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양희의 수다 in Jeju] 제주 돈가스-제주산 돼지고기 원료로만 만들어 차별화 뚜렷
[류양희의 수다 in Jeju] 제주 돈가스-제주산 돼지고기 원료로만 만들어 차별화 뚜렷
  • 제주=류양희 통신원
  • 승인 2018.12.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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對일본 돼지고기 수출 중단 자리 메운 효자 품목

얼마전 퇴근 후 큰 아이와 영화보러 간 길에 저녁 식사로 돈가스를 먹게됐다. 편식대마왕(?)인 큰아이와 밖에서 밥을 먹으려면 제일 만만한게 돈가스다. 다행이도 극장 바로 옆에 퓨전 일식 유명 프랜차이즈점이 있어 서슴없이 들어갔다. 아이는 치즈돈가스를 시켰고, 난 그날 하필 점심 식사로 돈가스를 먹었기에 다른 메뉴를 시켰다.

오래 기다리지 않아 식사가 나왔다. 워낙 이 프랜차이즈 돈가스를 아주 오래 전부터 믿고 먹었던 곳이라 별 고민하지 않았다. 아이도 “역시 돈가스!”라며 군소리없이 잘 먹었다. 하지만 그 돈가스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젠 제주의 돈가스에 익숙해져버린 내 눈길로서는 거슬리는 게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당장 점심에 먹은 돈가스와 가격 차이는 없는데 품질 수준은 확 차이가 났다. 돈가스를 맛있게 잘하기로 소문난 프랜차이즈였음에도 말이다.

'너무 눈꼴신 제주부심(제주도+자부심)아니냐며, 네가 언제부터 제주에 살았다고 제주사람인양 유난떨고 있느냐'고 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미각하고는 영 동떨어진 식습관을 가진 나에게도 그 차이가 확연히 느껴지는 걸 어찌하겠는가.

제주에선 돈가스도 특별하다. 억지가 아니다. 처음엔 제주의 음식을 소개하는데 있어서 제주의 돈가스 이야기를 쓸까말까 고민을 했다. 제주 뿐만아니라 육지에서도 워낙 흔한 일상의 음식인데, 이것마저 제주음식으로 소개를 한다면 현재 제주에서 먹을 수있는 김치찌개 된장찌개 같은 거의 모든 일상의 음식마저 다 써야하는 것 아닐까 하는 고민도 있었고, 과연 이러한 주장에 동의해주는 이가 몇이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표선 '돈까스가게'의 카레돈가스

제주의 돈가스를 이야기하자면 우선 육지의 돈가스와 뚜렷이 구분되는 분명한 특징이 필요하겠다. 이 대목에서 제주의 돈가스는 얼마 전까지 제주산 돼지고기로 만들었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겠다.

이미 ‘돼지고기이야기’ 편에 언급한 적이 있듯이, 제주는 돼지열병 청정지역을 유지하고자 타지역산 돼지고기 반입을 지난해까지 엄격히 제한해왔다. 돈가스용 가공육이라 하더라도 비가열인 경우에는 타지역산 반입을 금지했으니 사실상 돈가스에 들어가는 돼지고기는 대부분 제주산을 쓸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돈가스집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도 어차피 저렴한 재료를 쓰지못할 바에야 제주산 돼지고기로 만든다는 점을 최대한 부각시켜 아예 돈가스를 고급화시키는 전략으로 나서는 편이 훨씬 유리했을 것이다. 덕분에 냉동분쇄육을 쓰는 일부 분식점을 제외하고 제주에서 돈가스는 ‘수제 등심돈가스’ ‘흑돈 돈가스’등 차별점을 너도나도 내세우고 있다.

육지에서 분식집 돈가스에 익숙했던 나로서는 분쇄육 돈가스와 수제 돈가스의 차이를 별로 생각지 않았다. 경양식집에서나 먹을수 있었던 과거 고급요리에서 이젠 그저 점심 한 끼 때울수 있는 저렴한 메뉴 중 하나로 대중화된지 오래여서 그 수준을 별로 따지지 않은 탓이다.

물론 반대의 경험도 있다. 학창시절 부유한 집(?) 아이들이 가끔씩 도시락 반찬으로 싸오던 돈가스가 주로 김치와 멸치반찬 수준이었던 내게는 부러움의 대상이었고, 겨우 한입 얻어먹은 그 때 그 맛은 무조건 맛있는 반찬이라는 인식을 강하게 남겨 돈가스의 품질을 따질 입장이 못되기도 했다.

그런데 제주에 와서 일주일에 한번 이상 수제돈가스를 먹는 형편에선 이제 냉동분쇄육 돈가스는 집에서 아내가 바쁠 때 아이들 반찬으로 급히 해주는 것 이상으로는 영 못먹겠다. 앞서 말한 유명 퓨전 일식 프랜차이즈에서 큰 아이가 먹은 치즈돈가스는 얇은 분쇄육에 치즈를 넣느라 속이 텅 비다싶은 패티였는데 치즈돈가스의 제조방식상 어쩔수 없었다하더라도 내 눈에는 영 고기에 성의가 없다는 느낌이었다.

제주도는 돈가스의 고급화를 위해 여러 노력을 꾸준히 기울이고 있는 중이다. 제주 재래돼지와 개량종을 조합해 만든 흑돼지 ‘난축맛돈’의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다. 2016년 11월 국립축산과학원 보도자료에 따르면 ‘난축맛돈’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살아있는 돼지 자체(생축)를 특허 등록한 품종이다. 난축맛돈은 고기 색이 붉고 결지방(마블링)이 잘 생겨 맛과 육질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은바 있다. 특히 등심 부위는 색이 붉으면서 근내지방이 우수해 돈가스로 만들면 맛이 뛰어나 시제품 제조업체에 맡겨 시식회도 가진바 있다. 농촌진흥청은 이를 계기로 고급(프리미엄) 돈가스, 뒷다리(후지)를 이용한 돈가스 등 제품 개발을 계속적 추진해 나가고 있다.

