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양희의 수다 in jeju] 돔베고기-맛있는 기억을 갖는 음식
[류양희의 수다 in jeju] 돔베고기-맛있는 기억을 갖는 음식
  • 제주=류양희 통신원
  • 승인 2018.10.05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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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적인 측면서도 좋은 조리법
◇돔베고기(출처 제주여행정보 앱 ‘제주지니’)

돼지고기 보쌈은 김장날 따로 떼놓은 노란 배추속대와 막 양념에 버무린 새빨간 무채 김치속에 싸서 먹는게 제일 맛있다. 무채를 듬뿍 떠서 배추속대 위에 얹을 때 함께 넣은 생굴이라도 젓가락 끝에 걸려 돼지고기 위에 얹혀지면 행복감은 두 배다. 음식을 가장 맛있게 먹었던 순간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이들이 비오는 날 부침개 타령을 하고 찜질방에서 땀 쭉 빼고 나와서는 얼음 동동 띄운 식혜를 찾는다. 제주의 돔베고기 유래를 살펴보면 딱 그런 이유에서 시작된게 아닐까.

이제 어느정도 알려졌지만 ‘돔베’란 ‘도마’를 일컫는 제주 사투리다. 그러니 돔베고기는 도마위에 썰어놓은 돼지고기 수육을 의미하는데, 제주에서 돔베고기를 주문하면 손님 접대를 위해 작고 예쁘게 별도 제작한 도마 위에 고기를 내온다. 그렇다고 제주 사람들이 다 그렇게 도마째 상위에 올려놓고 먹었다는건 아니다. 돔베고기가 유명해지고 제주에서 돔베모양의 접시위에 놓여진 고기를 먹어보고 나서는 다들 그렇게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

제주에서 마을 행사나 어느 집안 행사로 돼지고기를 분배 받으면 보통은 그걸 삶기부터 한다. 지금이야 돼지고기하면 구이를 제일먼저 떠올리지만 당시엔 돼지고기를 받으면 삶기부터 했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돼지고기를 삶으면서 그 과정을 통해 다양한 음식들이 나왔는지 아니면 다른 많은 음식들을 만들기 위해 활용도를 생각해 돼지고기를 삶기부터 했는지 그건 모르겠다. 하지만 제주의 돼지고기 관련 음식들은 돼지고기를 삶은 육수와 수육을 바탕으로 만들어진게 참 많다.

고기국수만 하더라도 바로 이 돼지고기 삶은 육수에 면을 넣고 그 위에 수육을 고명으로 얹어 만든다. 돼지국밥은 거기에다 밥을 말아먹는 것이고, 접짝뼈국이나 아강발국도 기본적으로 다 삶는 과정을 통해 나온다. 제주 순대나 순대국도 다 마찬가지다.

어쨌든 고기를 받아 제일먼저 삶는 과정을 거쳐,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기를 도마 위에 턱! 건져놓고 뜨거운 고기 후후 불어가며 썰어놓으면 따로 그릇이나 접시에 옮겨담기까지 못 기다리고 엄마 눈치 한번 살피고선 재빨리 손으로 낼름 한 점 집어 입에 넣게된다. 엄마한테 등짝이라도 한 대 맞을까봐 멀찌감치 물러서며 입에서 뜨거워 혀로 몇 번을 굴리며 하! 후! 하고 뜨거운 입김을 내뱉으며 맛보았던 바로 그 맛! 바로 그걸 못잊고 사람들이 ‘도마에서 썰어먹었던 그 맛있던 고기’를 ‘돔베고기’라 부르며 기억하는 거다.

사람들마다 선호하는 바가 다 다르겠지만 구이와 수육 중 택하라고 하면 아마도 대부분 구이를 택하지 않을까? 샤브샤브같은 경우 ‘물에 빠진 고기’라며 무척이나 싫어하는 이도 있다. 주위에 물어보니 수육보다 구이를 선호하는 이들이 훨씬 더 많다. 물론 고기라면 그 어떠한 것도 마다하지 않는 나 역시 굳이 선호를 따진다면 수육보다는 구이다. 하지만 수육을 맛있게 먹었던 기억은 구이를 맛있게 먹었던 기억과 굳이 우열을 나누지 않는다. 구이는 구이대로, 수육은 수육대로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는 것이다.

‘제주인의 지혜와 맛-전통향토음식’이란 책에도 ‘육류 요리방법 중에서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방법은 직화구이’라면서 ‘물에 삶아낸 육류는 구이보다 기호성이 떨어진다’고 언급돼있긴 하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제주의 ‘돗궤기적갈(돼지고기 누름적)’이 수육의 취약한 기호성을 보완해 줄 수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돗궤기적갈은 ‘돼지고기를 먼저 물에 삶기 때문에 어느정도 지방이 빠져나가고, 양념을하여 다시 팬에 구우므로 굽는 동안 방향 성분이 생기면서 직화구이의 특성이 살아난다’고 한다.

그러나 기호를 떠나 건강을 생각한다면 단연 구이보다는 수육이다.

‘일본의 오키나와에는 장수자가 많기로 유명한데, 그들의 식생활을 보면 돼지고기가 늘 식탁에 오르고 조리법 또한 삶는 것이다. 돼지고기는 포화지방 함량이 많은 육류이지만 소고기에 비해 포화지방이 상대적으로 적고, 삶는 조리에 의해 포화지방이 많이 제거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포화지방 섭취를 줄일 수 있고 채소나 콩 등의 음식을 통해 항산화 영양소를 함께 먹는다면 장수 노인들에게 이로운 식품이 될 수도 있다. 또 돼지고기는 소고기보다 10배나 많은 비타민 B1을 가지고 있는데, 비타민 B1은 탄수화물의 대사를 돕는다. 돼지고기나 소고기를 불에 굽거나 튀기는 것처럼 높은 온도에서 조리하면 발암 물질이 생길 가능성이 높지만, 삶는 조리법은 고기의 포화지방의 섭취를 줄여주며 발암 인자의 생성도 억제하는 좋은 조리법이다(‘제주인의 지혜와 맛- 전통향토음식’ p56)’

구이는 바로 먹을수 있지만 수육은 오랜 시간 정성을 필요로 한다. 굳이 구분하자면 구이는 패스트푸드지만 수육은 슬로우푸드다. 구이는 그 단계로 끝나버리지만 수육은 그 과정을 통해 다른 많은 요리를 만들어낸다. 구이는 맛의 깊이가 없지만 수육은 맛의 깊이가 있다. 그래서인지 구이는 여운이 없지만 수육은 여운이 남는다.

기다림과 간절함 끝에 맛보는 그 맛! 그것은 결코 잊을수 없는 기쁨이요 추억이 된다는 걸 돔베고기 한점이 말해주고 있다면 너무 지나친 돔베고기 예찬일까? 아무래도 오늘 저녁에는 꼭 보쌈하나를 배달이라도 시켜 먹어야겠다. 배달음식을 기다리는 것 역시 나에게는 너무 간절한 기다림이긴 하다. 우리 동네엔 ‘바비큐보쌈’이 있다는건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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