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양희의 수다 in Jeju] 두루치기-고기보다 무채·콩나물 등 부재료가 일품
[류양희의 수다 in Jeju] 두루치기-고기보다 무채·콩나물 등 부재료가 일품
  • 제주=류양희 통신원
  • 승인 2018.09.18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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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촌마을·가시·용이, 식당마다 약간씩 맛 달라 다양성 재미도

◇ 제주의 전통 두루치기(출처 ‘전통향토음식-제주인의 지혜와 맛’)

다시 말하지만, ‘돼지고기는 맛있다’. 삼겹살구이도 좋지만 고추장돼지불고기도 참 맛있다. 특히나 어머니가 해주던 고추장돼지불고기는 일품이다. 저녁식사를 앞두고 배고픔이 극에 달할 때 부엌으로부터 솔솔 들어오는 얼큰한 냄새가 강렬하게 콧속을 자극하고, 보글보글 맛있게 익어가는 소리마저 들리기까지 하면 당최 밥먹기전 한 젓가락질을 안할 수가 없다. 

그렇게 일단 입 맛을 보면 그 다음부터는 정말 걷잡을 수 없게 된다. 다른 반찬 꺼낼 필요도 없다. 김치 하나 꺼내놓으면 더할 나위가 없지만 고추장돼지불고기가 얼큰하니 굳이 없어도 괜찮다. 바로 식구들 밥을 자진해서 다 퍼 놓고 수저도 세팅 완료, 그래놓고는 바로 밥 한 움큼과 고기 한 점을 입에 넣어야 비로소 급한 식욕을 겨우 진정시킬 수 있게 된다. 그런 날은 당연히 밥 두 그릇이다.

◇ 제육볶음-제주시 조천읍 ‘낭뜰에쉼팡’

외식이 별로 없었던 어린 시절, 외식같은 특별식으로 먹던 어머니의 이 고추장돼지불고기가 일반 식당에서 ‘제육볶음’이라는 메뉴로 팔리고 있다는 걸 안 것은 성인이 다돼서다. 가정식 반찬이 본격적으로 식당에 메뉴로 자리잡은 것도 그 때를 전후해서이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내용물은 비슷한데 이름이 각기 다른 유사 메뉴가 한동안 나를 혼란하게 했다. 주물럭, 두루치기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하지만 이제 제주에 와서 두루치기는 확실히 구분할 수 있게 됐다.

제육볶음이나 주물럭이나 두루치기가 혼용되는 탓도 있지만, 어차피 다 조리돼 입안으로 들어가는 상태나 맛은 비슷비슷하기에 나로서는 굳이 그 구분에 별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와 인터넷 자료들을 살펴본 결과 이제 이 셋을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게 됐다.

주물럭은 원래가 직화구이가 특징이라고 한다. 물론 지금은 꼭 직화구이를 하지 않으면서도 주물럭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원칙적으로 말하자면 그렇단다. 주물럭은 말그대로 손으로 주물주물해서 양념이 잘 배도록 하는게 특징인데 제육볶음 양념할 때도 어느 정도 그 과정을 겪기에 큰 특징이라 구분짓기는 어렵다.

두루치기는 고기 외에 다른 재료들이 제육볶음이나 주물럭에 비해 많이 들어간다. 육지의 두루치기는 제육볶음에 가까운데 비해 제주의 두루치기는 무채나 콩나물 등의 다른 재료들이 더 두드러진다.

2012년 제주특별자치도에서 펴낸 ‘전통향토음식-제주인의 지혜와 맛’이란 책에서 제주의 두루치기에 대한 설명을 살펴보면 기존에 알고 있던 두루치기와 차이가 많이 난다. 이 책에서 언급한 제주의 두루치기 유래는 ‘제사나 명절이 지난 후 먹다 남은 적갈(적), 나물, 전 등을 넣고 청장(맑은간장), 후추, 참기름에 조려 밑반찬으로 먹었다’고 돼있다. 여기서 ‘적갈’은 돼지고기누름적으로 제주에선 ‘돗궤기 적갈’로 불렸다한다.

유래에 대해서는 다소 이견이 있긴 하지만 남은 제사음식을 한데 섞어 비벼먹은 경남 진주와 경북 안동 등지의 ‘헛제사밥’과 기능 면에서 흡사해 보인다. 제주의 전통 ‘두루치기’나 육지의 ‘헛제사밥’이나 고추장으로 양념을 한 것은 훨씬 나중의 일이고, 원래는 간장으로 양념을 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도 훨씬 늦게 고추가 보편화된데다 제주에선 고추농사가 활발했던 반면 병충해 영향으로 고춧가루를 얻는 과정이 쉽지 않았던 영향이 아닐까 싶다. 물론 현재 제주의 두루치기는 옛 전통 두루치기와는 달리 고추양념의 붉은색이 기본 바탕이다.

◇ 향촌마을식당의 두루치기(출처:제주여행정보 앱 ‘제주지니’)

표선 가시리 향촌마을 식당에서 두루치기를 시키면 솥뚜껑을 뒤집어 놓은 듯한, 가운데가 움푹 들어간 불판에 양념이 전혀 안된 돼지고기 삼겹살이 나온다. 이 과정을 잘 모르는 사람은 그저 불판에 고기를 구워 먹는 것인 줄 잘못 알고 고기를 먼저 구워 홀랑 다 먹어버리면 그야말로 낭패다.

불판에 고기를 펼쳐 놓고 어느 정도 익으면 삼겹살의 육즙과 기름이 흘러나와 불판의 움푹들어간 곳에 고이게 된다. 여기에 양념이 된 콩나물, 깻잎 등을 얹는다. 이 때 반찬으로 나온 무생채나 버섯을 개인 취향에 따라 섞어도 좋다. 그런 다음 어느 정도 익으면 고기와 함께 곁들여 상추에 함께 싸서 먹으면 된다.

◇ 가시식당의 두루치기(photo by 변재연)

인근에 가시식당 두루치기도 유명하다. 가시식당엔 고기가 양념이 되어 나오는게 향촌마을과는 다르고 고기도 주물럭에 가까워 찾는 손님이 많다.

제주에서 두루치기로 빼놓을수 없는 곳이 서귀포의 ‘용이식당’이다. 향촌마을식당이나 가시식당과는달리 용이식당은 관광객들에게도 꽤 알려진 식당이다. 용이식당에서는 고추장 양념이 된 고기가 나오고 그것이 어느 정도 익으면 그 위에 양념된 파채 등을 얹어 먹으면 된다.

두루치기는 식당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고기의 식감을 느끼고 싶으면 용이식당보다는 가시식당이 훨씬 낫다. 용이식당은 채소양념과 새콤달콤한 맛을 즐기기에 좋다. 그렇다보니 고기가 다 익으면 양념과 섞여 고기가 좀 작다는 느낌이 든다.

고기의 식감도 즐기면서 버무린 채소 양념과 각종 반찬도 즐기려면 향촌마을식당이 좋다. 향촌마을 반찬들은 두루치기 맛을 한결 더 돋워준다. 가시식당에서는 몸국이 함께 나와 제주음식을 맛보고 싶은 이들에겐 또다른 즐거움이다.

제주시 쪽에도 두루치기를 하는 곳은 많다. 다만 제주시에서 두루치기를 먹어본 경험이 개인적으로 많지 않아 추천을 못하는 것일 뿐. 식당마다 두루치기는 약간씩 다르다. 그런 다양성이 제주의 두루치기를 더욱 맛나게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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