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양희의 수다 in Jeju] 아강발국- 돼지 발목아래 부분 이용한 배려의 음식 '돈족탕'
[류양희의 수다 in Jeju] 아강발국- 돼지 발목아래 부분 이용한 배려의 음식 '돈족탕'
  • 제주=류양희 통신원
  • 승인 2018.12.07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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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라틴 메티오닌에 칼슘 단백질 등 풍부해
돼지추렴 후 젖먹이 있는 산모집으로 보내
가난했지만 따뜻한 제주의 옛 흔적

제주의 여러 음식들 중 우선 돼지고기와 관련된 요리들을 소개해가면서 이 부분의 마지막은 ‘아강발국’으로 마무리 지어야겠다는 생각을 처음부터 했었다. 제주 사람들이 돼지고기 부위 이곳저곳을 알뜰하게 활용하다 못해 급기야 아강발국까지 끓여 먹었을 정도였다고 하면 전체 흐름상 기승전결이 맞아떨어지고, 곧 클라이막스와 대단원의 흐름으로도 적당하다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제주사람들은 돼지의 발까지도 음식 재료로 활용했다. 아강발국을 돼지족발국, 돼지족탕이라고 하는 이도 있고 우족탕과 운율을 맞춰 돈족탕이라 하는 이도 있다. 굳이 구분해본다면 우리가 흔히 돼지족발이라 말하는 부위는 발목을 기준으로 윗부분을 지칭하지만 아강발은 그 아랫부분으로 정말 돼지 발 부분을 뜻한다. 그러나 이런 구분은 현실에선 큰 의미가 없다.

가난했지만 따뜻했던 제주의 옛 흔적 ‘아강발국’
(출처 '전통향토음식-제주인의 지혜와 맛')

제주향토음식보전연구원 양용진 원장의 블로그 ‘바람의 레시피’에서 제주의 아강발국 조리법을 살펴보면 ‘돼지 족을 불에 그을려서 털을 태우고 잔털도 칼로 긁어 없애 씻은 후 마디에 따라 잘게 자르고 물을 넉넉히 부어 푹 삶고 미역을 넣고 다진 마늘과 생강도 넣어 끓인 후 소금이나 청장으로 간한다.’

물론 제주만큼은 아니더라도 다른 지역에서도 ‘돼지족탕’이 존재했다. 그리고 나무위키 등 인터넷 자료들을 뒤져보면 ‘일본의 오키나와 요리인 테비치소바(てびちそば), 독일의 요리 슈바인스학세(Schweinshaxe), 아이스바인(Eisbein), 오스트리아의 슈텔체(Stelze), 체코의 꼴레뇨(Koleno) 그리고 태국 요리 카오카무(ข้าวขาหมู)도 돼지의 다리를 이용한 요리이다. 아일랜드 요리에도 크루빈스(Crubeens)라는 비슷한 음식이 있다.’

돼지족발 부위가 이렇게 활용된 것에는 쫄깃쫄깃한 젤라틴의 식감은 물론 영양성분도 한 몫했을 것이다. 두산백과에 따르면 ‘족발에는 젤라틴 성분이 풍부하여, 피부미용과 노화방지에 효과가 있다. 또 모유 분비를 촉진하는 작용을 하므로 임산부와 수유부에게 좋다. 돼지고기에는 메티오닌이라는 아미노산이 들어 있어 간을 강하게 하므로 알코올 해독과 숙취예방에 효과가 있다. 그리고 납·수은 등의 중금속 중독과 규폐병(硅肺病:광산 등에서 규산이 많이 들어 있는 먼지에 노출되어 생기는 폐질환)이 걸렸을 때 독소를 체외로 배출하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이런저런 각국의 족발 관련 요리들이나 족발의 영양성분에 대한 설명들로는 제주의 ‘아강발국’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엔 뭔가 잘 와닿지 않는 느낌이다. 나는 제주의 ‘아강발국’이란 게 있다는 이야기를 처음 접하고는 오히려 돼지족발 요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20여년전 중국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하니 20여년 전 중국이라하면 강산이 벌써 두 번 아니, 중국의 변화 속도를 감안할 땐 세 번도 더 변하기 전 이야기다. 그때 중국은 아직 가난했다. 그 중에서도 더 가난했던 중국 변방 동북삼성(東北三省, 길림성, 요령성, 흑룡강성)중 하나인 길림성의 장춘(長春)공항에 내려, 거기서도 7~8시간 차를 타고 들어가야만 하는 교하(蛟河), 그 교하에서도 변두리중 변두리라 비포장 도로로 한참을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마을에 조선족들이 살고 있었다.

