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양희의 수다 in jeju] 돼지고기 이야기(5)- 육즙 손실 줄이면서 맛있게 굽는 법?
[류양희의 수다 in jeju] 돼지고기 이야기(5)- 육즙 손실 줄이면서 맛있게 굽는 법?
  • 제주=류양희 통신원
  • 승인 2018.09.13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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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지만 제주의 돼지고기는 맛있다. 그러나 재료가 훌륭하다는 것은 맛있는 요리의 필요조건이긴 해도 충분조건은 아니다. 좋은 식재료를 갖고도 얼마든지 맛없게 요리할 수 있다. 반면 그리 좋은 식재료는 아니나 요리과정에서 얼마든지 원재료의 부족함을 만회할 수도 있다. 그런데 특별한 요리법없이 그저 불에 굽기만하는 삼겹살 구이가 나는 어렵다.

보통 고기먹는 자리에 가게 되면 어느 순간 나는 늘 고기를 굽고 있다. 20대 때는 함께 놀던 무리중 막내라 당연스레 선배들을 위해 고기를 구웠다. 30대 때는 직장의 막내여서 굽게되거나 아니면 선배가 돼서 후배들에게 겸손의 솔선수범을 보이기 위해 고기를 구웠다. 40대 들어서니 그동안 고기 구운 경험이 얼마냐며 또 맛있게 구워달라고 내게 불판과 고기집게를 맡긴다.

물론 집에서도 중전마마 한 분과 상전(자식은 늘 상전이다) 두 분을 모시고 사는 처지로 ‘평소 할 줄 아는 요리가 없으면 이럴 때 고기라도 구우라’며 또 내 몫이 된다.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가 아니라 ‘인생은 쓰나 고기는 달다(?)’ 아니, ‘숯불연기는 매우나 그 열매는 달다’ 뭐, 그런 싱거운 응용문구로 심경을 표현해본다.

문제는, 도무지 고기를 어떻게 구워야 할 지를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만한 경험이면 이젠 제법 잘 구울때도 됐건만 아직도 고기 잘 굽는 방법을 모르겠다. 삼겹살이 적당한 두께가 있어 불판에 굽다보면 겉은 타들어가는데 속은 아직 덜 익는다. 속이 좀 덜 익더라도 겉이 잘 익어 내놓으면 ‘돼지고기는 바싹 익혀먹어야 한다’며 바로 컴플레인(complain)이 들어온다. 그렇다고 더 놓아두자니 어느새 겉은 새까맣게 타들어가거나 딱딱한 스낵(?)이 된다. 그러면 또 발암물질이 어떻대나 뭐래나. 이 딜레마를 과연 어찌 극복해야 할까.

제주의 ‘근고기’ 앞에선 더더욱 좌절이다. 삼겹살 두께가 1mm, 3mm, 5mm, 7mm 등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고 어떤 식당 이름에 ‘1357’이란 숫자를 넣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마도 보통 즐기는 삼겹살 두께가 그 정도쯤 되는 모양이다. 그런데 제주 근고기는 두께 단위부터가 차원이 다르다. 최소 2cm에서 4cm, 또는 6cm이상인 경우도 있다.

근고기란 고기 한 근(600g)을 덩어리째 굽는데서 비롯됐다한다. 예전에는 지금처럼 고기를 얇게 썰 수 있는 슬라이서(slicer)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당연히 고기를 덩어리째 뚝뚝 잘라서 나누었을 것이다. 그렇게 덩어리 고기를 구웠을 때의 맛을 잊지 못해 계속 습관이 그대로 남은 것일 듯하다.

돼지고기를 맛있게 굽는다는 것은 어떻게 육즙을 적절하게 보존하느냐에 달렸다고 많은이들이 공통되게 이야기한다. 제주의 근고기는 바로 육즙 손실을 최소화 한다는데 장점이 있다.

◇삼겹살을 불판에 굽다보면 겉은 타는데 속은 덜 익는다.
특별한 요리법 없이 그저 불에 굽기만하는 삼겹살구이가
그래서 나는 어렵다.

삼겹살 맛있게 굽는 법에 대해 한국일보 ‘카드뉴스-삼겹살은 참아야 맛있다?’에 보면 육즙은 40~45℃, 70~75℃ 사이에서 두차례 발생하기 때문에 육즙 손실을 줄이려면 불판이 충분히 달궈졌을 때 고기를 올려야 한다. 그런데 고기를 자르는데 있어서도 자르는 과정에서의 육즙 손실을 막기 위해 최대한 뒤로 미룰 것을 권했다. 그렇다면 덩어리인 근고기는 당연히 육즙 손실 방지엔 최적의 상태인 것이다.

다만 근고기는 기존 ‘삼겹살 맛있게 굽는 법’의 공식을 따를 수가 없다. 불판이 충분히 달궈졌을 때 고기를 올리라고 했지만 실제로 그렇게하면 근고기는 속은 익지 않은채 겉만 바로 타버린다. 근고기는 은근한 불에 오래 구워야 하는데 그래서 ‘연탄구이’가 인기가 있는 것 같다.

근고기는 은근한 불에 익은 겉부분부터 잘라 먹기 시작한다. 물론 그럼에도 겉이 타들어가는 것은 잘 해결이 안된다. 그래서 식당에 가보면 보통 근고기는 초벌구이가 돼서 나오기도 하고 아예 ‘참숯 초벌구이’식으로 초벌구이를 강조해 내세우는 식당들이 있기도 한다.

그러니 만일 근고기를 집에서 팬에 구워먹는다면 적어도 별다섯개 정도의 기술력이 필요하다. 근고기는 안해봤지만 두꺼운 목살의 경우, 하다하다 안돼 전자렌지에 초벌로 돌려 다시 팬에 굽는 만행(?)을 저질러 보기도 했다. 생각보다 괜찮은 방법이었는데 전자렌지 안 쪽이 돼지기름에 엉망이 되는 것은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한다.

아내는 '다시는(!) 그런 시도를 하지 말라'고 엄중 경고했다. 맛있는 삼겹살을 먹는것도 좋지만 그걸 전자렌지에 넣었다가 다시 꺼내서 또 굽고, 전자렌지 안에 기름 닦아내는 등의 그 모든 과정이 너무 번거롭긴 하다.

만일 번거로움이 괜찮다면 돼지고기를 굽기 전 초벌로 한번 삶아, 그걸 다시 구워보는 만행도 저질러보고 싶다. 속은 안익고 겉만 타버리니 별의별 생각을 다해보는 것이다. 흑돼지가 진짜냐 가짜냐, 맛좋은 고기가 어떤 것이냐 따지면서 정작 구워 먹을 땐 난 늘 이러고 있다. 어쩌면 맛좋은 고급육은 내게 사치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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