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업계, 발등의 불 '농약허용물질관리제도(PLS)' 무대책 난항 예상
식품업계, 발등의 불 '농약허용물질관리제도(PLS)' 무대책 난항 예상
  • 김현옥 기자
  • 승인 2018.06.04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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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 등록 주체가 정책 수요자인 농민·수입사·가공업체·농약제조사
비용 부담 크고 잔류·독성 자료 구하기 힘들뿐더러 진행 정보도 전무
국내 등록건수 외국 비해 태부족…제도 시행시 부적합 식품 속출할 것
전문가들, "국제기준 고려 식약처 직권등록 확대 우선돼야...유예기간 필요"

정부가 식품의 안전성 강화를 위해 오는 12월 31일부터 농약허용물질목록관리제도(PLS, Positive List System)를 전면 확대 시행할 방침이지만 현실적인 문제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극심한 난항이 예상된다.

PLS는 모든 작물에 농약 기준을 설정하고 그 이내로 관리하는 제도로서, 국내에서 유통되는 식품은 잔류허용기준이 설정된 농약 외의 무등록 농약이 검출한계 수준인 '0.01ppm'을 초과하면모조리 부적합 판정 조치를 한다.

PLS 정책의 목적은 과학적 절차와 데이터에 따라 작물별로 사용 가능한 모든 농약을 합리적으로 등록해 사용할 수 없는 농약의 오·남용을 막는 것이다. 따라서 농약 등록이 필요한 경우 건당 500만~3000만 원의 비용과 잔류자료, 독성자료 등을 갖춰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신청하면 된다.

그러나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가장 큰 문제는 기준 등록 주체가 기준을 필요로 하는 당사자 즉, 농약을 직접 이용하는 농민과 작물을 수입하거나 납품받아서 가공하는 식품업계 관련자와 농약 제조사라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생산 작물별 사용 가능한 농약이 매우 적어, 각종 요건을 갖춰 자발적으로 농약 기준을 등록하려면 건당 수억 원의 비용이 소요되는데, 과연 이를 진행할 농민이나 업자가 몇이나 있을 지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일례로, 당근의 경우 국내 농약 기준은 67종에 불과해 237종인 일본과 비슷한 수준으로 재배하기 위해서는 170종의 농약을 신규로 등록해야 한다. 이 때 수수료만 최소 8억5000만원이 필요하고, 거기에 잔류자료나 독성자료를 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실정이라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농촌진흥청이 국내 주요 작물에 사용하는 농약에 대해 1,670개 기준을 직권 등록할 예정이지만, 현장에서는 안정적인 작물 생산을 위해 최소 1만개 이상이 필요해 턱없이 부족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정부 주도로 등록하고 있는 국내 생산 농산물조차 미비점을 계속 개정 보완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보다 농업 환경이 열악한 개발도상국을 포함한 전 세계 작물생산국이 우리의 기준에 맞춘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수입 원료를 사용하는 국내 식품업체와 수입사들은 당장 내년부터 수출국 업체에 우리 농약기준에 맞춰 제품을 생산 수출하도록 요구하고 관리해야 하지만, 현재까지 대상작물이나 관리농약, 요청업체 등 진행 여부를 알 수 없는 것도 문제다.

이러한 이유로 해외 생산국의 농약 기준을 국내기준으로 등록하기 위해 추진하는 몇몇 업체의 경우 극히 일부 작물의 일부 기준만 선택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등록되는 농약은 전 세계 허용 농약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아 생산국이나 국제 규격에 맞는 농약이 사용됐을지라도 국내 기준이 없다는 이유로 부적합 농산물로 판정될 소지가 크다. 결국은 아무런 과학적 근거도 없이, 단순히 제도의 미비로 인해 소비자에게 불안감을 조성하고, 수입사 및 제조사에게는 큰 타격을 주게 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게다가 반드시 농약을 등록해야하는 농약제조사의 입장에서는 비용과 시간 절감을 위해 재배농가가 많거나 사용량이 많은 농약 또는 신제품 위주로 수익성을 따져 우선 순위를 정하고, 값이 저렴하고 일반적인 제네릭 농약에 대한 등록은 등한시하는 경향이어서 제도가 본격 시행될 경우 사회적 파장이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와 관련, 업계 관계자는 "정부는 단순히 몇 건의 농약이 등록됐는 지에 관심을 둘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얼마나 등록돼야 하는지, 그에 따른 문제점은 무엇인지, 현재 진행 상황은 어떤지 등을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이를 위해 농민, 식품업체, 농약회사 외에도 관련 단체 및 전문가 집단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PLS제도가 조기에 정착될 수 있도록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야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PLS를 제대로 시행하려면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유예기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국제 기준을 고려한 식약처의 직권 등록 확대가 우선돼야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현행법 상 농약관리 기준은 미규격 농약이 검출될 경우 유사농산물 기준이나 국제공통규격(Codex)을 적용해 국제적으로 조화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잠정 기준을 마련해왔다. 기준이 설정된 농약만 허용하는 PLS는 2016년 12월부터 호두, 아몬드, 커피, 카카오 등 견과종실류와 바나나, 파인애플 등 열대과일류를 대상으로 일부 적용해왔으나 내년부터는 모든 농산물에 확대 시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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