당시에도 조선족들의 꿈은 어떻게든 한국으로가 돈을 버는 거였을 정도로 그들 눈에 한국은 부러운 풍요의 땅이었다. 그런 부유한 곳에서 손님이 왔다하니 비록 가난한 마을이었다 하더라도 우리 일행을 의식해 그 대접이 아주 극진했다. 하루는 저녁식사 초대받아 갔는데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지 큰 상 하나 가득 푸짐하게 각종 요리들이 준비돼 있었다.

그 음식들 중에 가장 눈에가는 음식이 닭고기 요리였다. 닭을 삶았는데 통째로 삶아 닭머리부터 닭발의 발톱까지 그대로였다. 일행 중 여자 후배 하나는 그 모양을 보고 기겁을 할 정도였다. 그도 그럴것이 (실감나는 묘사를 위해 약간의 과장을 더해본다면) 커다란 밥상 한가운데 닭한마리가 통째로 눈을 부릅뜨고(사실 눈을 부릅떴는지 눈을 감고 있었는지는 기억이 명확하지 않다) 발톱을 세운채 떡하니 누워있는 모습은 과히 볼만했다. 중국의 요리들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원재료에 충실(?)했다. 그러니 여자 후배들은 모양새만 보고 먹기를 꺼려했고 먹더라도 평소 먹는 부위만 골라 깨작거리고 말았다.

상을 물리고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나는 과식으로 인해 장운동이 활발해지면서 화장실이 가고 싶어졌다. (당시 그 곳 화장실은 알만한 이들은 알겠지만 개방형 재래식 변소였다) 어두운 밤에, 밖에 화장실이 어디 있는지 물으려 부엌을 힐끔 쳐다봤는데, 거기엔 그날 하루종일 음식 장만을 위해 모였던 마을의 아낙들이 옹기종기 모여 뒤늦은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 분들은 우리가 물린 상에서 남아 있던 음식들을 나누어 먹고 있었다. 그런데 그 분들이 들고 있었던 것들은 우리가 남긴 닭머리며, 발톱달린 닭발, 벗겨놓은 새우껍데기, 먹다 남긴 잉어 머리 등 그런 것들이었다. 그러면서 그 분들이 하는 말도 원치않게 엿듣게 됐다. ‘아니 이 맛있는 부분을 왜들 남겼대...?’

우리 일행은 여행 출발 전부터 중국 현지에서 겸손한 모습으로 조선족을 만나자고, 자칫 우월감섞인 모습으로 현지인들에게 상처를 주어선 절대 안된다고 나름 단단한 각오를 다졌다. 실제로도 현지에서 많은 노력과 정성을 기울였던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부분까지는 미처 생각지도 못했다.

여행떠나기 전, 중국의 조선족들은 일제 강점기때 나라의 독립을 염원하던 지사(志士)들의 후예이며, 타지에서 고향을 애틋하게 그리워하며 악착같이 기반을 잡으려 애쓰던 불굴의 의지를 지녔던 이들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여러번 되뇌었다. 하지만 그분들의 고난이나 가난과는 비교할 수 없는 풍요속에 자란 우리들은 아무리 머리로 결심을 했어도 정작 몸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분이 그렇게 분명히 있었던 것이다.