이보다 앞서 제주산 돈가스는 돈가스의 원조(元祖)나 다름없는 일본 시장에 진출한 바 있다. 2000년 이후 생육 수출이 중단된 악조건에서 제주산 돈가스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것 뿐만아니라 이후 제주의 주요 효자 수출품목이 됐다.

제주를 여행해보면 알겠지만 제주엔 돈가스집이 많다. 직장인이 선호하는 점심식사 메뉴에 꾸준히 손꼽히는 메뉴라서 육지에서도 돈가스집이 많긴하다. 하지만 제주에선 여기에다가 돼지고기를 워낙 좋아하는 지역적 특성이 더해져 돈가스집이 더 많아지게 되진 않았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물론 여행지에서 아이들의 한 끼를 고민하는 가족동반 여행객들이 제주에서의 돈가스 인기를 한 몫 더한 측면도 있겠다. 어쨌든 이러한 현실을 파악해서인지 제주를 배경으로 했던 tvN ‘신서유기 외전 강식당’의 주요 메뉴중 하나도 돈가스였다. 이름하여 '강호동까스!'

이쯤되면 제주의 음식으로 돈가스를 소개할만도 하지 않을까? 따지고보면 돈가스도 원래 일본 음식은 아니었다. 동북아시아문화학회의 계간 학술저널지 ‘동북아문화연구 제45집(2015)’에 실린 정수현의 논문 ‘한국과 일본의 외래음식 수용과정 연구 - 짜장면과 돈가스를 중심으로’를 보면 외래음식이 일본에서 돈가스로 재탄생하는 과정이 상세히 언급돼있다. 내용을 요약 정리해보면 이렇다.

‘일본에서는 불교부흥에 힘을 쏟았던 텐무(天武)천황이 675년 불교의 교리를 기초로 육식을 금하는 칙서를 발표한 이후 무려 1200년 동안이나 육식을 멀리해왔다. 그러다가 1868년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이후 부국강병을 외치며 서양인에 비해 왜소한 일본인의 체격을 개선하기 위해 1872년 육식금지령을 풀고 적극적으로 육식을 장려하게 된다.

이에 서양요리를 수용하고 일본인의 입맛에 맞는 고기 음식을 개발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먼저 스키야키나 전골 형태의 소고기음식이 등장한다. 서양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일본특유의 굽거나 조리하는 방법을 고기음식에 적용했다. 또한 쇠고기를 생선회같이 얇게 썰었다. 양념도 일본인 입맛에 맞는 간장이나 된장이 쓰였다.

이런 식으로 육식은 일본인의 식단 속으로 스며들게 되었다. 그리고 일본의 음식 혁명이 성공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일등공신은 돈가스이다. 돈가스는 소, 돼지, 닭 따위의 고기를 납작하게 썰거나 다져서 그 위에 빵가루를 묻혀 기름에 튀긴 요리인 커틀릿을 일본사람들이 변형시킨 데서 시작한다. 돈가스는 돼지 돈(豚)에다 커틀릿(cutlet : 얇게 저민 고기)을 합친 말이다. 독일․오스트리아․체코 등지에서 즐겨 먹는 빈式 돼지고기 슈니첼(Wiener Schwein Schnitzel)에 일본식 간장․물엿소스가 곁들여지면서 일본음식이 되었다.

원래의 커틀릿과 비교해 보자면 돈가스는 얇은 소고기나 양고기 대신 두툼한 돼지고기를 사용하고 고운 빵가루 대신 입자가 굵은 빵가루를 입힌다. 이렇게 만든 고기는 버터를 녹인 프라이팬에 굽는 것이 아니라 넉넉한 기름에 부드럽게 튀겨낸다. 기존의 뎀뿌라의 조리법에서 힌트를 얻어 응용한 것이었다. 돈가스는 튀김옷을 입혀 육식의 거부감을 없앴다.

또한 소나 돼지의 안심은 육질이 너무 부드러워 잘 부숴지기 때문에 일본인은 튀김옷을 입혀 안심의 단점을 일거에 해결했다. 완성된 돈가스는 소스에 묻혀 밥과 함께 먹는데 스프나 미소시루(된장국), 양배추 채와 곁들여 먹는다. 양배추는 17세기 후반 서양에서 일본으로 건너온 이후 먹거리와 무관한 관상용으로 쓰이다가 돈가스를 만나면서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양배추는 돈가스의 느끼함을 가시게 하는 데 도움이 됐다. 영국에서 들여온 우스터소스에 간장을 섞어서 일본식 우스터소스로 새롭게 변신시켰다. 변형과 발전을 거듭하던 돈가스는 1929년 어느 음식점에서 지금의 형태로 정착했다.’

제주의 고급 돈가스 전문점에 가보면 이주민 셰프들이 많다. 그들이 제주에 와서 맛좋은 제주산 돼지고기로 자기들의 실력을 최대한 발휘해 다양한 수제돈가스를 내놓으면서 제주의 돈가스는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돈가스가 제주 고유의 음식이 아니라고 해서, 또 그 돈가스를 만들어내는 셰프가 제주사람이 아니라고 해서 현존하는 제주에서의 돈가스들을 무조건 제주음식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제주에선 제사상에 카스테라가 올라간다. 그 정도의 개방성으로 제주는 오늘날의 제주 음식을 발전시켜왔고 계속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제주에 현존하는 수많은 돈가스들이 과연 제주의 음식일까 아닐까? 확실한 것 한가지는 돈가스는 지금 분명 제주에서 새롭게 진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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