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양희의 수다 in Jeju] – 고기국수(1)
[류양희의 수다 in Jeju] – 고기국수(1)
  • 제주=류양희 통신원
  • 승인 2018.10.22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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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쌀국수를 처음 마주했을 때 무엇보다도 크고 넓적한 고기 한점이 올려져있는게 가장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그 고기 한점을 입에 넣었을 때의 당혹스러움이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는다. 향채(香菜, 고수)의 맛과 향이 너무나 역(逆)했기 때문이다. 향채가 처음은 아니었다. 오래전 중국 여행에서 이미 당혹스러운 맛은 충분히 경험한 바 있다. 그러나 한번 경험했던 고통은 심리적 공포가 더해져 그 다음에 배가(倍加)되는 법이다. 그래서 난 베트남 쌀국수를 아직까지도 입에 대지 않고 있다.

음식에 대한 선입견이 강한 편이라 새 음식을 처음 대할때는 약간의 긴장감이 든다. ‘자라보고 놀란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제주에 내려와 처음 고기국수를 대면하기까지 국수위에 고기가 고명으로 올라간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무척이나 망설여졌다.

그러나 따지고보면 그런 선입견은 잘못 편집된 기억의 편린(片鱗)일 뿐이다. 이미 경기도 파주에서 ‘갈쌈국수’를 먹어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국수를 주문하면 갈비와 쌈이 같이 나와서 ‘갈쌈국수’라고 했다. 물론 고명으로 올려진게 아니라 고기와 국수가 따로 나오기에 국수에 갈비를 얹어 먹든 따로 먹든 그것은 어디까지나 먹는이의 마음이다. 국수는 멸치국수인데 갈비에 국수 면발을 싸서 먹으면 고기를 좋아하는 입장에선 참 맛있다. 그러니 그 때 아무 거부감없이 국수를 잘 먹었던 걸 보면 꼭 고기와 국수의 결합에 부정적 선입견이 있었던 것은 아닌것도 같다.

고기국수는 제주에 처음 내려와 직장 면접을 보고 살림집을 구하러 다닐 때 제일먼저 맛본 제주 음식이었다. 많고 많은 음식들 중에 제일먼저 고기국수를 먹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하룻밤 머물렀던 여관방 바로 옆에 고기국수집이 있어서였다. 게다가 늦은 아침을 대충 때운 후 얼마 안된 점심끼니라 아직 헛배가 불러 점심 역시 대충 때우자는 생각도 있었다.

무슨 쓴 약을 먹으러 가는 것도 아닌데 나는 인터넷에 고기국수의 시식평을 검색해 참 다양한 정보들을 읽고 또 읽었다. 평가는 극과 극, 역시 호불호가 갈렸다. 당연히 맛있다는 평가보다는 입에 맞지 않았다는 이야기에 더 눈이 갔다.

그 내용들은 대개 이런 것들이다. ‘고기 삶은 육수로 만들어 느끼하다’ ‘너무 달착지근한 맛이 싫었다’ ‘돼지 비린내가 난다’ 등등.

차라리 흔하디흔한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이나 한 그릇 먹을까 생각했다. 그러다가 다 큰 어른이 국수 한그릇 두고 대체 뭐하는 짓인가 창피하기도 하거니와, 정말 쓸데 없는데 에너지를 쏟고 앉았다는 생각도 들어 일단 저질러 보기로 했다.

고기국수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라고는 하지만 유명 관광지가 아니라 그리 유명 맛집 같아 보이지는 않은 식당에 들어섰다. 식당 곳곳에 돼지고기 삶은 내가 쩔어있어 예민해질대로 예민해진 코를 자극해왔다. 식당은 이전에 시골다방 자리였는지 국수집 의자와 테이블이 시골 다방에서나 볼 만한 것들이었다. 이래저래 맘에 안드는게 한두가지가 아니었으나 국수 한 그릇 먹기에 뭐그리 유난을 떨까 스스로를 책망하며 눈 딱 감고 주문을 했다.

