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양희의 수다 in Jeju]-탐나는 간식(1)-'제주의맛' 빙떡
[류양희의 수다 in Jeju]-탐나는 간식(1)-'제주의맛' 빙떡
  • 제주=류양희 통신원
  • 승인 2021.10.12 13: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메밀전병에 무채나물을 소로 넣어 만든 납작만두 모양 떡
양념 최소화로 원재료에 충실한 심심한 제주맛 그 자체
관혼상제 대소사나 명절 등 귀한 자리에 빠져서는 안돼
자반 생선이나 옥돔 한 점 얹으면 독특하고 매력적인 맛

ㅂ얼마 전 “여행의 절반은 먹는 것”이란 말에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다. 앞뒤를 다 자르고 말만 놓고 보자면 사실 맞는 말이다. 제주 여행도 풍경 감상이 우선이지만 이미 수차례 제주를 방문한 이들에게는 더이상 제주의 풍경이 새로울 것도 없을 듯 하다. ‘금강산도 식후경’인데 제주도도 이젠 식후경이다.

여행에서 밥만 먹는 것은 아니다. 지치고 힘든 여행길에 잠시 앉아 쉬면서 음료도 마시고 간식도 먹는다. 그동안 이 코너를 통해 음료 이야기를 길게 풀었으니 이젠 간식을 들여다 볼 차례다.

제주의 간식은 주로 떡과 과자 등의 전통적인 먹을거리도 있고 여행객들의 세련된 도시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요즘 막 새롭게 등장한 것들도 있다. 그때그때 떠오르는 간식들을 순서없이 랜덤으로 소개해보려고 하는데 그래도 처음 말문을 열만한 게 뭐가 있을까 하다가 아무래도 이것이 가장 제주의 전통맛 아니겠나 싶다.

빙떡이 납작만두인 줄로만 알았다.(출처_비짓제주 제주토속몸국 홍보사진)
빙떡이 납작만두인 줄로만 알았다.(출처_비짓제주 제주토속몸국 홍보사진)

그것은 바로 '빙떡'이다. 처음 빙떡을 어디서 맛보았는지는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아마도 제주의 결혼식 피로연 아니면 명절 직후 단골 식당에서였을 것이다. 잘 기억은 안나지만 두 자리 모두 육지 사람이 빙떡을 어떻게 맛보나 집중적인 시선을 받았던 것만은 확실하다.

사실 그 때 나는 빙떡이 납작만두인 줄로만 알았다. 머릿속에 납작만두 만두소의 맛을 기대하고 한 입 베어물었는데, 아뿔싸... 맛이 없다!

“맛이 없다”라는건 말 그대로 아무 맛이 없다는 것이다. 무채나물을 메밀전병으로 둘러싼 게 빙떡이다. 메밀전병도 아무 맛이 없는데다가 무채나물도 아무 맛이 없다. 물론 무채나물이나 메밀반죽에 살짝 간을 한다. 또 잘보면 무채나물에 파도 들었고 깨소금도 살짝 들었다. 하지만 감칠맛 도는 만두소가 들은 납작만두인 줄로만 알고 베어문 빙떡은 정말 당혹스럽기 그지 없었다. 그 광경을 지켜본 제주 사람들이 물었다. “어때, 맛이 없지?”

심심한 맛, 이것이 바로 제주의 대표적인 맛이다. 누차 얘기해왔지만 양념을 최소화하고 원재료의 맛에 충실한 맛, 그것이 바로 제주의 진정한 맛이다.

그렇다면 제주 사람들은 ‘빙떡’을 어떻게 여기고 있을까? 잔치나 명절 때 빙떡이 없으면 안된다. 직접 목격한 바로는 명절을 앞두고 제주에서 가장 큰 시장인 동문시장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빙떡을 쌓아놓고 파는데 또 그걸 사려고 길게 늘어선 줄을 본 적이 있다. 믿기 어렵겠지만 제주 사람들은 ‘빙떡’을 생각하면 입에 침이 고인단다. '레알(real)'이다.

