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양희의 수다 in Jeju] – 고기국수(2)
[류양희의 수다 in Jeju] – 고기국수(2)
  • 제주=류양희 통신원
  • 승인 2018.11.07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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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국수에서 나는 돼지 잡내는 웬만해선 극복하기 쉽지 않다. 돼지고기를 워낙 좋아하는 제주 사람들에겐 돼지비린내까지도 돼지고기 맛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냄새가 문제되지 않을뿐 아니라 굳이 음식에서 돼지고기 잡내를 없애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대학생때 졸업 여행을 제주도로 왔었는데 그 때 먹은 돼지불고기에서 짙은 돼지비린내를 느끼고 약간 비위가 약간 상했던 적이 있다. 그 때는 그저 식당에서 실수로 잡내를 놓친거였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제주에 내려와 제주 사람들이 가는 식당에 가보니 그 냄새는 아주 일상적이었다.

여러 돼지잡내 중에서 특히 웅취라고 불리는 이 냄새는 수퇘지에게서 난다. 수퇘지보다 암퇘지를 더 선호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축산물품질관리원 자료에 따르면 웅취는 ‘돼지의 대장에서 고섬유질 사료가 미생물에 의해 발효되면서 발생한 스케톨(skatole)과 정소에서 생산되는 호르몬인 안드로겐(Androgen)이 지방에 축적되어 가열시 이들 물질이 휘발되면서 불쾌한 냄새가 나게 된다. 웅취는 지방조직중에 스케톨이 0.2ppm 이상일 때 감지할 수 있으며 남성보다 여성이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다.’

물론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수퇘지는 거세를 하게된다. 그러나 공장식 축산이 아닌데다가 지속적으로 돼지를 번식시켜 나가야 할 제주의 전통 농가에선 당연히 수퇘지를 거세하지 않았다. 그러니 웅취는 당연스럽게 받아들였던 것이다.

심지어 제주사람은 돼지누린내 나는 고기국수 국물에다가 밥까지 말아먹는다. 고기국수에 공기밥만 말면 돼지국밥이 된다. 돼지국밥을 식당에서 주문하면 소면이 들어간 국물을 내오는 경우가 있으니 더더욱 이런 공식이 맞아떨어진다.

원래 돼지국밥은 부산이 제일 유명하다. 그런데 제주사람이 부산의 돼지국밥을 먹어보고선 제주의 고기국수와 부산의 돼지국밥이 무슨 차이냐며 고개를 내저었다는 얘기가 있다. 그런 탓인지 제주에서는 돼지국밥이 아무 거부감없이 원래부터 제주에 있었던 음식인냥 받아들여졌다. 어쩌면 원래부터 돼지국밥은 제주에 당연스레 존재했던 것일수도 있다. 어쨌든 제주에선 돼지국밥이 고기국수의 자매품 정도 된다.

필자가 자주가는 고기국수집 간판. 찾아보면 고수들은 아주 평범한 모습으로 숨어있다.
다만 이 분들의 진가가 빛을 발하지 못하니 언제든 경영난으로 인한 폐의 가능성이 높다는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관광객들에게 맛좋기로 유명한 국수집은 육지사람 취향에 딱 알맞은 고기국수를 제공할뿐만아니라 일체의 돼지 잡내가 없다. 제주의 서쪽 산방산 근처 ‘거멍국수’는 아주 유명하다. 몇 번 가보았지만 워낙 관광객들이 몰려 한참 기다려야 해서 국수 한 그릇 먹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맛은 보장한다.

함덕해수욕장에 있는 ‘춘심이네3호점’도 관광객 취향에 딱 들어맞는다. 원래 춘심이네는 서귀포시 안덕면에 있는 본점에선 갈치조림과 갈치구이를, 제주시 노형동에 있는 2호점에선 성게 전복 돌솥밥을 전문으로 한다. 그러니 춘심이네 고기국수는 3호점에서만 맛볼수 있는데 여기선 고기 비빔국수도 맛볼수 있다.

이 두 곳은 직접 가본 곳이다. 직접 가보지는 못했지만 고기국수로 유명한 곳은 아주 많다. 제주시에 있는 ‘올래국수’는 공항에서도 가까울뿐더러 수요미식회 등 TV에도 수차례 소개된 바 있어서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고기국수의 원조 중 한곳으로 알려진 제주시의 ‘파도식당’은 멸치국수에다가 고기를 올려준다. ‘파도식당’ 인근에는 국수문화거리가 조성돼있어 취향에 따라 골라 들어갈 수 있으니 한번 가볼만하다.

난 표선에서 정말 맛있는 고기국수집을 알아내 단골이됐다. 그런데 이 집은 전혀 알려지지가 않았다. 그 흔한 포털에 단 한번도 소개된 적이 없다. 오히려 생뚱맞게 맛집으로 유명해진 정말 맛없는 국수집이 표선에 있는데 그에 비하면 대조적이기까지 하다.

물론 내가 가는 단골 고기국수 집은 관광객들 시선을 끌만한 요소가 단 하나도 없다. 가게가 깔끔한 것도 아니고 주인 아주머니가 친절한 것도 아니요, 주차시설이 좋은 것도 아니다. 국수를 주문하면 육수를 끓이려 켠 가스냄새가 코를 찌르고 식재료를 넣어둔 냉장고 한 켠에 손님들에게 찬 물을 대접하기 위해 물통을 함께 넣어놓아 물맛이 식재료 냄새와 뒤섞여 아주 불쾌한 맛이 난다. 위생적으로도 지적을 하자면 한도 끝도 없이 트집을 잡을만한 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집을 자주 가서 국수를 먹는 이유는 단 하나, 정말 맛있기 때문이다. 특히 고기국수는 소면이 아닌 중면으로 만드는데 그 면발의 식감이 아주 최고다. 양도 많아서 웬만한 여성은 한 그릇을 다 비우지 못하는데 난 국물 한방울 안남기고 매번 그릇을 싹 비운다. 돼지 잡내도 전혀 안난다. 가격도 착해서, 얼마전 장사가 잘 안된다며 손님을 더 끌어보려고 그나마 가격을 더 낮췄다.

찾아보면 이런 고수들은 곳곳에 아주 평범한 모습으로 숨어있다. 제주에 사니 그런 평범함 속에 뭍혀있는 고수들의 일품요리를 맛볼 수 있어 좋다. 다만 이 분들의 진가가 빛을 발하지 못하니 언제든 경영난으로 인한 폐업의 가능성이 높다는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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