대신 닭’이었던 것이다.

닭메밀칼국수는 주로 여름에 먹는 보양식이다. 요리의 과정은 꿩메밀칼국수와 그리 다를게 없다. 원래 밀은 귀했던 반면 메밀은 흔했다. 오래전 TV드라마 대장금에서 밀가루를 진(眞)가루로 부르면서 상당히 귀하게 다루는 장면이 나왔던 적이 있다. 하지만 해방이후 미국의 원조물자로 미국내 잉여 농산물이었던 밀이 대량 유입되면서 상황은 역전이 된다. 특히 1970년대까지도 쌀 등 필수 식량의 자급율이 100%에 이르지 못해 값싼 수입밀이 대량으로 수입되게 된다.

제주의 교래리에서 닭을 키우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고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밀가루가 흔해진 것도 이때인데 이런 상황이 닭메밀칼국수보다 닭칼국수를 더 흔하게 만들었던 것이 아닌가 추정해본다. 면을 만드는 과정이 쉽고 면의 식감도 훨씬 좋은 밀이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밀이 메밀을 대체한 것이라는 추론을 해보게 되는 것이다.

교래손칼국수집 전경

교래리에 가면 ‘교래손칼국수’집이 있다. 이 집은 공항에서부터 필자가 예전에 살던 남원으로 넘어오는 경로상에 있어서 손님을 맞이해 중간에 식사하기 딱 알맞은 위치에 있다. 맛만 좋은게 아니라 양도 많아서 한그릇 먹고 나면 정말 보양식 한그릇 잘 먹은 느낌이다. 다만 워낙 유명한 집이라 늘 손님으로 꽉 차있다. 주차하기도 쉽지 않지만 주문하면 음식나오기까지도 한참 걸린다.

중간에 테이블을 옮기면 음식 나오는 시간이 더 지체된다는 엄포성(?) 안내문은 수많은 손님의 주문을 받고 틀림없이 음식을 내가야 하는 식당의 입장에선 불가피한 조치라고 느껴질만큼 정신없이 손님이 많다. 바지락칼국수나 보말전복칼국수도 함께 메뉴에 있지만 이왕 교래리에 와서 칼국수를 먹을거면 닭칼국수를 강력하게 추천해본다.

꿩을 대신해 닭으로 요리한 것은 닭칼국수만은 아니다. 닭칼국수보다 먼저 닭샤부샤부가 있고 닭샤부샤부에 앞서 꿩샤부샤부가 있었다.
(다음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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