▶쟁기떡 전기떡 멍석떡 빈떡 등 지역마다 이름도 달라

빙떡은 쟁기떡, 전기떡, 멍석떡, 빈떡 등으로 제주도 내에서도 마을마다 부르는 이름이 다 달랐다고 한다. 빙떡의 어원에 대해서도 메밀전병으로 ‘빙빙’둘러싸서 ‘빙떡’이라 부른다는 이도 있고, 메밀이 찬 성분이라서 빙(氷)떡이라는 이도 있다. 또 ‘떡 병(餠)’에서 변형된 말이란 주장도 있다.

무채나물을 메밀전병으로 빙빙 둘러싼 게 빙떡이다.(출처_산도록 홍보사진)

여기에다가 제주음식 연구가인 김진경 베지근연구소장은 빙떡을 옛 정의현(선산, 표선, 남원 등 서귀포시 동쪽) 쪽에서는 ‘영빈’이라 불렀던 점에 주목해 손님(賓)을 대접하는 귀한 떡이었다는 주장도 보탰다.

‘“迎賓” 즉 손님을 맞이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영빈이라는 단어가 검색이 되었다.

그리고 제주사람들이 왜, 언제 빙떡을 만드는지 생각을 해 보니 생각보다 이 궁금증이 금방 풀렸다. 내가 만난 월평마을의 어르신들이, 정의현 출신이라는 어르신이 빙떡을 영빈 혹은 빈이라고 하는 이유는 어쩌면 제주에서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만들었던 대표적인 음식 빙떡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미팅을 했던 월평마을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의 선생님은 마을 어르신들과 옹기종기 모여 음식을 만드는 데 빙떡, 그러니까 영빈떡을 만들기로 한 날, 어르신들의 빙떡 스케일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냥 10명 남짓한 사람이 먹을 정도의 양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몸이 불편하신데도, 나이가 많으신 데도 불구하고 엄청난 양의 빙떡을 만들어 내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르신들께 왜 이렇게 빙떡을 많이 만드냐고 물어봤더니 온 마을 사람들이 다 같이 먹어야 하지 않겠냐고. 어떻게 우리만 먹을 수 있냐는 이야기를 하셨다고 한다.’ (김진경, “여러분이 좋아하는 제주떡은 무엇인가요”, 제주의소리, 21.5.15)

빙떡은 귀한 자리에 꼭 빠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수차례 들어봤다. 그러고보니 빙떡을 주로 잔치 자리나 명절 때 보았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제주 안에서 빙떡의 위상이란 바로 이런 것이었다.

▶가정의례 간소화 운동으로 사라졌다가 '국풍81' 행사에 출품돼 알려지기 시작

제주향토음식보전연구원의 양용진 원장도 빙떡에 대해서 이렇게 소개한 바 있다.

“빙떡은 평상시 만들어먹었던 음식이 아니었다. 주로 관혼상제의 대소사를 치를 때 만들었던 행사용 음식이었던 빙떡은 70년 대 국가적인 시책으로 가정의례 간소화운동을 벌이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되고 구경하기조차 힘들었다. 그러다가 전두환 정권이 국민들의 환심을 사기위해 ‘국풍81’이라는 대규모 문화행사를 벌이면서 여의도에 각 지방 전통 문화를 집결시켰는데 이때 제주를 대표하는 전통음식으로 공식적으로 출품이 되면서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다”(양용진, 쉽게 느낄 수 없는 맛 빙떡, 열린제주시 통권 제160호)

빙떡은 귀한 자리에 꼭 빠지지 않는다(출처_제주도청, 음식박람회 빙떡 체험부스)

요즘은 빙떡을 먹는 나름의 비법를 터득하는 중이다. 언제부터인가 제주의 잔치집에 가면 놓여져있는 간장에 슬쩍 빙떡을 찍어서 먹어 보았다. 그럼 먹을만했다.

양용진 원장은 빙떡에 자반 생선이나 옥돔을 한 점 얹혀서 먹으면 아주 독특하고 매력적인 맛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그의 글에서 권한 바 있다. 마늘과 쑥으로 백일만에 곰도 사람이 되었다는데, 이렇게 조금씩 이 맛에 젖어들기 시작하면 언젠가는 이주민인 필자도 제주사람 다 되어 있지 않을까싶다.

그러니 명예 제주도민이라도 되고 싶다면 제주에 와서 빙떡 한번 맛보면서 자체 테스트를 한번 해보길 추전해본다. 어쩌면 앞으로 ‘빙떡’을 생각하면 입에 침이 고일지도 모를일이니 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