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양희의 수다 in Jeju]- '定食'을 정식으로 소개합니다(1)
[류양희의 수다 in Jeju]- '定食'을 정식으로 소개합니다(1)
  • 제주=류양희 통신원
  • 승인 2018.07.06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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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0년이 다 된 이야기다. 전북 군산으로 차를 이용해 병문안 갔는데 일행들 모두가 경황없이 내려온 길이라 저녁식사를 걸렀다. 아픈 이로 인해 모두 마음이 무거워 밥생각도 제대로 나지 않았고, 장시간 차로 이동해 소화도 잘 안되는 것 같아 저녁을 굶을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대충이라도 끼니를 때우자며 병원 구내식당으로 내려갔다. 이것저것 메뉴를 고르기도 귀찮았는데 적당한 메뉴라고는 ‘백반’밖에 없어서 그걸 주문했다.

그런데 주문을 받는 분이 꽤나 난감해하는 눈치였다. 그는 늦은 시간이라 반찬이 떨어진 게 많아 제대로 백반이 나오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분의 염려와는 달리 우리는 병원 식당밥이라 애초부터 큰 기대가 없었다. 우리는 괜찮으니 있는 반찬으로 대충 달라고 했다. 하지만 웬걸. 조금 후에 나온 백반 상차림은 반찬만 얼핏 서른 가지가 넘었다. 반찬을 일일이 다 기억할 수는 없지만 서른 가지가 넘었다는 숫자 개념은 그때 받은 문화 충격이 너무 커서 실제 세어봤기 때문이다.

서울에서만 자란 나로서는 식당에 가봤자 기껏해야 시큼한 단무지에 깍두기 정도가 경험의 전부인데 눈앞에 펼쳐진 한상 차림에 입이 떡 벌어졌다. 그 때 백반값이 3000원이었다는 것은 정확하게 기억한다. 이런 기억 역시 내가 “이건 3000원이 아니라 4000원이야! 반찬 아까워 꼭 공기밥 한그릇 더 시켜야 하거든!”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잊지 못한다. 그럼에도 주인은 연신 우리 일행에 미안해했다.

이튿날 점심은 병원 뒤 다른 식당으로 갔는데 그 집은 백반이 4000원이었다. 그런데 반찬이 무려 40여가지였다. 그 집에서도 역시 공기밥 추가는 당연한 일이었다. 이러니 당최 지방에 살던 사람들이 서울오면 정말 먹을만한 게 없다고 하는 것 같다.

세월은 지났고 물가는 올랐다. 아마 지금 군산에 가서 예전의 그 정도 식사를 하려면 3000원으로는 안될 게 분명하다. 그걸 감안하고 제주에서 식당밥을 먹어보니 군산 다음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이런 어림은 틀렸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편찬한 향토문화전자대전의 ‘제주의 식생활’ 설명에 따르면 제주의 음식은 무려 470여 품수에 이르러 전주 지방 280품, 오끼나와 150품에 비해 월등히 많다.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우리나라 대표적인 한식으로 유명한 호남 지역보다도 제주가 훨씬 더 잘 먹는 지역임이 분명하다.

제주에서 첫 출근하던 날, 점심식사는 선택권없이 그저 따라간 허름한 식당에서 정식을 먹었다. 보통 집밥처럼 밥과 국, 여러 반찬이 나오는걸 ‘백반정식(白飯定食)’이라하고 서울에선 그걸 줄여 ‘백반’이라 하는데 제주에선 ‘정식’이라 불렀다.

물론 제주에서만 ‘정식’이라는 말을 쓰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서울에서는 ‘백반’이라 부르고 왜 제주에서는 ‘정식’이라고 부를까하는 괜한 궁금증이 생겼다. 이에 대해 ‘제주의 식생활’ 설명을 훑어보니 ‘미식 문화권인 본토는 입식의 쌀밥 문화가 주를 이루나, 제주는 조, 메밀, 콩 등의 잡곡 가루를 이용한 분식 문화권의 성격이 강하다. 범벅, 수제비, 개역, 칼국수, 발효찐빵(상애떡), 잡곡떡, 고구마떡, 메밀가루 국 등은 분식 문화가 발달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음식들’이라 언급돼있다.

◇제주 풍경중 청보리밭 풍경을 빼놓을수 없다. 왜그렇게 보리를 많이 키우나했더니 화산지형이라 논이 드문 이곳에선 예전에 쌀이 주식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고보니 제주에 와서 그 흔하디 흔한 논을 본 기억이 없다. 물빠짐이 좋은 화산지형과 지질 특성상 제주에서 논농사가 어렵다는 것쯤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다고 제주에서 벼농사를 아예 안짓는 것은 아니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서귀포시 호근동 쯤에 ‘하논’이 있다고는 들었다.

제주국제대학교 토목공학과 고병련 교수가 제주언론 ‘제주의소리’에 ‘하논’에 대해 설명한 바에 따르면 500년 전까지만 해도 하논은 직경이 1km가 넘는 큰 호수였다. 원래는 가운데 서너 개의 섬들이 떠있는 울창한 원시림에 둘러싸인 화구호였으나 식량 사정이 어려워지자 화구호의 벽을 허물고 논을 만들기 시작했을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논은 여전히 제주에서는 희귀하다. ‘산듸’라고 해서 밭벼를 재배하는 곳도 한경면이나 몇 군데 더 있다는 것도 들었다. 그러나 역시 제주에서 흰쌀밥은 제사같은 특별한 날에만 먹는 ‘곤밥(고운밥)’이었고 보통은 조나 보리, 그도아니면 고구마같은 것이 주식이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니 제주의 풍경중 청보리밭 풍경이 유명한데 왜그렇게 보리를 많이 키우나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어쨌든 이러저러한 이유로 백반 정식에서 밥이 백반이 아닐수 있으니 이를 생략하고 뒤엣것만 가져다 ‘정식’이라고 쓰기 시작하지 않았을까. 물론 지금은 백반이 나오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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