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양희의 수다 in jeju] 제주순대(수웨)-관혼상제 음식
[류양희의 수다 in jeju] 제주순대(수웨)-관혼상제 음식
  • 제주=류양희 통신원
  • 승인 2018.10.12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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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순대만의 특별한 쓰임

김밥, 떡볶이, 순대를 ‘김·떡·순’으로 애칭할만큼 일반의 지지는 확고하다. 유명 맛칼럼니스트가 ‘떡볶이는 맛없는 음식’이라고 했다가 오히려 ‘미각’을 잃은 것 아니냐고 역풍을 맞았을 정도다. ‘김떡순’은 출출할 때 제일먼저 생각나는 간식의 수준을 넘어, 이제는 바쁜 일상의 도시 혼밥족에겐 가끔 한끼 식사를 대신하는 역할까지 한다.

초등학생 시절 ‘김떡순’은 하교길의 동반자였다. 학교앞 포장마차 노점에선 설거지를 최소화하기 위해 작은 접시에 비닐을 씌워 ‘김떡순’을 팔았다. 그 때 기억으로는 떡볶이 100원어치, 김밥 100원어치, 순대 100원어치면 단짝과 충분히 나눠먹을 양이 되었다. 아무리 싼 가격이라지만 그 당시 초등학생 주머니에 매일같이 그걸 사먹을만한 돈이 있었던건 아니다. 그래도 매번 때마침 같은반이나 아니면 아는 아이가 늘 한녀석이라도 있어 꽤나 인심쓰는 척 부르면 또 못 이긴척 슬쩍 다가가 떡볶이 한 입이나 순대 한 입을 맛보는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한동안 가격은 변치 않아 순대 500원어치나 1000원어치면 비닐이 꽤 묵직하게 담겼다. 어릴적 누나와 난 순대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러던 어느 명절 끝에 친척 어른들로부터 생각지도 않은 거금을 용돈으로 받은 둘은, 서로 5000원씩 투자해 순대 10000원어치를 샀다. 이럴 때 아니면 언제 거금을 만져보겠냐며 그 거금을 투자해 한번 원없이 순대를 먹어 보자는 거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누나는 자린고비에다 구두쇠인데, 그런 누나가 좋아하는 순대 앞에선 과감한 투자를 마다하지 않았다. 당시 순대 10000원 어치는 실로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한말짜리 검은 비닐 한가득은 되는 양이었고, 그걸 썰어주는 아주머니조차 놀랄 정도였다. 그런데 정말 그걸 앉은 자리에서 둘이 다 먹어 치웠다. 그리고는 이후 몇 년동안 난 순대 근처도 못갔다. 너무 질려버린 나머지 순대 특유의 냄새만 맡아도 아주 역하게 느꼈던 것이다. 하지만 몇 년 그랬을뿐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여전히 순대를 잘 먹고 있다.

서울에서 파는 순대는 대부분 ‘당면순대’다. 그래서 원래 순대는 다 그런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투데이코리아 오주한 기자의 ‘<순대> 전통요리에서 국민간식으로’라는 기사를 보니 왜그렇게 당면순대가 흔했는지 그 까닭을 알게 됐다. 순대는 원래 찹쌀 등이 들어가는 고급요리였으나 6.25전쟁 후 당면공장에서 건조 중 떨어진 부스러기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당면순대’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나는 처음 각인된 맛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경계심이 발동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편이다. 당면순대에 이미 각인된 입맛이다보니 오히려 고급 순대를 마주했을 때는 진정한 그 가치를 제대로 알아보지도, 맛보지도 못하는 안타까움이 계속됐다. TV에서만 보았던 먹음직스런 ‘오징어순대’를 정작 눈앞에 마주했을 때가 그러했고, 전주에선 ‘피순대’의 압도적인 비주얼 앞에서 주저주저하다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그나마 병천순대는 당면순대와 많이 비슷해보였지만 그래도 식감이 달라 역시 몇 입 맛보고는 말았다.

순대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왕설래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몽골에서 시작됐다는 설이있다. 우리나라는 그 이전부터도 순대가 있었고 몽골의 순대와는 전혀 다른 형태라는 반론도 많지만 아무래도 고려시대 탐라총관부를 통해 100년 가까이 몽골의 직접 지배를 받았던 제주 순대는 몽골의 영향이 아예 없었다고 할 순 없지않을까 짐작해보게 된다.

제주말로 ‘수웨’라 불리는 제주순대는 다른 지역과는 구별되는 특징이 있고 무엇보다도 쓰임새에 큰 차이가 있다. ‘제주인의 지혜와 맛- 전통향토음식’이란 책에서 언급한 ‘수웨’의 설명에 따르면 ‘수웨는 혼례, 상례 때 먹는 의례음식이다. 수웨는 시대에 따라서 내용물이 조금씩 변했는데 처음에는 메밀가루와 소금으로 만들다가 메밀가루에 보릿가루를 섞어서 만들고 나중에는 메밀가루와 찹쌀밥을 넣어서 만들 뿐만아니라 맛을 내기 위해서 가루 이외에 야채나 당면 등의 여러가지 양념을 첨가한다’

