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화만 북돋운 진성푸드 사과문이 주는 교훈
[데스크칼럼] 화만 북돋운 진성푸드 사과문이 주는 교훈
  • 김현옥 편집국장
  • 승인 2021.11.0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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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옥 편집국장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할 땐 상대가 그 진정성을 느껴야 한다.

사람들은 시비를 가리는 과정에서 잘못이 명백하게 드러났을 때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며 사과한다. 그러나 그 말투와 행동에 따라서 듣는 이의 감정이 풀리기도 하지만 화가 더 치밀어 폭발하기도 한다. 똑같은 말이라도 그 속에 담긴 마음의 상태, 즉 진정성 여부에 따라 이후의 상황이 확연히 달라지는 것이다.

최근 벌레가 우글거리는 비위생적 환경에서 ’순대’를 제조한 것으로 밝혀져 사회적 물의를 빚고 있는 진성푸드 박진덕 회장의 사과문은 차라리 하지 않은 것보다 못한, 후자의 나쁜 사례에 속한다.

그의 사과문에는 여전히 문제를 고발한 전 직원을 탓하는 원망이 그대로 서려 있다. “퇴사 당한 직원이 앙심을 품고 악의적인 제보를 했다 하더라도...무릎 꿇고 이해와 용서를 구합니다. 정말 죽고 싶은, 부끄럽고 참담한 심정으로 깊이 사죄드립니다”

하루 전, ‘방송사가 사실이 아니고 확인되지 않은 정보로 진성푸드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켰다’며 결백을 주장한 안내문과는 사뭇 다른 태도로 보이지만 ‘전 직원의 악의적 목적’ 때문에 자신이 죽고 싶을 만큼 창피해서 억울하다고 항변하는 듯한 뉘앙스다.

이를 접한 누리꾼들은 한결같이 ‘말이야 방구야’라는 반응으로 펄쩍 뛰고 있다. 보도 영상에 비친 비위생 상태가 하루 이틀 만에 발생하는 것도 아닐 텐데, 모두를 위해 제보한 선행을 여전히 악의적 행동으로 몰아붙이고 있는 데 대해 ‘아직도 정신 못 차렸다’는 비난이 빗발치고 있다.

'고발하지 않았으면 (지저분한 상태가)계속 됐을 것 아닌가', '퇴직한 직원이 악의적인 제보를 했더라도 사과문에 이런 핑계가 있으면 진심이 아니다', '마음에 와닿지도 않는 사과문에서 더 이상 발전을 기대하기 힘들다', '오너 마인드가 이 정도라면 차라리 폐업하는 게 낫다'는 등의 댓글에서 그들의 분노가 얼마나 큰 지를 읽을 수 있다.

박 회장은 지저분한 공장 내부 영상이 폭로되자 반성은커녕 회사의 잘못이 전혀 없는데도 퇴사 당한 직원이 화풀이로 해를 끼치기 위해 자작극이라도 벌인 것처럼 호도했다. 그리고 이를 보도한 방송사와 제보자를 상대로 법적 소송을 벌이겠다고 으름장까지 놓았다.

그러나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이틀에 걸친 집중 조사로 제보 내용이 사실로 드러났고, 그에 대한 행정처분과 경찰 수사로 이어지자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백기를 들었다.

당국의 조사 결과도 그렇지만, 사건 발생 후 대형 유통점을 비롯해 전국 규모의 수많은 거래처들이 이 회사 제품을 거부한 충격 때문에 객기를 접었을 것이란 해석이 무게를 더한다. 박 회장의 표현대로 죽을만한 상황으로 내몰리자 어쩔 수 없이 굴복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따라서 사과문에 진실성이 담겨 있을 리 없다는 것이다.

모름지기 진정한 사과는 세가지 필수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 무조건 토를 달지 말아야 하고, 둘째, 눈치를 살피며 지체하는 일이 없어야 하며, 셋째, 남탓이 아닌 오롯이 자신의 책임임을 통감해야 한다. 그러나 진성푸드 박 회장의 사과는 이 세가지 조건 중 어느 것 하나도 충족시키지 못했다.

이러한 식품기업의 비윤리적 태도는 비단 진성푸드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대기업인 SPC그룹의 던킨도너츠도 이번 사태처럼 퇴사한 직원의 내부 고발로 세상에 알려졌고 이 회사 역시 자성보다는 직원탓으로 돌리다 여론의 뭇매를 맞은 적이 있어 마치 데자뷔를 보는 듯 하다. 

어느 기업이든, 무슨 일이든 완벽할 수 없기 때문에 실수나 잘못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가 밝혀졌을 때 그것을 어떻게 슬기롭게 헤쳐나가는 가가 그 기업의 경쟁력이고 잠재력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2008년 식중독 사건으로 수많은 인명 피해를 일으키고도 1년만에 회사를 원상복구시킨 캐나다 메이플리프푸드(Maple Leaf Foods)의 마이클 맥케인 CEO의 대처 능력을 본받을 필요가 있다.

맥케인은 리스테리아균이 검출된 자사 육류제품을 먹고 수십 명이 사망하고 병원에 실려 가는 사태가 발생하자 즉각 리콜 조치에 들어가는 한편 비싼 TV광고 시간을 사서 직접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보상금을 지급하는 것은 물론 홈페이지에 사건 정보를 꾸준히 업데이트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정부에 식품회사의 안전기준을 더 높여달라고 로비를 벌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맥케인의 이러한 진정성과 결단력 있는 대처는 소비자들로부터 두터운 신뢰를 얻어 무려 120억 원의 손실이 발생하고 매출이 30% 이상 뚝 떨어지는 위기 상황을 완전히 뒤집어 놓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맥케인의 교훈은 우리 식품기업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식품사업은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분야인만큼 어떠한 상황에서도 소비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설령 실수로 안전 문제가 발생했을 지라도 이를 숨기거나 변명하지 말고, 즉각 시인하고 투명하게 공개해서 성심을 다해 해결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사과의 표현도 '미안하다(sorry)'가 아닌 '나의 잘못이다(I was wrong)'고 해야만 진정한 의미로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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