나는 제주의 아강발국을 보며 이십 여년 전 중국에서 맞닥뜨렸던 그 음식들을 떠올렸다. 서로 어렴풋이 맥이 닿는 부분이 있었다. 가난하고 척박했던 제주에서 먹을거리에 관한한 아주 사소한 것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했던, 어찌보면 절박하고도 필사적이리만치 했을 생존의 몸부림을 생각했다.

나는 오래된 아파트단지 화단 곳곳에 관리사무소에서 그렇게 금지하는데도 불구하고 고추며, 상추며, 들깨며, 파... 등등을 억척스럽게 심어놓는 노인분들을 본다. 그 분들은 그저 심심해서라고 하지만 나는 단순히 그렇게만 생각지 않는다. 나는 또, 다 먹지도 못할 거면서 굳이 산에서 고사리며, 도토리 등을 몇자루씩 가득 따와 꼭 자동차 다니는 길 옆에 아슬아슬하게 널어놓는 탓에 걸리적거리게 만드는 노인 분들을 본다. 이쯤되면 민폐가 분명해보이는데, 왠지 이 분들이 벌여놓은 것들을 바라보면서도 비슷한 느낌이다. 모두 다 옛시절 먹을거리 결핍을 타개하기 위해 필사적이었던 몸부림의 습관이 아직도 그렇게 흔적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그렇게 거둔 상추나 풋고추, 깻잎, 고사리들은 정작 본인들이 드시는게 아니다. 바로 시드는 것들은 이웃들에게, 오래 두고두고 먹을수 있도록 햇빛에 말려놓은 것들은 고이고이 보관해두었다가 자식들에게 보낸다. 그런 점에서도 굳이 같은 맥락으로 보자면 아강발국과 닮은데가 있다.

시인 김정숙은 지역언론 ‘제주의소리’에 아강발국을 ‘배려의 음식’이라고 소개한바 있다.

‘아강발국은 배려의 음식이다. 동네에서 돼지추렴을 하면 아강발은 젖먹이가 있는 집으로 간다. 먹는 게 부실한 산모를 위한 음식이기 때문이다. 제주의 산모들은 출산을 하고 나서 메밀수제비를 넣은 미역국을 먹는다. 그리고 수유를 하는 동안에는 아강발국을 먹을 수 있었다. 아강발국을 먹으면 모유가 풍부해진다.

경험에 의하면 아강발국 뿐만 아니라 국물음식은 모두 모유 양을 증가 시킨다. 산모가 먹는 음식은 곧 젖이 된다. 그러니까 아강발국은 아기를 위한 거 같지만 실은 산모를 위한 음식이기도 하다. 애를 낳고 키우느라 허할대로 허해진 여인의 몸을 어떻게든 추스려주고 싶은...

제주 여인들에게 양육이나 집안일은 일도 아니다. 애낳고 그 젖먹이를 업고 지고 다니며 밭일, 바다 일을 예사로 해야 했다. 애기는 마른 젖을 물어 보채고, 어디 몸이 몸이겠는가. 대놓고 보양식을 해 먹을 수도 없다. 눈이 몇 갠데 그 좋은 음식을 아낙만 먹을 수 있었을까. 부모와 남편, 아이들을 두고 좋은 음식을 혼자 챙겨먹을 그 배포 또한 가지지 못했다. 그러니까 아강발국은 고기도 아니고 돼지족 쯤이니 맘 편하게 먹으라는 배려까지 담겨있는 것이다.

아강발국은 칼슘과 단백질이 풍부해서 산모나 애기 모두에게 좋은 음식이다. ‘젖먹이’라는 강력한 보호 장치를 하고 먹는, 애기 때문에 산모만 먹어야 하는 약 같은 음식이 아강발국이다. 돼지추렴 끝에 신서란 짚으로 묶은 아강발을 흔들며 건들건들 걷는 남자들은 행복해 보였다. 지금 상상해도 멋지다.’

아강발국은 가난했지만 따뜻했던 제주의 옛 흔적이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을 추억하기에 제주의 아강발국 한사발 어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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