야채나 당면은 최근에 와서야 조금씩 첨가된 것이고 원래는 찹쌀과 메밀을 선지와 섞어서 돼지창자에 넣었다. 그러니 먹어보면 조금 퍽퍽한(?) 느낌이 든다. 미안한 얘기지만 제주순대를 처음 접했을 땐 경계심 때문에라도 더 그랬는지 ‘아주 맛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런 맛없는(?) 순대에 대해 ‘제주의소리’에 실린 ‘[양용진의 제주 맛]제주의 순대-수애’라는 글에는 이런 설명이 실려있다

‘제주의 순대는 일반적인 음식이 아니고 관혼상제를 치루기 위한 목적 때문에 만들어진 음식이기 때문이다. 제주사람들의 잔치는 3일간 이루어지며 특히 상례는 보통 5일장에서 7일장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이 기간 동안 음식이 상하지 않도록 보관하며 손님을 치러내야 했고 특히 고온다습한 여름철에도 그 원칙을 지켜야 했기 때문에 그래서 다양한 채소와 기름진 재료는 사용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말 제주에서 순대는 의례음식이다. 제주에 와서 장례식장도 가봤고 결혼식장도 가봤는데 그때마다 꼭 빠지지않고 순대는 돼지고기 수육 몇 점과, 두부랑 같이 한 접시에 담겨 나왔다. 제주사람들은 이것을 ‘반’이라 부른다. ‘반’이 빠지면 제주 의례음식의 ‘반(半)’은 못먹어 본거란다.

이미 언급한바 있지만 제주는 마을에서 돼지를 잡으면 뭐하나 버릴 것 없이 다 음식으로 활용을 한다. 돗추렴을 통해 돼지고기를 분배받으면 그걸 일단 삶아서 돔베고기(수육)를 만들고 그 국물에 밥을 말아먹으면 돼지국밥이요 그 국물에 면을 삶으면 고기국수가 되는 것이며, 거기에 돼지내장으로 만든 순대를 넣으면 순대국밥이 되고, 또 거기에다가 ‘모자반’을 함께 넣으면 ‘몸국’이 되는 것이다.

가시식당의 순대
가시식당의 순대

제주에서는 원래 몸국이 있어 순대국은 상대적으로 덜 발달했었다 한다. 실제로 표선의 가시식당을 가보면 순대국과 몸국의 차이는 순대가 눈에 보이느냐 아니냐의 차이일뿐 국물맛이나 국물빛이 같다. 만일 여기에다가 면발을 넣으면 어떻게 될까? 이름하여 ‘순대국수’가 되는 것이다. 육지에서는 쉽사리 상상조차 안되는 음식이 제주에선 현실이 된다. 가뜩이나 새로운 음식에 경계심 많은나로서는 아직 여기까지는 도전해보지 못했다. 그러나 웬만한 탕음식에 마무리로 사리를 넣어먹는 평소 식문화를 생각하면 그리 불가능한 음식은 아니겠다 싶다. 경험자들에 따르면 ‘먹을만하다’에서부터 ‘꽤 맛있다’는 이들도 상당수다.

서울에서 순대는 고춧가루를 약간 섞고 후추도 약간 넣은 소금에 보통 찍어먹는데 제주에선 초간장을 찍어먹는다. 같은 짠 맛이 맞긴 한데 처음엔 이것이 약간 어색했다. 이에 대해 위에서 언급한 제주의소리에 실린 글을 살펴보면 이렇다

‘재미있는 것은 지방별로 순대에 곁들여 찍어먹는 것이 달라서 이 또한 지방별 특색이라 하겠는데 이북지방은 새우젓이나 소금에 찍어먹고 중부권에서는 소금에 후추나 깨소금, 고춧가루 등을 섞어 찍어먹으며 호남지방은 새우젓, 영남지방에서는 막장이나 토장을 찍어먹는데 반해 제주도에서는 초간장을 찍어먹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냥 간장도 아니고 초간장에 찍어먹는 이유는 오랜 시간 실온에서 보관했던 순대가 혹시 약간 상하더라도 식초의 살균효과로 배탈이 날 수 있는 우려를 해소하는 제주사람의 지혜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제주의 순대는 사실 향신채를 많이 쓰지 않아서 약간 돼지 냄새가 난다. 그래서 외지인들 중 일부는 맛이 없다고 단적으로 표현한다. 그것은 문화의 차이인데 제주 사람들은 돼지의 부산물에서 돼지의 냄새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을 가진데 반해 수도권 등 대도시 사람들은 음식에서는 맛있는 냄새만 나야한다는 고정적인 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대도시와 지방의 문화의 차이는 그 문화 자체를 즐기려는 마음만 있으면 초월할 수 있을 것이며 그 점이야 말로 진정한 식도락가의 자세일 것이다.’

점점 제주 사람이 돼가는 모양이다. 퍽퍽하고 그리 맛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던 제주의 순대를이젠 거부감이나 경계심없이 익숙하게 먹게 된다. 그래서 요즘엔 순대를 소금에 찍어먹다보면 오히려 간장을 찾게된다.

첫 입맛에 퍽퍽하고 낯설지만 어느순간 나도 모르게 익숙해지는 그 맛! 이주민의 제주살이 적응기와 꼭 닮은 구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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