식당에 손님은 따로 없이 나와 아내, 둘이 전부인데 고기국수 두 그릇 내오기까지 참 오래도 걸렸다. 가뜩이나 더웠던 여름, 주방의 육수 끓는 열기가 훅훅 돼지누린내와 함께 전해져 아무래도 영 마뜩잖았다. 고기국수집 잘못 들어가면 돼지누린내 때문에 역해서 못먹는다고 예전에 신신당부를 들은바 있어서 이렇게 갑작스레 제주에 내려오게 될 줄 알았으면 그 때 고기국수 맛집을 꼭 기억해둘 걸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한참만에 내 온 고기국수 한 그릇. 뭐 특별한 거라곤 국물이 뽀얗다는 것과 고기가 몇 점 올려져 있다는게 전부였다. 크게 한 젓가락 건져 입에 넣었다. 다행히 거부감은 들지 않았다. 첫 느낌은 그저 먹을만하다는 정도.

그렇게 처음 대면한 고기국수는 이제 일상적인 점심식사 메뉴가 될 정도로 정이 붙었다. 그리고 지금은 입에 착착 달라붙는게 아주 맛있다.

제주에서 고기국수는 원래 의례음식이다. 서귀포 지역에서는 아직도 장례식장에 가면 국수가 나온다. 왜 초상집에서 국수를 주게 됐느냐고 상주들에게 물어도 한결같이 잘 모르겠단다. 그저 예전부터 그래왔기에 당연히 국수를 내놓는 것 뿐. 과거엔 제주시 쪽에서도 국수를 내왔는데 이젠 서귀포에서만 전통이 지켜진단다. 보통 육개장이 나오는 육지와 달라 처음엔 신기했는데 육지에서도 결혼 안한 사람에게 ‘언제 국수먹여줄거냐?’고 묻는걸 봐서는 엄밀히말해 그리 새삼스러울 일은 아니다. 다만 육지에서의 잔치국수가 멸치국수를 의미하는반면 제주에서 잔치국수는 고기국수다. 제주사람이 육지에 가서 잔치국수시켰다가 낭패를 봤다는 이야기를 몇 번 들은 적이 있다.

이제와서 다시금 고기국수를 처음 맛본 이들의 평가를 되짚어본다. 일단 느끼하다는 평가가 많은 것은 아무래도 돼지뼈와 고기를 우려낸 육수때문인 듯 싶다. 맑은 국물의 멸치국수에 익숙한 육지사람 입장에선 뽀얗다못해 걸쭉한 느낌마저 있는 고기국수의 국물이 느끼하다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떡국 국물이나 칼국수 육수를 떠올려보면 그리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다. 물론 보통은 소고기나 닭고기 등으로 육수를 내지만 제주의 고기국수는 돼지고기로 육수를 낸다는게 다르다는 정도. 일본의 돈코츠라멘을 먹어본 이들이라면 아주 생소하지 않을 것이다. 요리연구가 백종원 씨도 TV에서 제주의 고기국수를 먹어보고 돈코츠라멘 국물을 떠올렸다는 걸 봐서는 둘의 공통된 맛이 있는 듯 하다.

달착지근한 맛이 싫다는 이도 있다. 이것은 개인의 취향이니 어쩔수 없는 노릇이다. 다만 제주의 음식은 달착지근한 감칠맛이 도는게 특징인데, 이미 언급한 바도 있지만 제주도는 이를 ‘배지근한 맛’이라 부른다. 달착지근한 국물요리는 얼마든지 주변에 많다. 똑같이 달착지근하더라도 느낌의 차이는 있겠으나 은근한 감칠맛이 도는 배지근한 맛은 혀끝의 말초신경을 직접 자극하는 단맛과는 차이가 있어 일식요리의 달착지근한 국물들을 떠올려볼 때 그리 거부감까지 들 정도는 아니다. 게다가 파채나 다대기가 같이 나오기 때문에 느끼함도, 달달함도 취향에 따라 얼마든지 교정 가능하다.

그런데 문제는 돼지누린내 혹은 돼지비린내로 불리는 돼지 잡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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